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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렛 Dec 08. 2020

40, 이토록 꽉 찬 불안

낼모레 마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서른은 아주 가볍게 맞이했던 것 같다. 계란 한 판 30살 그리고 배스킨라빈스 31살. 새해에 잠시 우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 잠시였다. 서투른 것 투성이던 이십 대보다 훨씬 여유롭고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던 서른 살 무렵, 나는 확실히 스무 살 때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출발선에 서 있었다. 변화된 앞자리 숫자를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은 정말 반짝일 수밖에 없는 나이이기에, 마치 푸르른 5월처럼 계절을 만끽하기 좋은 시절이라는 걸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흔은 어떨까? 이 나이 또한 돌아보면 빛나는 나이인 걸까? 10년 후에 돌아보면 물론 아름다운 시절일 것이다. 하지만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의 심정은 적어도 서른 즈음보다는 덜 신나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 사실 덜 신나는 정도가 아니라 짜증이 확 밀려오는 느낌이다. 마치 뜨겁게 내려쬐는 햇볕과 흐르는 땀방울에 자꾸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무더운 여름처럼... 전혀 유쾌하지 않다.


단지 나이를 먹고 주름과 뱃살이 늘어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몸의 변화만 생기는 것이라면 차라리 괜찮을 텐데, 마흔이라는 나이에서 느껴지는 중년의 향기가 몸서리치게 싫은 것 같다.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중년의 범주에 들어서게 되는 것 같은 그 느낌 말이다.

물론 이제 나는 아이 엄마이고, 회사에서는 선임이며 아줌마라고 불려도 어색하지 않을 여자 사람이긴 하지만, 이십 대에 하던 고민들의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는데... 아직도 내 속에는 엄마 품이 제일 따뜻하고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 싫고 옷 잘 입는 친구를 선망하며 따라 입고 싶어 하는 십 대의 내가 그대로 살고 있는데... 나이가 무려 사십이라니!!! 억울하고 기가 찰뿐이다.


마흔은 왜 불안한 걸까


올해도 정말 끝나간다는 느낌이 강했던 12월의 첫날, 한 친구와 우리의 나이에 대해 한탄하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 친구는 짜증을 넘어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평생 혼자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생각을 하면 진짜 불안해져. 근데 더 불안한 건 50대에도 안정적일 거란 낙관이 들지 않는다는 거야. 그냥 쭉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로 살 것 같아”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있다지만, 미혼자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부담은 여전하다. 옛 생각에 갇혀 있는 어른들과 타인의 결혼과 출산에 간섭하는(사실은 별생각 없이 던지는) 주변의 말들이 당사자들에겐 돌이 되어 날아드는 게 아직은 다반사다.

게다가 이런 것들이 전혀 아무렇지 않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다고 해도 결혼과 출산으로 바빠진 친구들과 만남도 어렵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니까. 적극적으로 새로운 만남이나 모임에 참여하는 성향이 아니라면 외로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것 같다.


또한 경제적인 부분도 우리의 불안감에 꽤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십 대 때 ‘언제부터 일할 수 있을까? 너무 일하고 싶은데’라며 취업을 고민했던 우리는 어느새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너무 일하기 싫은데’ 라며 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아닌 이상 45세면 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라는 요즘, 그때부터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싶은 동시에 그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인 경우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부담이고, 결혼 후엔 책임져야 할 아이로 인해 더 큰 부담이고... 결국 그 누구도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프니까 중년이다


한때 유행어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제목을 처음 들었던 시절, 나는 ‘찐’ 청년이었다. 취업난이나 학자금 대출에 시달리는 그런 기사 속에 등장하는 아픈 청년은 아니었어도 그 말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시절이 지나면 더 좋은 시절이 오겠지, 그땐 아프지도 흔들리지도 않겠지라며 나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슬프게도 난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물론 당시에 하던 고민은 모두 종결된 상태지만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고민을 안고 새로운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흔들리고 아프고 불안한 건 그냥 나이와 상관없는 인류 공통의 감정인 건가? 부자든 가난하든, 예쁘든 못생기든 각자의 고민과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 아닌가? 결국 모든 것은 내 마음먹기 달려있다는 뻔한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마흔 살이 되면 여행을 가자

서른을 앞둔 20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는 해외에서 보냈었다. 왠지 모를 우울함으로 도저히 한국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비키니와 산타 모자를 챙겨 더운 나라로 떠났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유쾌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여유로운 바다에서 힐링을 만끽하며 에너지를 잔뜩 채워온 나는 신명 나는 서른의 나날들을 보냈던 것 같다.

여행이 모든 것을 바꾼 건 분명 아닐 테지만 복작대는 일상 속에서 한탄한 듯 답은 나오지 않으니까,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누가 먼저 빠져나오느냐가 관건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흔 싫어, 마흔 싫어...” 앉아서 타령만 부르는 것보다는 세상에 아직 아름다운 것도 할 것도 즐길거리도 많다는 사실을, 크나큰 세상과 우주적 관점에서 나는 그리고 오늘은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나면 모든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나이는 잠시 잊고, 진짜 돌이킬 수 없는 마흔 살이 되는 해엔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리라 결심해본다.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괜찮은 느낌이다. 이제 남은 건 그전까지 코로나가 꼭 사라져 주길 고대하는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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