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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금쪽이를 위한 랩소디

좋은 상담소를 찾아가려면

by 향인

식은땀이 흘렀다. 네이버 지도와 주변 건물을 두리번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화로 상담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 첫날인데 지각이라니. 간혹 중요한 날 출몰해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길치 자아가 하필 오늘 나타나다니. 지각하지 않기 위해 늘 일찍 집을 나서는 편인데 오늘은 서둘러 나온 시간을 다 잡아먹도록 심하게 길을 헤맸다.


선생님은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았다. 불친절했다는 뜻은 아니다. 으레 밖에서 어딘가에 가면 받는 부담스러운 친절한 환영인사 대신 차분한 응대만 있었을 뿐이다. 잔뜩 긴장했던 나는 처음엔 내가 늦어서 혹시 기분이 언짢으신 건가 눈치도 보였다.


오피스텔에 있는 상담소에는 세 개의 방과 공용 거실이 있었다. 나는 정면의 창을 바라보고 상담 선생님과 자그마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큼지막한 각티슈에 자꾸만 눈길이 향했다. 사람들이 여기서 울고 가나? 생각하던 중 선생님의 첫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떻게 오셨어요, 라니. 뭐라고 답해야 하지. 말문이 턱 막혔다. 마음이 힘들어서 오긴 했는데 뭘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당황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상담센터에 오면 뭔가 알아서 다 해주리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치과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알아서 진료를 하고 상한 곳을 찾아내 치료를 해주지 않는가.


근데 아니었다. 상담 선생님은 질문을 던지시고는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침묵이 길어졌고 나는 또 땀이 났다. 첫마디를 어떻게 뗐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중에 상담을 오래 받고 나서야, 심리 상담이 어떻게 이뤄지는 건지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그때 그 질문이 이해되었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함께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때 상담자는 배가 목적지를 향해 잘 가고 있는지 점검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면, 그 배를 이끌고 가는 건 온전히 내담자의 몫이다. 먼저 그 배를 탈 건지 말 건지부터 언제 내릴 건지 결정하는 것은 모두 ‘내가’ 하는 것이었다. 문제 해결의 키는 전문가가 아니라 결국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불행히도 아직 심리상담 서비스의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십수 년 전부터 요구는 많았으나 이뤄지지 못했고, 최근에 들어서야 여야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갖고 관련 법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엔 심리 상담 관련 민간 자격증이 수천 개가 넘는다. 그 수천 개의 민간 자격증 중에 정말 제대로 교육받고 적합한 수련 과정을 거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자격증은 소수다. 대다수는 근본을 알 수 없는 것들이다. SNS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온라인 강의 10시간만 이수하면 상담사 1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 식의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몇 시간 강의 이수로 심리 상담 자격증을 딴 사람이 전문가라고 간판을 내걸고, 상담소를 차린 뒤 내담자들을 만나는 상상을 하면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그 끔찍한 일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최근 뉴스에서 보도된 심리상담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뉴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으나 방치된 불행의 결과다.


반면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받아보고 싶은 일반인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어디서 관련 정보를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처럼 주변에 관련 분야 지인이 있었던 경우가 아니라면 잘못 헤매기 십상이다. 부디 심리상담 서비스의 법제화가 제대로 이뤄지길,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늦지 않은 때에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좋은 상담소를 찾으려면?


상담소는 크게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사설 상담센터와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상담기관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기업 상담, 군 상담, 성폭력 상담, 트라우마 상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상담 기관들이 있습니다.


상담 센터를 이용할 때(특히 유료 사설 센터) 반드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해당 기관의 상담사들이 신뢰할만한 자격증을 취득했는가입니다. 한국에는 심리 상담과 관련한 여러 학회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의 규모가 가장 큽니다. 양 학회 모두 상당한 기간의 상담 수련 및 슈퍼비전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에 필기 및 면접시험을 통과해야만 전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무료 상담 기관은 보통 10회기 내외의 단기 상담이긴 하지만, 단기 상담을 통해서도 충분히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큰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 증상이 나타난 분들은 몇 회의 상담을 통해서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급한 불은 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아래는 연령대 별로 이용 가능한 무료 혹은 저렴한 공공 상담 기관들입니다. 공공기관에서는 대부분 신뢰할만한 자격증을 취득한 심리상담사를 선발합니다. 검색창에 해당 기관을 검색해보시면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아동 청소년 : 청소년상담복지센터(만9세~24세 이용 가능. 지역 별로 있음. OO시, OO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검색)

성인 : 건강가정지원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시군구별로 있음)

영유아 부모 : 육아종합지원센터(전국 시도에 19개, 서울에 구별로 25개) 0~7세 영유아를 기르고 있는 부모 대상

기타

- 서울시 청년 마음건강지원사업

https://youth.seoul.go.kr/site/main/content/mind_reliable_ask

- 서울심리지원_동남센터 : 서울시 거주, 서울 소재 직장 근무 시민 대상

http://www.psy-supporter.or.kr/

- 서울심리지원_동북센터 : 서울시 거주, 서울 소재 직장 근무 시민 대상

https://seoulpsy-dongbuk.or.kr:6068/web/home.php

- 서울심리지원_서남센터 : 서울시 거주, 서울 소재 직장 근무 시민 대상

http://www.seoulps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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