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영지의 소개팅

약속

by 김군

고통의 월초이다. 내가 가장 바쁜 시 기이자 머리를 제일 많이 지어 뜯는 시기이다. 50여 개의 업체의 정산과 월 마감을 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족히 걸린다. 예전 지금의 업무를 인수인계를 받던 시기 나는 숫자를 잘못 기입하여 업체에 잘못 정산되어 버렸다. 그때 개고생을 하며 수정하고 재결제하며 대차게 깨진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항상 보고 또 보고 두 번 세 번 보지만 직도 결제 후 끔 하나씩 틀린 것들이 나와 욕을 먹기도 한다.


아무튼 이 시기 나는 상당히 예민하다. 툭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여드름 같다. 그 진물을 뒷감당하기 가 두려운 걸 알기에 직원들은 월초에 나를 멀리한다. 어느 정도 정산 파트는 끝냈고 월 마감 자료를 만드려 하니 지끈거림에 믹스 커피 한잔을 들고 찬바람을 맞으면 머리를 환기시키러 밖으로 나갔다.


집중을 하다 보니 휴대폰을 볼 시간이 없었다, 쌓인 메시지들을 하나 둘 확인한다. 의미 없는 카톡들과 대출 문자들을 스킵하며 커피 한잔을 마시다 영지 누나의 톡이 온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 다니엘 포스터 남는 것 없냐? 있음 넘겨. 술살 게.'


노년의 덕질이 무섭다고 진짜 정성이 대단하다. 아 직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나의 직업은 서점 매장 관리자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연차가 있다 보니 운 좋게 매장의 부점장이라는 한자리를 맡고 있다. 나는 가끔 남는 포스터를 버리기 아쉬워서 모임 사람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 그때 다들 그다지 내켜하지 않으며 받아갔지만 영지 누나만은 달랐다. 정기적으로 이렇게 은근한 요구를 많이 하였다.


뭐 나도 버려지는 것보다는 필요한 사람한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이렇게 공짜술을 얻어먹을 수 있어 거부를 하지 못하고 있다. 종이컵을 입에 물고 누나에게 카톡 답장을 남긴다.


'몇 장 남아 있음. 술은 그럼 이번 주말 콜. 닭발에 소주 괜찮은 감'


'오케이. 이번 주 토요일 6시 발빠닭 콜. 우리 다니엘 포스터 조심히 모셔오니라.'


갑자기 잡힌 술 약속에 기분이 좋아졌다. 닭발 먹고 싶었는데 혼자 먹기는 부담스러웠고 다른 모임 멤버들도 나와 비슷한 월초 스트레스자들이 많아 선뜻 물어볼 수없었다. 이럴 때 시원시원한 영지 누나의 성격이 좋다.


참 매력 있는 이성인데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누나를 아는 동생으로서 걱정도 되고 아쉬웠다. 오지랖이 오늘따라 유난히 커지면서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태근이 형이 누나와 동갑이었던가.


문태근 나와는 업체 담당자로 인연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와의 초반은 매장에 방문하였을 때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다. 근데 뭔가 모르게 계속 보면 호감상이었다. 낯가리고 초반 경계하는 나와는 달리 매사 적극적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고 우리는 같은 축구팀을 좋아한다는 공통사를 확인하고 급격히 친해졌다. 장족의 발전을 한 우리 사이는 이젠 가끔 연락하여 단둘이 술을 먹기도 했다.


태근이 형도 솔로였지. 이 형도 꿀벌 팬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꿀벌은 독일의 축구팀인 도르트문트를 지칭한다. 노란색 유니폼이 꿀벌 같아 팬들 사이에서는 팀 애칭으로 꿀벌 군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갑자기 축구팀을 생각하는 것은 영지 누나의 수많은 덕질 중의 하나가 바로 축구도 있어서였다.


내 머릿속은 이미 둘을 만나게 해 주어야겠다는 것으로 가득 찼고 둘 간의 접점이 되는 부분을 쉴 새 없이 생각했다. 유쾌한 사람들이고 왠지 만나게 되면 좋은 친구도 될 것 같았다. 더 나아가서 나의 오지랖은 남녀로서 발전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지 누나 삶 속에 연애라는 덕질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나와의 인연이 시작될 때쯤 그것이 시들해졌고 다른 것으로 변경되고 있었다. 예전 누나의 연애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얼핏 들었었다.


" 나는 사랑이 참 좋으면서 싫어. 쉽게 변하더라. 내 마음도 상대방 마음도. 미칠 것 같이 보고 싶고 내 모든 걸 주고 싶다가도 그냥 한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게. 그래서 나 이제 안 주려고 내 마음 남자 시끼들 한 테. 여기가 여기가 너무 아파서 싫다. "


세상 거침없이 당당하게 살던 누나에게서 보이는 나약함이 묘하게 나와의 동질감이 든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 그녀는 이별을 하였다. 나는 후에 시간이 지나 세연이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남자는 육체적인 관계에서 발전을 위해 잠자리를 원했었다. 하지만 아이런 하게도 누나의 가치관에서 섹스는 결혼이 전제가 되어야 했다. 몇 번이나 호텔을 간 적이 있었지만 결국 둘은 진전이 없었다고 하였다. 남자는 누나를 사랑한 마음은 점점 왜곡되고 변질되었다. 결국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하는 건지 물음표가 들었던 것 같다. 식어버리며 차가워진 관계는 이별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남자에게 섹스가 관계의 종착역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랑의 확인이라는 개념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크다. 그러기에 나는 누나와 헤어진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누나의 가치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이별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그간 내가 아는 연애 기록은 없었다. 태일이 형이라면 다를 수 있을까. 잘 모르고 확신은 서지 않지만 나는 그냥 누나에게서 잊어버린 연애 덕질을 찾아주고 싶었다.


'형 이번 주 토요일 바빠? 혹시 닭발에 소주 어때. 오래간만에 한잔하자.^^'


진동을 울리며 바로 답이 왔다. 오케이라는 톡이었다. 나는 곧바로 누나에게 동행하는 잘생긴 남자 한 명 있는데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그녀의 답은 잘생기면 오케이 아님 술값을 내라는 답이었다. 약속 일정을 마무리 짓고 나서 나는 다시 마감의 지옥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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