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영지의 소개팅

만남

by 김군

고통의 마감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첫 휴일은 꿀맛 같다. 그러기에 더욱더 알차게 쉬어줘야 한다. 나는 침대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펼친다. 일단 머리맡에 쌓여 있던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지루할 틈이 되면 휴대폰으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았다. 크게 한일이 없는데 바라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가져 있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휴일에 시간은 2배속으로 빨리 가는 것 같다.


이제는 드디어 침대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한다.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고 출출함에 한시라도 빨리 닭발에 셀프 주먹밥을 먹고 싶어 졌기에 서둘렀다. 대충 샤워를 후다닥 하고 나와 후드티와 청바지에 퍼를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약속 장소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걷기에 딱 적당한 정도의 거리. 귀에 에어 팟을 꽂고 4곡 정도를 들었을 때 가게 앞에 도착하였다. 눈앞에 태일이 형과 영지 누나가 거리를 두고 멀뚱멀뚱 서있었다.


"형 왜 이리 일찍 나온 거야. 미안하게. 아 영지 누나 여기 여기. 아 형 여기는 내가 애정 하는 모임의 김영지 누나. 누나 여기는 우리 매장 거래처 담당자이자 핸섬가이 문태 일형. 통성명은 했으니 인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약간의 거리감을 서로 두며 어색하게 탐색하는 둘의 모습이 웃겨 피식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소개팅의 주선자가 된 것 같아 나는 자리에 앉아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을 하였다. 근데 태일이 형이 먼저 말문을 터뜨렸다.


"안녕하세요. 문태일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준이보다 두 살 많고요. 지금 하는 일은 디자인 문구업체에 영업관리 파트에서 하고 있어요. 반갑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김영지라고 하고요. 나이는 태일 씨랑 갑이고 하는 일은 무역업체 회계관리 파트에서 일하고 있어요. 준이랑은 영화 모임으로 알게 되어서 지금 알게 된지는 3년 정도 되었고요. 이 자식이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정상적입니다."


피식 태일이 형이 웃었다. 뭔가 이 어색한 공기 속에서 한발 정도 서로 다가간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뒤적뒤적거려 오늘의 만남의 단초가 되었던 포스터를 꺼내었다.


"누나 자 강다니엘 포스터. 이거 내가 다른 애들 안 주고 매장에서 고이 챙겨 온 거야. 오늘은 누나가 확실히 쏘는 거야."


"야. 조금 있다가 조용히 주면 되지. 그리고 가지고 오려면 지관통 하나에 담아오지 덜렁덜렁 들고 오는 건 뭐냐. 혼날래."


"아 저도 프로듀서 101 재미나게 보았습니다. 강다니엘 좋아해요. 투표도 했어요"


순간 접점이 확인된 둘의 친밀감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서로의 취향까지 술술 터져 나왔다. 내가 따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아도 될 정도로 말들이 많았다.


고대했던 닭발과 계란찜 주먹밥이 나왔다. 나는 열심히 떠드는 둘을 두고 혼자 셀프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이제 고만 자기 방송들 하시고 안주도 나왔는데 짠 한번 해요. "


"야 나는 쏘맥 먹을래. 맥주 시켜줘."(영지)


"아 나도 쏘맥 먹을게. 영지 씨 우리 서로 맞는 게 많네요. 맥주는 혹시 카스인가요?"(태일)


영지 누나가 손을 내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다시 또 나를 제외한 둘의 만담이 재개되었다. 왠지 이 소외받는 느낌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선들이었지만 만나게 하면 이어질 것 같았는데 이미 하나로 되어 가는 중이었다.


"태일이 형. 형 여자 친구 없지? 내가 알기로는 없었던 것 같은데. 누나 어때? 둘이 잘 어울리는데."


느껴지는 적막이 내가 깜빡이 정도는 키고 들어갔다는 생각 했었는데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애써 나는 술잔을 들면서 화제를 돌려버렸다. 짠 짠 몇 번의 소주잔이 부딪힌 것 같았는데 어느새 테이블에 소주 3병과 맥주 2병이 쌓였있었다.


"저 태일 씨. 아니 우리 갑이니까. 말 놓아도 되지? 너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 중에 마음에 든다."(영지)


"나도 영지 너 마음에 들어. 재미있어 그리고 나같이 쓸쓸해 보여."(태일)


나는 형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상 쾌활하고 자유로운 영혼인 두 명이 쓸쓸하다니 아무래도 술이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시간이 왔구나라 생각했다. 근데 누나가 꺼낸 대답이 뜻밖이었다.


