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패스트 라이브즈는 감독인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연출을 맡은 셀린 송은 나영처럼 어린 시절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극 중 나영의 아버지 직업이 영화감독으로 나온다. 셀리송의 아버지는 넘버 3을 연출한 송능한 감독이다. 데뷔작으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엄청난 임팩트를 주었지만 그 뒤 세기말을 만든 이후 충무로에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평론가들의 보이콧 일화는 당시 꽤나 화제가 있었다.
세기말은 개봉당시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송능한 감독의 전작인 넘버 3에 대한 기대감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예상했었는데 이 작품은 전혀 상반되었다. 그로 인해 흥행에서도 처참히 실패하였다. 연출자로 여러 부분이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를 거슬리게 만들었던 것은 평론가들의 별점 평가했다. 일부의 몇 줄 평과 점수 매김이 영화가 재단화되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래서 송능한 감독은 평론가들의 행태를 비판하였다.
"자네는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얼굴은 두 개 반, 젖퉁이는 별 세 개.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한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 "20자 평이라면서 20자도 못 지키는 인간들.."이라며 꽤나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이를 마주한 평론가들은 별점 보이콧을 하였다. 20자의 평들과 별점 3개를 단합하여 주었다. 0점이나 1점을 주지 않은 것은 그것이 관객들에게 호기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했다는 이야기들도 있다.
송능한 감독의 이민의 이유가 이러한 상황 때문이라고 하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세기말의 흥행 참패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차기작을 준비도 하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좌절되었다. 04년도 하류인생의 카메오로 출연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이 영화계에서 그를 보는 마지막이 되었다. 이런 송능한 감독의 딸이 셀링송이다. 첫 연출작으로 오스카에 진출하고 주목받았다는 부분이 어찌 보면 부전여전이라고 생각이 든다.
아카데미의 작품상과 각본상의 후보에 오를 정도로 해외에서는 엄청난 반응이 있었다. 수상에는 실패하였지만 이번 오스카를 휩쓸었던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에 호평을 받았다. 그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본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셀린 송 감독 연출작인 '패스트 라이브즈'와 샬롯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을 꼽았다. 호평의 부분에는 이야기에 아름다움이 영향을 주었다는 의견이 있다. 이로 인해 각본상에 후보에도 오른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셀리송은 오스카보다 10년간 극작가로서 활동하며 토니상을 꿈꾸었다고 한다.
영화 속 재미난 포인트 중 하나로 넘버 11이 언급된다. 극 중 해성이 나영이를 찾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만들었던 작품과 연관된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수소문한다. 그 영화로 언급되는 것이 넘버 11이다. 셀린 송 감독의 인터뷰에서는 아버지의 작품을 오마주 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넘버 11번이 된 것은 1~10까지가 이미 다른 영화로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았던 장면인 오프닝에서 바에 앉은 해성과 나영 아성의 모습을 제삼자가 지켜보는 씬은 감독의 자전적 에피소드였다. 우연히 어린 시절 한국의 친구를 뉴욕에서 조우하였고 남편과 함께 바에서 있었는데 다른 이들이 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근데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아서를 연기한 존 마가로는 실제로 한국계 미국인 아내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서역을 자신이 연기하기를 강하게 원했다고 한다. 촬영 중에는 자신의 어색한 한국어 대사를 연습해 오겠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극 중 아서의 캐릭터상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기에 만류시켰다고 한다. 언어와 관련되어 또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이가 있는데 바로 해성을 연기한 유태오 배우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연기를 하여야 하는데 20대 시절 미국 뉴욕에서 보냈기에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웠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이 호감이 많이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 감정의 선들이 공감이 되고 나 또한 그 망설임과 선택의 사이에서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있었다. 때로는 영화 속 해성과는 달리 뉴욕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거리감을 띄어 넘어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다. 겪어 보았기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들이 많았던 영화였다. 사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이맛 내 맛도 아닌 흥미롭지 않은 소재라 혹평할 수 도 있다. 그럼에도 괜스레 마음 한 편에 누군가가 스크린이 올라가고 난 뒤에는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싸이의 노래 중 '어땠을까'가 머릿속으로 지나쳐가며 플레이하며 다시 여운을 꼽씹었다. 만약에 내가 그때... 정말 그랬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어땠을까
나의 옛사랑 옛사람
가끔 난 너의 안부를 속으로 묻는다
그리고는 혼자 씩 웃는다
희미해진 그때의 기억을 빈 잔에 붓는다
잔이 차고 넘친다
기억을 마신다
그 기억은 쓰지만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