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추억의 파편 한 구석에 잊고 있던 존재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시간과 거리가 얼려버린 관계들이 흐릿한 잔상으로 눈앞을 지나간다. 어떻게 지낼까 잘살고는 있나 한 번 보고 싶네 등등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들을 꿈꿔본다. 피식 웃음이 나오며 휴대폰을 열어 수년간 연락하지 않는 지인들을 카톡 프사를 통해 근황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결혼을 한 사진을 누군가는 아이 사진을 또 누군가는 여행 사진을 제각각의 이미지들이 전달하는 소식들을 듣는다. 잘 지내라는 상투적인 톡을 날려볼까 하다 읽씹 하는 거절이나 차단당하는 건 아닐까라는 소심한 생각에 포기를 한다.
뚝 끊겨버린 관계의 다리에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굳이 이제 와서 의미 없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잘 보기도 힘든데라는 이유가 쌓이며 그렇게 연락처 더미 속에 쌓여만 간다. 그래도 가끔 먼지가 수두룩한 그곳에서 아주 간혹 의도치 않게 꺼내지어 지는 것들도 있다.
근간은 아니지만 1년 전쯤 내게 그런 반가움이 있었다. 좁디 좁아진 인간관계 속 연락하는 학창 시절 친구들이 많지는 않다. 타향살이라는 핑계를 되어보지만 결국 나태하고 게으른 나 자신으로 정리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먼지가 쌓이지 않는 친구들과는 꽤나 끈끈한 편이다.
잘 만나지는 못하지만 생존 소식을 전화통화로 브리핑을 자주 받는다. 그중 한 친구가 학창 시절 서로가 접점이 있는 아이의 결혼 소식을 전해주었다. 꽤나 그 시절 친했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어긋남으로 연락이 끊긴 인연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 가십거리처럼 지나갈 이야기였지만 어떻게 변하였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 연락처를 전 달해 주라 하였고 전화가 오면 나도 결혼식에 같이 가겠다 하였다. 얼마 뒤 저장이 되지 않은 번호가 연락이 왔다. 그렇게 먼지 더미 속 인연이 10년이 훌쩍 넘어 꺼내어진 것이다.
어색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잊힌 시간의 간극을 줄일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기우였고 우리는 반갑게 오히려 서로의 멀어진 다리를 한 발씩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결혼식 이후 자주는 아니지만 전화와 톡으로 안부를 연락을 했고 가끔은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번 나의 휴일에는 친구의 집들이를 가게 되었다. 빈손으로 가면 안 되겠지라는 부담감은 고민거리처럼 다가왔다. 집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났기에 갖추어진 것들이 많을 건데 내가 정답을 맞혀서 갈 수 있을까. 결국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예전 즐겨 찾던 타르트 집이었다. 각기 다른 조각의 조합을 모아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고 나서야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시간이 다다를 때쯤 약속 장소 집 근처 언저리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며 기다렸다. 또각또각 시계 소리에 가슴이 떨려왔다. 실망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들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예전 우리의 관계 속 빛나던 순간의 나는 없었다. 현실의 타협하며 바래지고 해지면서 이젠 순수하지 않은 존재로 퇴색되었기에 두려웠다. 나는 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식어버린 머그잔의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쯤 친구의 연락이 왔고 발걸음을 떼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우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났다. 친구는 아직 음식 준비가 덜되었고 주문한 피자를 찾으러 가야 한다기에 같이 시간을 흘려보내기위헤 동행을 제안했다. 걸으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과 안부들을 나누었다.
먹음직스러운 피자를 들고 다시 약속 장소 앞에 도착하였고 이윽고 현관문을 열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의 온기가 눈앞에 보였다. 왈칵 가슴속이 따뜻해졌다. 친구의 와이프와 인사를 나누고 손에 움켜쥐고 있던 타르트 박스를 조심히 내어주었다. 가슴 한편에 두고 있던 지난 시간의 앨범들을 하나 둘 펼쳐보며 저녁을 함께하였다.
우리는 와인 한잔을 마시며 피식 웃기도 하고 잊고 있던 흑역사 이야기에 부끄러 하며 재잘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근래 이렇게 장시간 사람과 사무적인 대화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반가움은 멈춰지지 않았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내게 관계는 온전히 단절되고 정적이었다.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잃어버리지 않으려 부단히 버티려만 했다.
그 속에서는 웃음도 눈물도 없었고 진실되지 않은 형식만이 가득하였다. 탈출구를 찾아보려 아등바등 거리는 것이 이젠 시간이 지나 지쳐버리고 체념의 단계가 되었다. 그런 내게 잊고 있던 관계에 무심코 던진 조약돌이 삶의 기쁨을 주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지키려고만 했던 것이 오히려 집착이 되어 나를 잠식시키고 있었던 것었다.
관계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움켜쥐려 하면 빠져나간다. 하지만 흘러나간 것들 중 일부는 연어처럼 돌아오기에 억지로 붙잡을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속에서 웃고 즐기고 공감하며 순간의 기쁨만을 취하자. 나는 여전히 관계를 잘 모르겠고 온전히 이해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노력해보려한다.
시간을 잊은 수다 속에 밤이 저물고 아쉬운 이별을 하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끝이 아니었다. 페이지 한 장이 넘어가서 다시 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