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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어쩐지 운수가 좋다더니...

by 김군

왠지 뭔가 느낌적으로 아귀가 맞아 순탄하게 앞으로 나가는 날이 인생에서 가끔 있다. 마치 신호등 앞을 도착하자마자 바뀌는 초록불에 거침없이 걸어가는 기분이다. 공교롭게도 내게도 요 며칠간은 그러하였다. 적당한 때 나타난 행운들이 사소한 것부터 큼직한 것도 무탈하게 지나갔다. 콧노래가 불러졌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흔치 않은 이 순간을 즐기려 부단히 기분을 내어본다. 이른 아침을 마주하며 도시락을 준비하였다. 얼마 전 요리책에서 우연히 보게 된 어묵 튀김을 도전해 보았다. 나름 자취경력이 차곡차곡 쌓인 시간들 속에 곧잘 흉내 낼 정도의 실력은 되었다. 휴대폰 사진으로 찍은 레시피를 따라 하나 둘 재료를 준비하고 요란하게 소리를 내어본다.


동그랗게 속이 비어진 어묵 안에 잘게 썰어 둔 김밥 햄과 맛살을 채워 넣었다. 곧잘 모양이 책 속에서 본 형태와 맞아떨어져 간다. 알차게 빵빵해진 것들을 한편에 두고 계란 두 개를 탁 탁 청아하게 깨어주면서 볼안에서 휘휘 저어준다. 그 위에 파슬리 가루를 송송 넣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준비의 마무리는 밀가루를 그릇에 두 컵정도를 넣어주었다. 순서의 마무리의 순간이 다가왔다.



만두처럼 채워진 내용물을 통통하게 품고 있는 어묵을 밀가루에 골고루 묻혀준다. 그리고 계란물에 퐁당 떨어뜨렸다. 그 사이 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달거진 열기를 보고 살포시 얹어 주었다. 치이익 치이익 구워지는 어묵을 바라보며 알맞게 색이 노릇노릇하게 변해진지 살펴보아준다. 맛난 냄새가 살짝 코끝을 찌르고 색감이 변해짐을 느끼고 뒤집어주며 요리의 완성을 향해 달려갔다.


역시 운수 좋은 날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이 어묵들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남은 계란물은 자투리로 남은 재료들을 때려 박고 다시 한번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준다. 다시 달거진 불판 위에 과감하게 부어버렸다. 그리고 미처 익어져 버리기 전에 스크램블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손짓을 하며 달라붙지 않게 움직인다.모든 요리가 완성되고 도시락통에 2분 10초의 시간을 전자레인지와 마주한 햇반을 넣어주고 반찬들을 옹기종기 담아내었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 출근해서 맛나게 먹어버리며 하루의 평안함을 즐기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벼운 발걸음이 경쾌하다. 정말 1년에 드물게 이렇게 출근길이 미소가 지어지는 날이 없었는데 그동안 잊고 지낸 행복이 폭탄투하 된 것 같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적당히 맺힌 땀들을 식혀준다. 왠지 어제와 같은 순풍을 단 돛단배처럼 나갈 거라 믿음이 든다. 겹겹이 쌓인 메일들을 보고 우선적으로 처리할 업무들을 먼저시작한다.


평온하였고 고요하였다. 하지만 따르릉따르릉 울리는 벨소리가 나의 귀를 거슬리게 하였다. 갑자기 인터넷 망이 끊어졌고 그로 인해 포스 계산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간간히 이런 일들이 있기에 대처할 수 있게 교육을 하였다. 하지만 동분서주하는 직원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하였다. 결제금액을 잘못받거나 당황스러움을 고객들 앞에서 노출시키고 있었다.


결국 수습을 하러 사무실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것들은 현재가 아닌 익일이 되어야 한다. 결국 잇몸으로 버티며 문제를 해결하고 한숨을 돌린다. 이 순간까지 미처 도착하지 못한 불행의 그림자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적당히 여유를 찾았는데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급작스러운 행사 일정을 통보하였고 준비와 관련한 보고자료 및 모든 타임테이블을 짜야했다. 사무실 전화기에 다이얼들을 수차례 누르면서 소통을 한다.



거절의 연속에 선택지가 축소된 보고서는 부실했다. 결국 다시 만들고 만들고 지우고 쓰고의 반복이 시작되었다. 치침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나의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선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쾌하게 먹지 못한다. 보고를 해야 하고 고쳐해야 하고 결과물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순간 머릿속으로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괴상하게 운수가 좋다더니 이런 시련의 덩어리를 던져버리려 하는 빌드업이었다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렁탕을 미처 먹지 못한 아내의 비참한 모습이 도시락 통을 바라보는 내 모습과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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