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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Mar 19. 2024

패스트 라이브즈 1부

인생은 타이밍...

 나는 노래를 유려하게 소화하지 못한다. 마이크를 잡고 멋지게 완곡을 하고 싶지만 항상 민망함이 찾아온다. 나의 노래실력에 발목을 잡는 것은 박자이다. 딱 딱 타이밍에 맞추어 가사를 불러야 하는데 항상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느리거나 빨라지거나를 반복한다. 그래서 가끔은 노래방을 갈 일이 생기면 마음 한편에 불안함이 생긴다. 타이밍을 맞추어야 하는 데를 되뇐다. 하지만 나의 노래를 언제나 길을 잃는다.


 비단 노래만 박치이면 좋을 텐데 삶에서도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이나 놓쳐버린 것들이 점차적으로 쌓여가 후회의 한숨을 만들어 낸다. 아쉬움이 남는 것들 중 무엇보다 나에 인생의 비중이 큰 것은 사람이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사랑인 것 같다. 그때 내가 그렇게 했었더라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들을 반복해 본다. 아련한 미련은 여운이 깊다. 가끔은 이런 아픔을 공감받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민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가족의 구성원 중 큰 딸인  나영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맞이하는 것이 그리 거슬리지 않는다. 마음 한편으로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도 된다.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에 대한 설렘에 동생과 다투기도 한다. 하지만 아쉬움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 있다. 관심이 가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해성이라는 존재와의 이별은 아쉽다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하지만 12살의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서툴다.


  나영과의 이별이 다가올수록 혜성은 감정이 편치 않다. 감춰지지 않는다. 괜히 피하거나 불편한 척을 한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영은 더 해성에게 다가온다. 부모님을 동반한 데이트라는 부르기 민망한 나들이도 같이 한다.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것은 잠시의 찰나 일뿐 결국 선고일은 다가온다. 하지만 그 앞에서 둘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였고 긴 헤어짐의 시간을 겪는다.



  12년이라는 숫자가 다시 돌아와 둘은 다시 조우하게 된다. 우연히 해성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됨으로 서이다. 나영은 그에 대한 호김심과 기대감에 먼저 연락을 한다. 그렇게 둘은 현실은 아니지만 화상으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공유를 하면서 다시 가까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서는 제약이 존재한다. 어릴 적은 이민이라는 요소가 확장되어 현재는 거리가 이들의 관계에 벽이 된다.


  나영은 해성과 이야기하고 화상이지만 그를 마주하는 것이 즐겁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민자로서 이방인이 아닌 자신의 확고한 자리를 잡고 싶은 것이 혼란스럽다. 왠지 해성이 와준다면 와줬으면 감정의 정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그에게 표현한다. 하지만 그는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였고 결국 그들의 찰나의 추억의 시간처럼 끝이 난다.


 그렇게 다시 12년이 흐리고 마침내 둘은 다시 뉴욕에서 만나게 된다. 해성이 나영에게 연락하여서 이것이 성사되었다. 지나간 시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나영은 극작가로서 일을 하고 유대인 작가 남편과 결혼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나영이 아닌 노라라는 삶이 익숙해진 해성에게는 이방인이 되었다. 해성도 그간 중국 유학도 갔고 그 사이 직업도 생기고 연인을 만나고 결혼의 문턱에서 잠시 이별을 하였다.



 시간이 지남이 어색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내 거리감은 사라진다. 뉴욕을 함께 걷고 구경하며 서로의 공백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추억을 꺼내보기도 한다. 그녀는 잊고 있던 노라가 아닌 나영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과 있다는 것 그 상대가 해성이라는 것이 반갑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삶에 또 다른 중요한 동반자인 아서도 신경 쓰인다. 결국 셋이 함께 만나 식사도 하고 바에서 술도 마신다. 그 사이 동안 해성과 나영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달한다.



 개인적으로 여운이 길었던 영화였다. 남자들에게는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찌릿하다. 그리고 대체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첫 이별이기에 더 애잔하게 그리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이라는 소재자체에 후한 가산점이 붙여진다. 유사한 느낌이 나는 영화로 건축학개론이 떠올라졌다. 그 시절 답답하고 어설펐던 나를 후회하면서 가장 순수했던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때가 전달돼서 나는 그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도 그 못지않게 스크린이 막이 올라가고 나서 유사한 감점이 느껴졌다. 24년이 지나서야 와 너다라는 단어를 나영이 내뱉을 때 가슴이 쿵쾅거렸다. 왠지 나도 저런 상황이었다면 같은 말과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였다. 이별을 하였고 다시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의 여정이 정말 애잔하였다. 제대로 하지 못한 안녕을 하기 위한 긴 시간에서 해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은 어쩔 수 없었고 두 번째는 망설였고 마지막은 이룰 수 없었다. 어찌 보면 해성은 자신의 삶에서 남아 있는 미련을 정리하고자 나영을 만나러 뉴욕을 간 것이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나영은 더 이상 12살 울보도 아니고 그녀의 곁에는 너무나 좋은 사람인 아서가 있다. 해성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눈물이 살짝 고였다. 담담하게 끝을 마주하는 그 모습이 참 깊은 여운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좋았던 장면은 첫씬이다. 바에 나영과 해성 그리고 아서와 셋이 앉아 있는 모습을 제삼자가 보면서 어떤 관계일지 서로 유추하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카메라를 나영을 연기한 그레타리가 정면으로 쳐다보는데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와 눈빛이 꽤나 좋았다. 버리지 못한 12살의 나영의 모습도 이민자로서 노라의 모습도 양면적인 캐릭터를 잘 표현하였다고 느꼈다.


 영화를 보면서 극을 이끌어가는 해성과 나영 외에 눈길이 갔던 인물은 아서였다. 아내의 첫사랑이 무려 24시간 만에 13시간의 거리감을 뛰어넘어 온다고 했을 때 그의 모습은 현실적이었다. 질투하면서도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 끝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후반부 마지막 안녕을 하고 돌아온 노라를 안아주는 장면은 또 한편으로 뭉클했다.



 감독이 극연출을 전공이라 그런지 장면 장면 사이에서 공백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비어진 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점점 극이 흘러가면서 그 속에서 많은 감정들이 침묵 속에 묻어진 것이 전달되었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인물을 따라가면서 맞춰지는 초점이 아름다웠고 몰입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키워드의 가산점을 제외하더라고 상당히 좋은 작품이었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다면 한국어 대사였다. 아무래도 서툰 느낌이 느껴지는 그레타리의 우리말은 조금 신경 쓰였다. 더불어 유태오 배우도 조금은 감정적인 전달력이 아쉬웠다. 그 외에는 정말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해한 사랑이 되어버린 첫사랑의 파편과의 영원한 작별이 아련하게 가슴을 울리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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