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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Nov 26. 2019

뒷걸음

뒤돌아 걸어가다


3. 뒷걸음 




눈을 뜨니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지난밤 사 온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오랫동안 잠을 잤다고 하는 것을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알게 되었다. 후후 입김을 불면서 젓가락질을 하는 나의 모습이 어제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결연하고 용기 있던 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녀와의 마지막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하였다. 답답하다. 텅 빈 컵라면 용기를 바라보며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울리지도 않고 변함없이 조용한 휴대폰이 싫어진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방전된 기기들을 충전해주었다. 채워지는 게이지를 확인하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체크아웃까지 1시간가량이 남았다. 널브러진 짐들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책 잊고 있었네 나를 춘천까지 이끌었는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10시 반이 되었을 때 숙소 밖으로 나오기 전 나는 가방에 책을 꺼내어 침대 위에 두었다. 어깨에 메었던 가방은 어제와 다른 무게였다.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그녀와의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방안에 남겨두고 나왔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이방인은 그냥 마냥 걷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익숙하다 이 거리 그리고 저 춘천문고. 아 저곳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 본 적이 있었다. 본능인 건지 우연인 건지 모르겠지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춘천문고 앞에서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동네 서점이다. 정신없이 정렬된 책들이 내 마음 같아 답답했다. 평대에 진열된 책들을 하나하나 집었다 놓았다 하며 그 공간을 맴돌았다.  


정신없어 보이는 책들 사이에서 익숙한 제목을 보았다. 짠하다 짠해 김준서 근데 그 짠함이 너를 이렇게 한 발도 못나게 하는 거 알고는 있니 그래서 춘천까지 대책 없이 와서 고작 이 책 하나 때문에 이리 궁상에 빠져있는 거야. 마음에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나는 또 피해자인 양 아파하고 있다. 눈에 머물고 있던 제목이 나를 서가 앞에서 발걸음을 떼어내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그랬다. 어느 하나 제대로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찾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외면하고 못 본 척했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윤경이가 준비했었다.  나의 기억 속의 그 날의 윤경이는 웃고 있었다. 완벽한 하루였다. 그 모든 완벽함이 나를 이 순간에 데려 놓았었다.


 " 너 그거 모르지. 나 그날 온종일 불안했고 저녁은 하나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먹다가 체하는 것 같았어.


"네가 업무 때문에 휴대폰 붙잡고 안절부절못하고 나를 외면할 때 나 너 확신이 안 서더라. 이 남자는 내가 먼저가 아닐 수도 있구나. 그리고 변할 것 같지 않을 것 같더라 생각 들더라. 그때부터였어! 나 네가 점점 기대가 안 되더라."


 나는 한마디 말도 입으로 뱉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나밖에 몰랐다. 그녀가 상처 받아 아파할 때도 바라보지도 않았다.


 늪같이 나를 빠지게 만들려는 이 공간을 벗어나야겠다. 춘천문고를 나오니 내가 더는 갈 곳도 여기 춘천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휴대폰을 열어 버스를 검색하여 시간대를 확인하였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눈앞에 설렁탕 집이 보였다. 간사하게 쓰린 속에 따뜻한 국물이 생각났는데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배알도 없이 이렇게....


 가게로 들어가 설렁탕 한 그릇을 시켰다. 맛집인가 보다 연인들 가족들이 테이블에 북적북적 앉아있었다. 뜨거운 뚝배기에 설렁탕에 밥을 말아먹었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이 뜨끈함 그리웠다. 한때는 소중했었고  뜨꺼웠던 존재를 상실한 나에게 이 썰렁탕에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계산대로 갔다. 가게를 나와 휴대폰을 꺼내어 버스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가장 빠른 표를 예매하였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니 20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대기시간이 길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하여 탑승을 할 수 있었다.  지워버리자 윤경이와의 춘천은. 그리고 흘려보내 주자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고 나도 그녀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4시간가량 버스 속에서 눈을 붙였다. 동대구로 도착하니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밤바람이 따뜻하다. 애잔하게도 그냥 따뜻하다. 그래서 좋았다. 이제 이 대구가 포근해진 것 같다. 나에게....


(카톡)


- 나 네가 정말 좋았었어. 하지만 너를 점점 가까이 마주할 때마다 나 자신이 사라지더라. 근데 그렇게 상실감을 느낄 때 너는 내 곁에 없었고 위안이 되지 않았어. 나 정말 결혼까지 하고 싶었는 사람이 너였는데 한순간 흔들려지니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어. 준서 네가 나를 많이 좋아해 주었고 내가 이런 사랑을 앞으로도 받기 힘들 거야. 고마워 나 아껴주고 사랑해줘서. 그리고 좋은 사람 좋은 인연 만나기를 바라. 춘천에서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네가 다녀간 이후 이렇게 카톡 했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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