"맞아. 나 쓸쓸한 사람이지. 애써 당당한 척 쿨한 척하는 게 나이를 먹다 보니 나만의 자기 방어 기제가 되어버렸어. 그래서 난 항상 누군가에게 우선순위가 아니더라. 그냥 보험 같은 친구 잘 안 삐지는 친구. 근데 나 여기가 (가슴을 두드리며) 너무 아파. 나도 1순위가 되고 싶어 누군가에게 항 상말이야."(영지)


갑자기 이런 전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뿐인 것 같았다. 애써 눈치를 보며 나는 왠지 자리를 일시적으로 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을 다녀온다 하고 하였다. 테이블에 돌아왔을 때 술잔과 함께 둘 간의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태일아 너도 여자랑 관계에서 자리가 우선이야. 나는 아직 경험이 없어. 근데 세상에 30넘은 여자가 한 번도 경험이 없다는 거 하자처럼 보더라. 나도 연애했고 키스도 해보고 나름 찐한 스킨십도 해보고 했어. 하지만 남자랑 같이 잔적은 없었어. "(영지)


"남들한테 혼전 순결주의라고 애써 이야기하지만 사실 아니야. 나 교회 다니지만 나일론 신자야. 나 힘들 때만 찾아 가. 나도 자보려 호텔을 여러 차례 남자들이랑 가보았어. 근데 말이야 혐오스럽더라 남자들이 관계의 종착역으로 섹스를 생각하는 것들이. 그래서 매번 끝까지 가지 못했어. 여자는 관계 이후에 골반과 허리 통증이 고통이 크다고 하더라. 그런 아픔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니? 그냥 나는 없다고 본다. 여자에게 잠자리는 희생이야. 고통이 망각할 정도로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거라고 종착역이 아니고."(영지)


예상치 못했던 일장연설에서 숙연해진 것 같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고 나의 침묵이 이어지는 것이 올바른 선택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자는 것 좋아하고 자고 싶어 해. 근데 나는 기다려. 내가 후회하지 않을 확신이 들 때까지. 5년을 만났던 여자 친구가 있었어. 사회 초년생 때부터 만나서 여러 차례 관계도 가졌었어. 나는 우리가 좋다고 생각했어. 이대로 몇 년 함께 지내다 결혼해야겠다 마음도 가졌었고. 근데 나 결국 차였다."(태일)


"모든 선택이 나 중심적이었데. 내 기분에 맞춰야 했고 연애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는 내가 원할 때만 우리는 잤었다고 하더라. 나랑 같이 있으면 자기가 없어지고 그냥 하찮아지는 것 같았데. 그래서 헤어지고 싶다고 하더라.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래도 잘 맞았었고 잘해주었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다니. 근데 헤어지고 지나간 시간들 속에 참 이기적인 내 모습밖에 없어 보이더라. 개가 힘들어하는 순간에도 나는 위로를 가장하여 항상 나의 욕구의 강요를 했었었던 거야. 후회가 되더라고 좀 더 잘해줄걸 이해 보려 노력해볼걸 하는"(태일)


"그 뒤로 누군가를 만날 때 생각이 많아졌어. 물론 지나간 이별에 발목을 잡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꽤나 무뎌졌기는 했어. 근데 잊히지 않는 건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인 마음이 상대에게 폭력이었다는 거 나는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거 그게 마음 한편에 탁 거슬려. 그래서 나는 기다리고 있어 누군가를 안고 자고 싶지만 후회의 덩어리가 생기지 않을 확신의 순간을. 아 술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알코올이 문제야 사람을 센티하게 만들고. (미소 지으며) 자 한잔하자. "(태일)


술잔을 같이 기울이며 나는 말을 할 수없었지만 두 남녀의 이야기가 와 닿았다. 나 또한 지나간 이별 앞에서 상처를 주었고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 임인 행태를 보였었다. 그래서 벌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시작의 문턱 앞에서 겁내고 돌아서는. 술이 쓰지 않은 밤이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오늘 이 둘 사이에서 사라져야 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는 닭발 집을 나와 2차로 근처 호프집으로 갔다. 술이 풀어준 긴장감은 마음도 말랑하게 만들었지만 몸도 흐늘흐늘하게 하였다. 그래서 선택한 행선지는 그냥 가장 가까운 가게였다.


간단한 마른안주와 어묵탕을 시키고 대화가 이어졌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관객으로 배제되고 있었다. 주섬 주섬 타이밍을 보다 말을 꺼내었다.


"형 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여기서 더 먹음 전 필름이 끊겨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그럼 둘은 더 놀다 가십시오. 저 신경 쓰지 말고."(나)


"에이 우리도 금방 일어날 거야. 시킨 거 요 소주 한 병만 먹고 같이 가자. "(태일)


이때 벗어나지 못함 안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나는 벗어둔 점퍼를 입고 휴대폰을 챙겼다. 그리고 자리를 일어나 나가며 이야기했다.


"먼저 일어나니 지금 나온 건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그럼 굿바이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


나는 후다닥 손을 흔들며 인사하며 나왔다. 영지 누나의 핀잔들이 터져 나왔지만 무시하고 계산대에서 결제를 하고 나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가볍다. 오늘따라 별도 많고 달도 더 동그란 것 같아 보였다. 술이 취해서겠지.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우니 나의 귀가에 대한 두 남녀의 카톡이 왔다. 잘 들어왔고 담에도 셋이서 보자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있는 이제 사랑을 했으면 그 인연이 두 남녀였으면 한다는 것을 홀로 날려 보냈다.


나는 그날 둘이 얼마나 더 시간을 가졌는지 모른다. 궁금했지만 애써 물어보지 않았었다. 다만 나에게 들려온 소식들은 이후 몇 번 단둘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에 아파하고 두려워 메말라진 사랑에 단비같은 시간이 되었겠지. 어떤 결말이 있을지 예측 안 되는 것이 인생이지만 그래도 둘이 인연에 의미 있는 사건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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