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에 기대어 : 26. 인내

Every Thursday, a new word

by Hee
인내 paitence

어렵거나 힘든 상황을 참고 견디는 마음이나 태도
a mindset of resilience and perseverance in difficult situations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진부함이라는 건 반복된 뻔함에 지겨움만 주는 단어라 치부했다. 옛말 하나 틀린 게 없다는 말은 진부함과 결이 같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 진부함과 뻔함이 사실은 그만큼 많은 사람과 상황에 통용되는 진리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시대를 통과한 철학자들의 글에 왜 진리가 있다고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빠른 성취를 특별하고 좋은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숙성되지 않은 성취는 그만큼의 가벼운 만족감을 준다. 장거리를 잘 달리는 사람에게 10km라는 거리는 버겁지 않은 숫자일 것이다. 하지만 나같이 장거리가 쥐약인 사람에게 이 거리는 숫자만으로도 고개를 절로 젓게 만든다. 이런 나에게도 꾸준함이라는 시간의 노력이 숫자의 변화를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커져가는 숫자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설렘이 되었다.


2025년 봄, 나는 처음으로 인생에서 10킬로라는 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1년이 지난 후였다. 이 날부터 나에게 숫자 10은 불가능이 아닌 가능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왔다. 이때 느낀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거워진 다리와는 정반대로 그날 나의 기분은 깃털처럼 종일 붕 떠있었다. 만약 내가 평소에도 10km를 거뜬히 뛰었다면 이 만큼의 기쁨을 가지진 못했을 거다.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닥쳐오는 타협의 순간을 인내하다 보니 조금 더 깊어진 내가 서 있었다.


과거의 나도 남들보다 빠른 성취에 몰두했고 우뚝 서고 싶은 욕심이 가득했다. 지금도 내가 있는 분야에선 특별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건 그대로지만 속도에 대해서는 굉장히 유연해졌다. 빠른 완성은 모래성이 되어 작은 파도에도 부서져버린다.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단단히 만들어가는 과정과 거기서 얻게 되는 소소한 성취들, 이 결과들이 주는 행복이 인생을 만들고 삶의 재미를 준다.


그렇기에 나는 늘 부족함을 찾는다. 부정이 아닌 긍정의 마음으로. 그리고 발견한 이 틈새를 다양한 시간 속에 채워나간다. 과거엔 이 공백이 치부였다면 지금은 과정 속에 담길 시간들, 그만큼의 인내와 고통이 어떤 기쁨을 줄지 기대되어 설레는 일이 되었다. 여전히 아이 같은 나는 기다림이 괴롭다. 그렇지만 이 기다림을 늘려가는 나를 볼 때, 힘듦을 인내하는 나를 발견하면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얼굴에 퍼진다.


요즘 나에게 열매를 줄 무언가가 생겼다. 이걸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스스로와 다투며 행복한 괴로움을 겪고 있다. 작은 성취로 모일 미래의 내 열매가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줄지 벌써부터 기대되는 4월의 첫째 주 목요일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