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우리는

모지리들 이다.

by 김군

나는 겨울이 싫다. 추위가 주는 고 통도 있지만 이 계절이 나에게 준 상처들이 유독 많았다. 이상하리라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겨울은 이별과 슬픈 기억이 어김없이 쌓여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중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숫기가 없고 말주변이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총체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좋아하는 이를 두고 말 한마디는커녕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래도 마음을 표현하려 나름의 계획은 항상 짜고 있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날 직접 만든 하얀 목도리를 주며 고백을 하고 그 정성에 감동받는 것이 나의 빅픽쳐였다. 시간은 흘러 결전의 날이 왔고 나는 그 아이의 집전화번호를 학원 친구에게 사정하여 받았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이얼을 눌렀다. 만남의 장소를 알려주며 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날 장작 12시간을 기다렸고 여자아이는 오지 않았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피하고 내 맘을 몰라주는 것에 서러워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이지만 그때의 나는 어렸고 멍청했다. 그리고 하필 그날이 수년만에 돌아온 화이트 크리스마스여서 쓰라림이 더 컸다. 그렇게 첫겨울 악몽 이후 나는 연례행사처럼 이맘때가 되면 이별을 맞이하였다. 그래서 이 계절이 오면 밖의 외출을 삼간다. 어떤 슬픈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예외의 날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는 날이기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밖을 나섰다.


백석 이곳은 바로 오늘 만날 이들과 아지트처럼 드나드는 곳이다. 영화 모임으로 만나서 이제는 그 동호회는 없어지고 그냥 시시때때로 만나는 인연들이다. 문을 열고 눈을 마주친 인물은 영지 누나이다.


영지 누나는 나보다 두 살 많고 이 사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보헤미안이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침없이 지른다. 요즘은 강다니엘 덕질에 빠져있다.


"야 왜 이리 늦어 빨리빨리 안다녀. 제일 연장자인 내가 기다려겠어.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나 담배 한 대 피고 오는 동안 얼른 튀어오라고 해


"네. 일단 세연이는 근처라고 하고 나머지는 전화해볼게요. 천천히 피 다 오세요. 아 누나 맥주 미리 시킬까요? 기네스 죠. 미리 시켜요"


영지 누나는 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오케이라는 신호와 함께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뉴판을 뒤적이다 결국 기네스 두 잔을 시켰다. 맥주가 나올 때쯤 돼서 문이 열리며 영지 누나와 세연이 함께 들어왔다.

"야 준이 오랜만이네. 너 아직도 겨울에 안 돌아다니는 건 여전하냐? 아 언니는 아직 강 디니엘 이죠? 나머지들은 어디래?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자리에 앉자마자 정신없이 쏘아되는 아이가 바로 세연이다. 우리 모임 멤버 중 가장 현실적인 친구이고 나이는 나랑 동갑이다. 은행에 다니고 있고 결혼을 근간의 인생의 목표로 설정하였다. 철없는 나와는 달리 여러 개의 적금 통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연이의 현실적인 가치관과 목표와는 달리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는 철없는 6살 연하이다.


작년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똑순이가 왜 이렇게 남자는 모순적으로 만나는 걸까 답답해 보였다. 하지만 나 또한 그 당시 바보 같은 연애를 하고 있었기에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야 헛소리는 그만하고 너는 뭐 에딩거인가 아님 호가든이야?"(나)


"나 차 가지고 왔어. 오늘 그냥 콜라."


"야 오늘 같은 날 왜 차 가지고 와서. 진짜 이 씨"(나)


"쏘리. 나 오늘 거래처 갔다고 늦을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 다음에 내가 같이 마셔줄게 우리 준이 누나한테 삐지지 말고 우쭈쭈"(웃음)


영지 누나와 세연이 그리고 나는 서로 근황을 다른 채널로 떠들어되었다. 이야기가 쌓여 정신없을 때쯤 두 남녀가 우리 테이블로 왔다.


"뭐 그리 할 말들이 많은 거예요 노친 내들이. 문 열자마자 오빠 언니들 목소리밖에 안들 리더라. 안 그래 원호 오빠."


" 아 아 뭐 좀 그랬지. 누나들 잘 지냈었어요? 형님은 뭐 딱히 궁금하지 않고. 다은아 일단 앉자."


두 남녀는 다은이와 원호이다. 음 일단 다은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애어른이다. 나이는 나보다 10살이 어리지만 벌써부터 부동산에 재테크 주식이 주관심사이다. 나와는 직장동료이고 내가 전출 가기 전 매장에 직원이었다. 모임의 원년멤버는 아니지만 구김 없는 성격이라 내가 데리고 나온 날 한 시간 만에 적응을 완료했다. 현재는 이 모임의 잔소리 마왕이다.


그리고 남자는 원호라는 아이다. 원호는 이 모임에 가장 이질적인 존재이다. 키 180에 의과대학을 출신의 공중보건의이다. 외모도 수려하고 인싸의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아싸이다. 그에 대한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이야기하면 길어지기에 생략하겠다.


"오랜만에 다들 모였는데 건배 한잔하자. 우리 모자란 모지리들을 위하여."(나)


"아 진짜 모지리가 뭐야 모임명이 아 싫어 난 짠 안 할 거야. "

(다은)


"알았어 바꿀게. 다은아 언니 오빠들 팔 떨어지겠다. 자 빨리 짠"(나)


우리 모임은 모지리이다. 세상을 살다 보니 내게 부족하고 모자 라보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근데 누군가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들키기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이 친구들은 다들 서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안고 감싸주고 보듬어주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쳐도 나무라지 않는 존재들이었다.나는 모지리라고 모임의 명을 정했다.


왜냐면 우리는 모자람을 알고 숨김 없는 당당한 모지리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