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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에 이르렀는가

문제의 인식 :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by 향인

사찰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크고 작은 것에 마음이 늘 흔들리던 시절이었다. 새벽 예불 시간 텅 빈 마음을 경건히 울리는 목탁 소리와 염불을 외는 청아한 스님의 목소리에 잠시 마음을 의탁했다. 불자도 아니었는데 왜 갑자기 절로 들어갈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갑갑한 현실에서 가능한 멀리 도망가고 싶었던 것 같다. 첫새벽 예불 시간, 나누어준 경전을 손에 들고 스님의 암송을 따라 외는데 가슴 저 밑바닥에서 느닷없이 불쑥, 뜨거운 것이 왈칵 치밀었다.


"참된 성품 등지옵고 무명 속에 뛰어들어
나고 죽는 물결 따라 빛과 소리 물이 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 번뇌 쌓았으며
보고 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 지어
잘못된 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 남을 집착하고 그른 길만 찾아다녀
여러 생에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전에 원력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내 마음이 울린 구절은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의 한 대목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 있던, 나 자신도 미처 알아주지 못한 번뇌를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애쓰며 사는 동안 알면서 혹은 모르면서 말하고 행동하며 지은 크고 작은 삶의 허물에 몸과 영혼이 모두 지쳐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은 여러 가지 힘든 일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결국은 마음의 문제였을까. 며칠 동안 발원문을 따라 외면서 점차 모든 것이 내 마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면 삶이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마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일까? 절에서 수행이라도 해야 되는 것일까? 내가 내 마음에 자꾸 걸려 넘어진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초중고부터 대학교육까지 20년이 넘게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교육을 받아왔지만, 단 한 번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법, 마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었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내가 원하는 삶의 변화를 이뤄낼 수 있으리란 깨달음, 커다란 숙제를 안고 산을 내려왔지만, 그 후로도 수년 동안 방법을 찾지 못해 헤매었다. 쳇바퀴처럼 도는 건조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혼자 길을 헤매었고, 우울했다. 우울해하던 나를 오래 보던 지인이 가볍게 물었다.


"힘들면 심리 상담받아보면 어때?"


심리 상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가끔 접했지, 실제로 그 단어를 들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생경했다.


그로부터 수개월 뒤 고민 끝에 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아는 바가 없기에 기대도 전혀 없는, 밑져야 본전이지 심정으로. 그때는 몰랐다. 그 문이 자기 이해라는 기나긴 항해의 첫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저씨 이선균이 지안 아이유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을 보면서 문득 사찰에서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외던, 어쩌면 처음으로 내면의 고통과 피하지 않고 마주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마음의 평화에 머문다는 건 여전히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또 다른 ‘나’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지안(至安), 평안에 이르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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