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가린 정의, 입을 다문 법

포장된 말, 감춰진 진실

by 김군

삶은 참 묘하다.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늘 균형을 맞추려 애쓴다. 어릴 적엔 그런 걸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마냥 기쁘면 웃었고, 슬프면 울었다. 그저 순간의 감정에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마흔 즈음이 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사물에도 선이 있고, 말에도 선이 있다.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선을 알게 된 뒤부터, 세상이 조금 더 불편해졌다. 씁쓸한 순간이 많아졌고, 조심스러운 말들이 늘어났다.


나는 지금, 그 선 앞에 서 있는 초행자다. 외줄 타기하듯,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넘어지지 않으려 무수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중 하나는 ‘사는 이야기’, 그리고 ‘사회’다.


삶과 사회는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쉽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주제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다.

한마디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겐 도발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조심한다. 말하지 않으려 한다.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수십 번 삼킨다.


하지만 나의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 더는 참을 수 없다.

묵인도, 침묵도, 회피도 나를 구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

드문 일이지만, 바로 그런 일이 지금 내 앞에 일어났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 나는 그렇게 오늘의 문장을 꺼내 놓는다.


최근, 나의 시간 속에서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순간은 언젠가 기록으로 남고, 후대에 회자될 것이다. 독재가 팽배했고, 심지어 정당화되던 때였다.짓밟고 지배하기 위해 권력은 쉼 없이 움직였다. 그 속에서 피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웠고,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건 비극이었다.슬픔으로 얼룩진 역사였다.


희생의 땅 위에 피어난 꽃들 사이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계엄이라는 단어가 긴급 속보로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그저 만우절 농담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나는 겪지 않았던 고통의 기억이, 유전처럼 몸을 흔드는 걸 느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다. 역사의 해악에 저항하며, 다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몸짓으로 싸웠다. 그 순고한 외침 앞에서, 독재자의 발걸음은 잠시 멈춰섰다.


그러나 발악하는 잡초는 쉽게 뽑히지 않았다. 진실을 흐리고, 시비를 막고, 대중을 선동하는 몰염치한 모습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년이 흐른 뒤, 탄핵과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부조리의 일부가 처벌받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은 이 땅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한 자들에게 단호한 심판이 내려지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엄벌은 미치지 않았고, 여전히 잡초는 살아 있다. 그 생명력 앞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얼마 전 내려진 판결 앞에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임기 내내 숱한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 사람. 공적 권력을 사적으로 휘둘렀다는 비판을 받으며, 국정을 흔들었던 영부인. 그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나왔다.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많은 이들은 그것조차 가볍다며 분노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더 가벼웠다.

1년 8개월. 처벌이라기보다는 면죄에 가까운 숫자였다.

허탈함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최소한의 ‘정의’는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일까. 정의의 여신 니케는 눈을 가리고 있다. 편견 없이, 감정 없이, 오직 균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그 원칙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니케의 저울이 기울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뇌물을 준자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뇌물을 받으면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며 혐의에 대한 무죄를 주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의 결과에 붙여진 이 말은, 그저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행실에 대한 뻔지르르한 포장은 있었지만, 왜 사람들이 분노하고 그녀의 단죄를 요구하는지, 그 핵심은 삭제되어 있었다.


나는 문득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홀리데이라는 작품이다. 탈옥수 지강헌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였다.

실제 사건에서도, 영화 속에서도 그가 남긴 말은 강렬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무죄, 돈이 없으면 유죄. 법이라는 이름의 정의가 선을 지키지 못하고, 중심을 잃는 순간을 꼬집는 말이었다. 이번 판결도 마찬가지다. 정의의 여신 니케는 과연 눈을 가리고 있었을까?


법의 이름은 그대로였지만, 그 내용은 공허했다. 법의 외형을 교묘히 이용해 정의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우리는 지금, 그것을 목격하고 있다.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번 뽑아낸 줄 알았던 것들이 돌아서면 다시 자라 밭을 오염시킨다. 지치고, 힘든 일이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과실을 맺기 위해서다.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지만, 우리는 따뜻한 햇볕의 순간을 기다리며, 다시 걸어야 한다.


진실의 봄은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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