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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Mar 31. 2021

아빠의 마지막 수첩_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심리적 방어기제_1편 부인(denial)

아빠의 유품은 많지 않았다. 먼지가 쌓여있는 오래된 책들과 몇 안 되는 옷가지들, 그리고 수첩.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정도의 작은 수첩이었다. 수첩에는 암에 좋다는 차가 버섯 등의 약재료와 그날 하루 먹은 음식이 적혀 있었다. 아빠의 수첩을 보면서 그 해 여름, 병원에서 의사를 만나고 나와 아빠가 중얼거렸던 모습이 떠올랐다.


"치료받고 나아지면 얼른 일 시작해야 해. 계속 언제 올 거냐고들 그러는데. 빨리 가야지"


담배를 피우며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던 아빠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 의사는 가족을 따로 불러 아빠의 남은 날이 10개월 정도이며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는 말을 전한 상태였고, 아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해 다시 일하게 되리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 듯한 아빠의 태도는 나에게 어리석게 느껴지고, 슬프고, 한편 경외롭기도 한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엄마는 아빠가 항암 치료 때문에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웃으며, 눈엔 눈물을 머금은 채 내게 말했다. 그해 가을 끝무렵 찬 바람에 폐렴이 걸려 상태가 급속히 나빠진 아빠는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이 안돼 돌아가셨다.


그해 여름 아빠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의 끈을 끝끝내 붙들고 있던 모습은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직면했을 때 가장 흔히 나타내는 반응인 '부인'(denial)과 닮았다.


부인은 말 그대로 일어난 일에 대해 "No", "이건 아니야"라고 스스로 되뇌며 실제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갑작스러운 고통을 마주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여러 가지 심리적인 방어기제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며 자동적인 반응이기도 하다. 원초적인 방어기제는 유아기 아이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놓은 장난감을 어린 동생이 무심코 망가뜨려놨을 때 "아니야"라고 외치며 통곡하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가? 성인만큼의 정서조절 능력이 발달되지 않은 유아기 아동들은 갑작스러운 좌절 상황에 맞닥뜨리면 "아니야"라고 말하며 벌어진 일을 부정하곤 한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마치 그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처럼.


이러한 원초적인 부인은 아동들만이 아니라 성인들도 살면서 종종 경험하곤 한다. 오래 만난 연인이 갑자기 이별 통보를 했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나 지인이 사고를 당하거나 죽었을 때, 잘 나가던 주식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됐을 때, 철썩 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당했을 때 등등.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좌절 앞에서 인간은 쉽게 무력해지고, 이를 버텨낼 시간과 정신력을 벌기 위해 종종 현실을 부정한다. 애도 심리학의 대가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사람이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혹은 이별)을 마주했을 때 보이는 다섯 가지 정서 반응 중에서 부인을 가장 첫 번째로 꼽았다. 예상치 못한 상실을 마주한 사람은 가장 먼저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중얼거리며 현실을 부인한다. 이 단계에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스스로 이별을 인정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한다.


불쾌한 일을 거부함으로써 심리적인 고통을 줄이려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어기제이다. 때로는 이것이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영웅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소방관이 불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하려고 할 때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한다면 두려움에 압도될 것이다. 위급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해낸 소방관, 시민 영웅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때는 그냥 그 사람을 구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제가 위험할 수 있단 생각은 그 순간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부인의 방어기제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미치는 파장은 꽤나 심각한 경우가 많다. 연인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해 스토킹을 하거나, 폭력으로 이어지는 일, 수년간 아내와 자녀들을 학대해온 남편이 변화할 것이라 믿고 갈라서지 못하는 일, 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과거의 능력과 업적에 집착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일 등.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인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삶의 대가는 매우 뼈저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따금 궁금했다. 아빠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언제쯤 받아들였을까.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을까, 아니면 낙상으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가게 됐을 때였을까. 아빠의 수첩에는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살 희망을 잃지 않았던 기록이 남아있다. 가끔 혼자 생각해본다. 만약 아빠가 남은 날이 10개월이라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데 보냈다면, 우리 가족은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드라마에서처럼 과거의 상처들을 위로하고 서로를 용서하며 부둥켜안고 울기라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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