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Thursday, a new word
답답하다 (답답함)
1.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후련하지 않아 애가 타고 안타깝다. (=갑갑하다)
2. 융통성이 없이 고지식하여 딱하다. (=고지식하다, 따분하다)
3. 비좁거나 꽉 막힌 느낌이 있어 마음에 여유가 없다. (=갑갑하다)
11월의 새벽, 겨울의 시작이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문틈사이로 스며들어 내 발끝을 건드린다.
나의 공간에 앉아 노트북을 살펴보다 예전 메모장에 쓴 글들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근원을 찾아간다면 유치원 시절 그림일기부터일 테고 의미부여가 특기인 내가, 의미를 담기 시작한 것의 시작은 초등학생 시절 남자 둘, 여자 둘로 교환일기를 썼던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교환일기는 마무리를 지을 때 웃긴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풀어보겠다.
메모장 글들을 보니 가장 오래된 파일의 날짜는 2019년 8월 19일. 제목은 답답함. 그것도 새벽 1시에 작성했다. 뭐가 그렇게 답답했을까 읽기도 전에 웃음이 나왔다. 과거나 지금이나 답답하면 글부터 쓰게 되는 게 나라는 사람의 해소방법인가 보다.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편이지만 이렇게 감정이 올라왔을 때의 글은 다음날 봤을 때 발차기가 절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다시 읽기가 꺼려지곤 한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이고 어떤 내용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더블클릭을 했다.
“정말 속상한 밤이다...” 로 시작하는 약 600자 정도의 짧은 글에는 답답함의 정의처럼 내 마음이 얼마나 꽉 막히고 애가 타는지에 대한 하소연이 담겨있었다. 지금 이 글은 그때의 글을 보며 동시에 작성하고 있는데 글 속의 나는 누구도 이 답답함을 온전히 알아줄 수 없음에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6년 뒤 글을 읽고 있는 지금의 나는 입꼬리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잔뜩 머금고 답답함에 몸부림치는 6년 전의 귀여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글의 중간에는 감정의 클라이맥스가 등장한다.
“바위를 올려놓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메인다…”
글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고구마를 먹다 목이 막힌 듯 나도 함께 답답해진다. 하지만 귀엽다. 이때의 나는 당시의 이슈가 온몸을 짓누르는 바위덩어리로 느껴졌는데 시간이 흐른 뒤 바라본 ‘그 일’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작은 돌멩이었다.
앞선 관계에 대한 글처럼 나는 어른인 척 여유를 부리며 이건 큰 어려움도, 나를 잃을 사건도 아니었구나를 중얼거려 본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속담은 나를 위한 말이 맞나 보다. 2019년 8월 19일의 글은 해소의 창구가 되어주었고 2025년 11월 28일의 글도 여전히 나의 해소의 창구이다. 기쁠 때보다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로 어지러울 때 글이 생각나는 빈도가 높아 이러다 브런치가 내 투정의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훌쩍이며 고자질하는 어린아이처럼.
누구나 마음 한켠에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한 번씩 건드려지는 외부의 자극에 내 안의 어린아이가 툭 튀어나와 철없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숫자를 통한 어른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진다 해도 내 마음속 어린아이는 늘 아이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테니 심술궂다고 혼내고 다그치기보단 잘 달래고 어루만져줘 애정하는 마음을 듬뿍 줘야겠다.
나는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