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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Mar 20. 2024

패스트 라이브즈 2부

인연


 패스트 라이브즈 전생이라는 의미인 영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이야기의 키워드는 인연이다. 어바웃 어 보이라는 결말 부문에서 주인공 윌 프리먼을 연기한 휴그랜트의 대사들처럼 인간은 독단적인 섬이 아니다. 다들 바다 밑 아래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러기에 삶에서 관계라는 단어가 가지는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속에서는 그것에 대한 힘에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추억되고 또 어떻게 앞으로 나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인연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바라보았다.


 시작은 나영과 해성의 관계에서 전개된다. 스크린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풋풋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들은 어떻게 세월이라는 변덕쟁이로부터 바뀌어 갈까 물음표를 던진다. 이민에 따라 부속품처럼 따라온 거리감은 관계의 끈을 끊어 버릴까 나는 내심 조바심이 든다. 왠지 희미해지는 것은 막지 못하겠지만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응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의 변덕 아래서 나는 영화 속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치고 나서 둘이 다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반가웠다. 비록 화상으로지만 작은 장벽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출이 극적이고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있지만 나는 반박의 변호를 한다. 정말 불가능한 것인 건가 억지인가라는 말에 우리는 수많은 관계의 망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내게 가까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선시 되지만 가끔은 지치고 그것들에 염증을 느낀다.


 인간은 슬픔의 순간 과거를 추억하고 되돌아보는 습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조금은 옅어진 그렇지만 존재하는 관계에 대해 설렘과 흥미를 가질 수 있다. 나 또한 이러한 경험이 있고 누구나 유사한 에피소드들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이들의 12년이라는 시간의 설정이 납득이 되었고 현실적이게 받아졌다. 이들의 첫 번째 재회에서 마주하는 관계의 선은 제약이 뚜렷하고 유통기한이 설정되어 있었다.


 공백의 시간과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물리적 거리감은 다시 희미함으로 회귀하게 된다. 나는 이 상황에서 의지와 열망이 이성을 무너뜨리고 감정에 집중하여 온전히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떠했을까 꿈꾸어보았다. 그래서 무작정 나영을 찾기 위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글을 남겼던 해성의 시작의 마음을 잃지 않았더라면을 가정해 본다. 비행기를 타고 그녀를 보기 위해 제약의 장벽을 하나를 넘어갔더라면 둘은 사랑을 했겠지 그 속에서 관계의 선은 더 짙어졌겠지라는 망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게 인생 네 컷처럼 추억의 파편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12년의 세월이 눈앞에 지나쳐갔을 때 이들의 선에 색깔은 예전과는 다르다. 끌리고 아련하지만 열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담담하다는 느낌이 든다. 노라가 남편 아서에게 인연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것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인연을 통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하는 플러팅이야라는 식으로 이를 설명한다.

 


 하지만 나영은 노라와 다르다고 느껴졌다.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해성과의 사이에서는 단순한 플러팅의 말로 여기지 않았다. 12년의 시간이 다시 지나가서 마주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공백을 침묵과 둘의 눈빛으로 소통한다. 나는 후반부의 나영이 자 노라를 연기한 그레타리의 연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눈 안에서 정리되지 못한 흔들리는 감정들이 전달되어서 인물에 더 몰입이 되었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 나가야 한다. 뒤를 돌아보고 추억하고 감상할 수 있지만 과거가 미래가 되지는 못한다. 지금 이 순간의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고 선택해야 한다. 그것은 두 인물에게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해성이 뉴욕을 찾은 것은 안녕이라는 관계의 정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별과 단절이 아닌 어린 시절 사랑했고 아름다웠던 12살 아이인 나영과 인사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그녀의 삶인 노라로서의 관계를 선으로 이은 것이다.



 비록  과거의 선택의 순간 망설임이 후회스럽고 슬프지만 인연으로서 받아들인다. 현생의 관계를 나영이 아닌 노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련하지만 담담하게 24년의 세월을 문을 열고 마주한 그녀에게 고백하는 해성이 너무 멋져 보였다. 다음생의 인연은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엇갈리지를 않기를 바라보았다. 나영 또한 해성과의 만남을 통해 한발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 아서와의 관계의 소중함을 그가 흔들리지 않고 뒤에서 그녀를  바라봄을 느낀다.


 어찌 보면 영화는 때로는 짙어지기도 희미해지기도 하는 관계의 일상적인 서사를 담백하게 표현내고 있다. 과장됨 없이 그러기에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로 마음 한편에 여운을 남긴다. 인연이라는 인장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외롭지 않게 삶에 이야기들을 만들어 주고 감정을 다채롭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나는 영화를 보며 괜스레 잊고 있던 나만의 나영을 잠시 그리워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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