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은 처음이라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그럭저럭 잘 지냈어요”
상담 초반엔 한동안 이런 숨 막히는 어색함이 계속됐다. 1-2회기 때 나의 인생사를 대략 이야기해놓고 나니 이제 뭘 더 얘기해야 되나 싶었다. 할 얘기 다 한 것 같은데.
내가 적극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서 일까. 선생님이 자꾸 엄마, 아빠에 대해 묻는다. 어떤 분들이었는지, 나의 어린 시절 가족 관계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아니 왜 자꾸 그걸 물어보시지? 난 분명 우울해서 힘들고 앞으로가 걱정돼서 찾아왔다고 했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자꾸 끌어오시나. 과거 이야기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의아함, 궁금함, 알 수 없는 반발심 사이를 헤매고 있었으나 왜 그걸 물으시냐고 묻지 않았다. 난 말을 잘 주워 삼키는 사람이었다.
남 앞에서 부모님 얘기를 하는 것이 낯설고 불편했다.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던 것, 속상했던 일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꼭 부모님 욕을 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내가 이야기를 하고 나서 계속 “근데 그건 제가 잘못한 거예요. 제 탓이에요.” 그랬나 보다.
“그건 **씨 잘못이 아니에요.”
상담 선생님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내게 “그렇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말해보라고 했다. 좀 전에 상담실에 들어와서 감기약 먹은 것처럼 말하고 꿀꺽 삼켜보라고 하셨다.
또 식은땀이 흐르고 긴장됐다. 어쩌지. 못하겠는데. 결국 나는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못하겠다고 하고 눈치를 살피는데 선생님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보였다.
상담실에 처음 찾아온 내담자들이 자주 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근데 상담에서 이런 얘기도 해도 돼요?” 혹은 “상담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의 권유를 받아 상담 신청을 하고 찾아왔는데,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낯선 사람에게 자기 속을 까보여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 거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담사와 일대일로 정면으로 마주 앉아 눈빛을 교환하는 그 뻘쭘한 상황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내밀한 마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내담자들이 그렇게 물으면 나는 내담자에 따라 몇 가지 대답을 해준다. 말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이 높거나, 상담사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어쩌지 불안해하면, 누구나 처음엔 다 어려워한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지금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된다고 안심시킨다.
시시콜콜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하는 내담자에게는 나의 상담 선생님이 그랬듯 “그게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라고 되묻기도 한다.
심리 상담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 또한 한계를 가진 만남이다. 중요한 건 상담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당신이 지금 선택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는지를 말하다 보면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소망과 두려움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 무엇이든 가서 말해보라. 말하는 것부터가 변화의 시작이다.
“인간은 주관적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동기를 갖고 잠재력을 발휘하여
성장해나가는 존재다”
(by 칼 로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