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험주의자다. 뭐든지 내가 겪어봐야 된다. 어느 영상에서 윤종신 씨가 ‘깨달음은 늦는 맛이죠’ 라는 말을 했다. 이 영상 밑에는 대립 대는 의견들로 분분했는데 나는 완전히 찬성의 입장이다.
이성을 사귀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아이를 낳아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군대를 다녀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남자로 태어나 살아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등 인생의 다양한 경험들은 글이나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안다고 착각할 순 있지만 실제로 겪지 않는다면 제대로 알 수 없다. 물론 모든 일을 내가 다 겪을 수 없기에 간접경험도 소중하다. 그런데 겪은 후 알게 된 깨달음의 순간이 너무 이르면 잘 깨닫기가 어렵다. 그래서 늦는 맛이라는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지금 깨달은 것들을 20대에 알았다면 지금 같은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수많은 사건 중 때로는 내가 당장하고 있는 일이 무의미하다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겪은 경험은 언제가 될지 몰라도 정말 조금의 영향일지라도 내 삶에 도움이 된다. 내가 겪는 일 중 무가치한 것은 없다.
취준생 시절. 한 장학 재단에 최종 합격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뽑힌 이유는 자전거 동아리 덕분이었다. 전임자가 아파서 그만두었기에 이곳은 건강한 사람이 필요했다. 자전거 동아리 이력과 대회 수상 경력은 나의 건강 상태를 대변해 주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신청을 한 뒤 남들 다 취직 준비할 때 나는 자전거 동아리에 들어가 그야말로 실컷 놀았다. 내 대학생활 낭만의 팔할은 여기다. 그러다 우연히 나간 대회에서 수상을 했는데 사실 이런 대회는 참가하는 여자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나가기만 해도 메달이다. 이 상은 그런 상이었지만 내 면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20대 후반. 내 인생의 암흑기에 요가 레슨을 받던 중 이 수업을 추천해 준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요가 지도자 자격증반에 들어갔다. 그렇게 요가에 더 깊어졌고 기구 필라테스 지도자 자격증, 생활체육지도자 2급(보디빌딩)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내가 교육받은 곳의 원장님은 나와 같은 결을 가지신 분이 아니었다. 천만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과 아쉬움으로 나는 결국 서울 자이요가까지 찾아가게 되었고 거기서 존경하는 민진희 원장님을 알게 되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진희원장님이 나주에서 좋은 일을 하실 때 조금의 디딤돌이 될 수 있었다. 한때는 나의 요가자격증이 무가치하다 생각했는데 이 경험 덕분에 감사한 일이 생겼다.
30대 초반. 취미 생활로 시작한 댄스학원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겪을 수 있었다. 에너지 넘치고 기센 사람들 틈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훨씬 더 단단해지는 경험을 쌓았고 취미반이지만 단체로 대회에 나가 상도 두 번이나 받았다. 원래도 춤을 좋아했지만 제대로 배울 기회를 쌓게 되어 어린 시절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펼치지 못한 꿈을 조금이나마 들춰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이 안에서의 다양한 경험으로 나는 남녀불문 사람이 더 좋아졌다.
지금 나를 돌아봤을 때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모르겠고 후회스럽더라도 한 가지는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 일이 무조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방향을 바꾸고 싶다면 그것도 나는 찬성이다. 그러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닌 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하고 이 결정에 후회가 없으려면 나에 대해 충분한 공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에게 제일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운이 좋게도 나는 어떤 시기에 나에 대해 공부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었다. 당시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이 밑거름이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단단한 토대가 되었다. 나에 대한 충분한 탐구가 끝나고 난 뒤 하는 결정에는 후회나 머뭇거림이 없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각자 마음에 품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그냥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지금 순간이 힘들어도 다 자양분이 될 약이라 생각하고 잘 버티었으면.
일출 55분 전. 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