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나는 당신의 안녕을 빈다.

by 김군

한없이 무한할 것 같던 젊음의 시들어감에 돌아본 자리는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들이 많다. 느리게만 갈 것 같던 나의 시간 속에서 계산기를 투닥투닥 두드리면서 늘어나는 슬픔은 일상이 되었다. 잿 바퀴 같은 하루 속에서 새로울 것도 없고 무의미하다는 것이 무기력함을 가져온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신호음이 몇 차례 울리고 직업상 혹여나 거래처의 연락이 아닐까 망설임에 전화를 받았다. 약간의 떨림의 여보세요 라는 음성을 내뱉었을 때 나의 이름을 정겹게 말하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머릿속으로 간적인 정적이 흐르면서 생각의 시간을 빠르게 줄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떠올라지지 않았다.


결국 누구세요라는 말이라는 멋쩍게 나오게 되었다. 상대방은 애써 실망감을 감추며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본가인 울산 다음으로 나의 삶에서 영향을 준 도시 부산 바로 그곳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우리는 내가 한때 삶의 열정을 찾기 위해 바둥거릴 때 그림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무드 인디고라는 임명이 호감이 갔다. 동명의 영화를 너무 아름답게 보았고 그것이 뇌리에 박혔기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사장되어 없어진 모임이지만 부산을 떠나 대구로 오기 전까지 많은 인연들을 만난 곳이었다. 개중 일부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고 추억의 한파 편을 공유하며 새로운 관계의 그림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녀도 무드 인디고의 한 멤버 중 하나였다. 처음은 사실 꽤나 거리가 있었다. 접점이 많지 않았고 쉽사리 다가가기에는 이성에게는 수동적인 나의 벽이 제동을 걸었다. 몇 차례 같이 모임 사람들과 모여 어울리는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우리의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무드 인디고 시간은 길지 않은 때 끝이 났기에 그렇게 내게 흘러가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우리는 가까워지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뜻 먼저 허물없이 내게 걸어주는 툭툭 던져지는 그녀의 한마디가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받아치던 한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세 마디가 되며 대화가 길어졌다. 그렇게 작은 틈 하나 사이로 흘러들어온 물줄기가 벽을 무너뜨렸다. 그렇게 친구라는 단어가 어울리게 되었다.



고단한 시간이 나를 덮쳐 괴로울 때 어떻게 타이밍이 맞았는지 연락이 왔고 가끔 만나서 시간을 공유하였다. 그녀의 말들이 그리 살갑지만은 않았지만 오히려 내게는 그 속에 묻어있는 진실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꽤나 척박한 나의 하루에 위로가 되며 힘을 주었다.


정신없는 굴레 속에 살다 보니 근간에는 연락이 뜸했고 그녀의 번호가 바뀌었다는 것을 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한편에서 나를 찔렀지만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게 생각하는 반응에 살짝은 안도감이 돌았다.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대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녀 답지 않게 꽤나 어색해하고 미안해하는 분위기가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평소보다 한 톤 올려 도움을 주겠다고 오버스럽게 이야기했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다행히도 상황이 잘 풀려 부탁의 필요성이 깨졌다는 것을 뒤에 듣게 되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번거로운 부탁이라 생각했는데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도와준다는 게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그리고 다음에 부산에 오면 밥을 사준다고 하였다. 마침 근간에 일이 있어 부산에 가게 돼서 약속을 바로 잡았다. 간이 지나 만남의 당일이 왔고 볼일을 보고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장소를 전달받고 예상보다 일찍 도착하여 기다렸다. 다행히 식당이 예전 같이 가보았던 곳이라 헤매지는 않았다. 도착 연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왔고 우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하였다. 주말이기도 했고 꽤나 맛집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렸고 그 안에서는 대화를 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식사를 빨리 끝내고 카페로 향했다. 계산을 하려 했지만 내 손을 막아서고 재빠르게 카드를 내민 덕에 대신 커피를 사기로 하였다.


주변의 소음이 잦아드니 차분해지며 반가움이 밀려왔다. 커피 한 모금에 수 마디의 말들이 티어 나왔다. 그것들은 메마른 타지의 삶에 어려움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 속에는 내 뜻을 몰라주는 직장 상사와 부하들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구질 구질하게 끊지 못한 연인에 대한 기억의 잔상들도 크게 지분을 차지했다.



내 이야기에 끄덕여주고 공감해주는 것에 희열을 느껴서 수다쟁이가 되었다. 주고받는 대화들이 위로가 되었지만 내게 한마디가 유독 가슴에 와닿았다. "나는 네가 충분히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 너무 따뜻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애써 감췄다.


시간이 쏜살같음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고받는 대화가 끝이 없었다. 그녀는 예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예전 업무와 전혀 연관성이 없기에 놀랐지만 나는 그녀가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으로 응원했다.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안녕을 기원한다 너를 아끼는 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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