감정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주섬 주섬 우산을 들고 문을 나온다. 비가 올 것 같다는 예감에 마음은 불편해진다. 적셔지는 운동화 굽굽함의 향기가 배어지는 티셔츠가 싫다. 그래서 나는 밖을 나가기를 망설였다. 하지만 삶에서는 원치 않는 이유가 생기는 것이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결국 나는 결과를 향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역시나 흐린 하늘은 여지없이 기대에 맞게 뚝 뚝 한 방울의 빗줄기를 어깨에 마주하게 한다.
우산을 활짝 펼쳐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지만 축축해지는 바지단에 찡그려진 미간이 들이어진다. 어릴 적 나는 지금과는 달리 떨어지는 빗줄기를 갈망했다. 사막의 단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찌들어진 원치 못한 삶의 때가 씻겨질거이라 기대했다. 수많은 후회와 한숨들을 잠시나마 환기시켜 주어 다시 하얀 도화지로 회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빼곡히 적힌 잉크자국이 번져지는 것뿐이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서른 무렵 느꼈다.
비가 어느 정도 굵게 떨어지며 우산 위에서 탁탁 소리를 낸다. 한동안 내려지는 저것들처럼 나에게 퍼부어지는 것들의 고민과 괴로움에 답을 하고 결정하기 급급한 시간들을 겪었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가리지 못한 것들이 쌓이고 어깨를 짓누른다. 그냥 시간이 해결 줄 거라는 찰나를 거쳐 우박이 되어 머리를 때렸다. 견디기 위해 기대고자 한 존재는 우산이 아니었고 축 쳐진 발걸음은 더 더디어졌다.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려 들어간 공간에서 창문을 바라본다. 비가 단절된 곳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삶의 찌든 때가 코끝을 찌른다. 혹시나 누군가 나의 이 불쾌함을 알아차지 않기를 바라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려본다. 한숨을 고르고 자리를 차지하고 커피 한잔을 주문을 하였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아메리카노의 쓰디쓴 맛에 아무렇지 않은 척 경계가 갈라진 비가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다른 표정들은 내 모습과 비슷한 이도 다른 이도 보인다. 언제쯤 이 비가 그칠까 그리고 또 나는 언제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젓어버린 것들이 거슬리고 발목을 잡는다. 여전히 마르지 않는 눈물자국은 나를 약해지게 만들었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싫다. 미처 망각하고 있던 나의 비루한 모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말이다. 남겨진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일기예보를 찾아본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