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센터
그는 잠을 잊은 지 오래다. 퇴근 후 피로감에 온 몸이 스펀지처럼 가라앉아도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려고 누우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그날 낮에 있었던 일들, 갑자기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스쳐 지나가는 갖은 상념 등으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간다. 몇 달째 불면증에 시달리니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달만 회사에 지각한 게 벌써 세 번째다.
어느 날 그녀는 출근길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쿵쾅대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슴은 점점 답답해져 오기 시작하고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공포감에 지하철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날부터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웠다. 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될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상담 일을 하다 보니 의도치 않아도 지인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혹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닌지 살피게 될 때가 있다. 주변에서 종종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병원에 가야 할까 상담소에 가야 할까?”이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 상담센터는 양자택일의 영역은 아니다.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병행했을 때 치료 효과가 훨씬 높기 때문이고 이는 많은 경험 연구들을 통해 밝혀졌다.
물론 모든 케이스가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정신병리도 스펙트럼 상에 놓고 보면, 매우 심각하게 병리적인 수준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덜 심각한 수준까지 그 양상이 다양하다.
따라서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사례인데 약물 복용에 대한 거부감으로 상담 만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도 문제고, 심리 상담이 필수적인데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
스스로 내가 약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먼저 심리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다. 심리검사는 병원에서 받을 수도 있지만, 직장인이라면 기업 내 사내 상담실, 대학생이라면 교내 학생생활 상담소 등에서도 MMPI-2 등의 검사는 받아볼 수 있다. 검사 후에 전문가의 검사 해석을 듣고 병원에 내방하는 것도 괜찮다.
정리하자면, 병원에 가는 것이 적합한 경우는 병리적인 증상의 심각도가 높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이전처럼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경우다. 앞에 제시한 사례처럼 공황 발작, 불면증, 우울증 등 정신적인 고통이 심각해 평범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게 어렵다고 판단된다면 약물치료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반면 심리 상담센터는 꼭 정신병리와 관련된 문제만이 아니라 스트레스 관리 및 정서조절, 대인관계, 직장 내 어려움, 부부 문제, 가족 갈등, 자녀 양육 등 다양한 주제로 내방할 수 있다. 병원과 연계된 심리상담센터에는 아무래도 병리 진단을 받은 내담자들이 주로 방문하겠지만, 그 외에는 정말 다양한 호소 문제와 문제 해결 욕구를 가진 내담자들이 방문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부 교수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기존의 심리학이 주로 인간의 고통, 부정적인 정서에 초점을 맞춘 것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행복”, “강점” 등 긍정적인 속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흐름이 바로 긍정심리학이다.
호흡이 긴 상담의 경우 내담자들과의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처음 상담실에 들고 왔던 급한 불(주 호소문제)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면, 많은 내담자들이 관심의 초점을 자기의 내적인 성장으로 옮겨 가곤 한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등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내담자들의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마틴 셀리그먼이 긍정심리학을 창시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의 늪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긴 터널을 지나 새로운 삶의 성장을 이뤄내는 그들의 모습을 감탄하며 지켜볼 수 있어서 종종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상담받으러 왔다는 것 만으로 뭔가 심각한 문제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왠지 더 주눅 들고 쪼그라져 있던 내게 상담 샘이 무심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다들 어디 하나씩은 이상하지 않나요?”
가끔 나 스스로 좀 별로로 보일 때 이 말을 떠올리면 참 안심이 된다. 그래, 좀 후져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