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고양이를 만나다
살다 보니 마음을 꽤나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그중 가장 나를 짓누르는 것은 책임이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중압감은 스무 해를 넘기고 나서부터 다가왔다. 울타리에 있던 양이 목장 밖에서 마주하게 된 자유의 달콤한 맛에 취해서 천방치축을 날뛰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과 새로운 것들에 대한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순식간이었다. 자유로움에는 그에 따라는 반대급부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는 게 깨달았을 때부터 두려움이 찾아왔다.
나라는 주체가 일으키는 순간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 든 온전히 홀로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된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에게 투여되어 파생되어 마이너스가 된다면 감가시 켜 복원시켜 주여 한다. 쉽지 않기에 마음의 짐의 추가 쌓이고 쌓여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웬만하면 나는 피하고자 한다. 불규칙적이고 결여가 많은 나 자신이 믿지 않기에 책임을 질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하지만 인간은 섬이 아니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지금 이 순간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또 마주한다. 그것은 귓가를 붙잡는 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서럽게 무언가를 찾는 근원을 찾아 열고 나간 문 밖에서는 빗줄기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고개를 주의 깊게 둘러보니 작디작은 하얀 생명체 눈가에 들어왔다. 그것은 내가 얽매여있는 경계의 선인 회사의 문 근처에 있는 구조물 사이에 있었다.
처음 어미를 찾는 구슬픈 소리라 안쓰러움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울음은 나의 마음의 울렸다. 그리고 발길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피어난 햇볕들 사이에서도 여지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떼어지지 않는 마음의 쓰임을 두렵게 만들었다. 책임이라는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올가미에 나도 모르게 빠져든 것 같았다.
결국 하루가 더 지나고 나서 회사의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고 아이를 구조하여 보호해 주었다. 서럽게 울다 지쳐 허기짐이 아이에게 인근 편의점에서 산 사료를 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아이를 보니 뭔가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당분간 지낼 공간을 매장 한편에 만들어주었고 다들 이 작은 생명체에 호 의롭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호의로움도 책임이라는 무게가 나눠가진다는 것에서 망각하고 있었다.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책임이라는 두려움에 하나 둘 현실을 지각하며 회피한다. 귀엽고 만지고 싶지만 어느 누구 하나 이 생명체와 함께하는 시간을 지속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문제가 터졌고 화살을 돌릴 타깃을 정했다. 그렇게 아름답던 순간은 사라지고 원망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것이 너무 불편했고 싫었다. 고민이 되었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 답은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손을 들었고 나는 이 새끼 고양이를 책임지기로 했다. 물론 후회가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기에 두렵다. 그렇게 피하려고 한 것을 아이러니하게 스스로 잡는다는 것이 어이없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