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영상미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서사
변해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날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늘어난다. 익숙함이라는 감정이 찰나의 순간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눈앞에 놓인다. 때로는 지나간 것들이 아쉽기도 하고 친밀감을 가지려 소비한 시간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흘러가는 것은 순리이고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도 얻어지는 것들은 꽤나 있다. 더 간결하게 더 편리하게 변모된 새로움에는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빠르게 변해가는 것은 발전이라는 정의에 범주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그 속에서 많은 유희를 즐기고 있다. 근데 묘하게 맛이 안 사는 것들이 있다. 분명 불편함이 배제된 상황은 논리적으로 더 좋은 것들이 내게 전달된 것이라는 예상이 들지만 가끔은 그것이 오히려 거부감이 든다. 낯 섬의 단계에서 친숙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나간 것들에 눈길이 더 가며 아쉬움이 든다.
이러한 마음은 나만 가지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레트로나 복고가 트렌드함으로 정의되는 유행을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 추억과 함께 현재와는 다른 개성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잠깐이나마 과거로 회귀한다. 그 속에서 향수에 빠져 지나간 것들에 대한 포장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예전의 고유한 느낌과는 다르다. 현재 맞추어 변모된 것이고 믹서 된 파생된 새로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교묘히 복합된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문화적인 요소이다. 리메이크 편곡 등등의 형태로 나온 새로운 창조물을 과거와 비교해 본다. 재미나고 할 이야기들이 많아진다. 같은 듯 다른 것들 사이에서 나는 보물 찾기를 하는 플레이어가 된다. 어떤 것들을 취하고 어떤 것들을 흘려보낼까 선별을 하여 열심히 찾는다. 그리고 발견한 보물들은 더더욱 빛이 난다.
전작의 시저가 마지막으로 펼쳐진 전쟁 뒤 삶을 마무리한 그의 일생은 유인원에게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한번 규합되는 유인원 세력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약 300년가량이 지나쳐 버린 현재의 시점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유인원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신격화되었고 숭배했던 시저의 기억은 왜곡되고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가 이루지 못했던 공존의 차선책으로 선택했던 서로의 경계의 선은 유지되고 있었다.
스크린은 시선을 유인원의 한 부족을 비춰준다. 말을 타고 매의 알을 잡아와 부화시켜 키우며 사냥을 하고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무리의 유인원들이 새의 알을 가지고 오기 위해 둥지 위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모두들 각자의 성취물을 얻게 된다. 이들은 모두 같은 해에 태어난 형제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무리의 리더는 노아라는 유인원이다.
민첩하고 용맹하며 리더십이 있지만 아직은 치기 어리고 부족한 부분들도 보인다. 그들 무리가 알을 얻는 과정에서 노바라는 인간의 존재의 흔적을 마주한다. 수시간동안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음에 마주하지 못하였기에 노아는 그들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머릿속을 맴돈다. 노아는 그것이 얼마나 큰 사건을 초래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하였다. 노바가 부족의 생선 창고에 침입하여 음식들을 훔쳐간다. 노아는 그녀를 따라가다 소중한 알을 깨뜨려버린다.
그로 인해 예정된 의식에 문제가 초래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한밤중 길을 떠난다. 어둑한 길을 조심스레 말을 타고 가는 중 같은 부족의 전사가 공격받은 흔적을 마주한다. 다른 세력의 유인원들의 등장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였다. 그들은 시저의 사상을 앞세우며 유인원의 우월성을 과시한다. 거기에는 폭력적인 행태로 정복이 자행된다. 노아는 그들을 목격하고 숨지만 미처 말을 들켜버려 부족의 마을로 공격의 화살이 돌아간다.
부랴부랴 마을로 뛰어가지만 이미 쑥대박이 되어버린 뒤였다. 노아가 침략자들에 대해 대항하려 하였지만 그 무리들이 가지고 있는 전기가 나오는 막대기를 통해 좌절이 된다. 부족들은 모두 끌려가고 겨우 살아남은 노아는 무리를 구하기 위해 뒤쫓는다. 그 여정에서 불행을 초래한 노바인 메이와 시저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따르며 살고자 하는 라카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이들이 종착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곳은 부족과는 다른 느낌이다. 하나의 왕국이라 느껴지며 이들은 하나의 공간에 문을 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자신을 시저라 칭하며 왕이라 칭하는 프락시무스라는 유인원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다. 그에게서 각자의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노아와 메이는 손을 잡는다. 그렇게 시대의 변화가 도래하기 시작한다.
7년 만에 나온 시리즈에 후속 편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하였다. 그동안 혹성탈출이라는 영화를 관통하는 스토리의 중점에는 시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존재가 3편에서 죽음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과연 후속작을 통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더불어 시저를 대체할 주인공을 설정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영화를 보고 난 시점에서는 아쉬움반 신선한 반을 느꼈다.
일단 시저의 죽음 이후 그는 신화가 되었다. 그를 대체할 노아라는 캐릭터를 영화는 내놓고 있는데 초반부 설정된 시련의 상황과 추락하는 과정들이 영웅의 서사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요소였다. 차곡차곡 빌드업되는 전개과정이 꽤나 보는 재미가 있었기도 했다. 다만 시리즈의 전작에 시저의 서사를 대체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고 조금은 캐릭터의 강렬함이 떨어졌다. 물론 후반 부레가 각성하는 부분에서 보이는 리더십과 고민은 시저와 유사점이 보이기는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시련의 과정에서 저항하는 노아의 모습들의 액션이 꽤나 스펙터클하며 앵글을 따라가는 관객의 시점에서 흥미요소로 작용되어 재미났다. 무엇보다 VFX 효과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유인원들의 캐릭터들의 표정들이 자연스럽게 보였고 마치 실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션캡처 기술과 CG기술의 발달로 만들어진 뛰어난 결과물이었다. 혹성탈출 시리즈를 꾸준히 보게 만들었던 부분은 디스토피아 된 세계관 속에서 전달하는 메시지 때문도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인류와 유인원의 힘의 관계가 확연하게 역치 된 상황에서 다시 한번 공존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고민을 하게 만든다. 언어를 잃은 인류는 사고하지 못하는 짐승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반면 유인원들은 군락을 만들고 더 나가서는 작은 단위 왕국 형태의 사회를 구성하는 데까지 발전되어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역사는 지워져 있고 공존이라는 시저가 추구했던 이상은 잊혀버렸다. 오히려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모습을 유인원들이 보이면서 과거 인류의 형태가 나타난다.
빌런으로 나오는 프락시무스는 시저를 종교 삼아 통치에 활용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진화로부터 선택받은 것이 유인원이고 더 앞으로 나가야 발전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물론 그것이 순수하게 사용된 정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유인원은 정체되면 안 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에 반면 주인공 노아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과거 인류에 대한 지식을 통한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들이 자연 속에서 터득한 본인들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자연과 공존하며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려는 모습에서 시저의 이상이 보인다. 결말 부분에서 메이를 대하는 부분이 막연한 적대감이 아닌 점에서 뭔가 앞으로 전개될 노아의 이야기가 기대가 되고 궁금하였다. 더불어 인류에 측면에서 메이라는 캐릭터는 입체적이며 고민하는 부분에서 시저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거리들이 많은 작품이었다. 전작 시리즈 못지않게 서사가 웅장해 보인다. 물론 비교선상에서 아직은 아쉬움이 있는 출발이지만 그래도 보기를 추천할만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