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유아의 심리적 탄생>
우리는 어머니가 유아에게 자신을 바라보도록 자연스럽게 허용했을 때, 즉 눈의 마주침을 허용하고 고무했을 때, 특히 유아에게 젖을 먹이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를 불러줄 때, 유아의 공생경험은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아의 심리적 탄생> 中, 마가렛 S. 말러. 프렛 파인. 애니 버그만 지음
생후 50일 경이되면서 우리 집 작은 인간은 엄마 얼굴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이전의 배냇짓과는 다른 눈 맞춤과 상호작용을 통한 미소 반응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또또(애칭)를 웃기기 위해 한 번도 내보지 않던,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나 싶은 온갖 우스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매일 소리 버전 업데이트 필수). MBTI 검사에서 늘 내향 점수 만점을 놓치지 않는 극 내향인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는 이렇게 나를 상상치 못한 방면으로 성장시킨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만든다.
마치 알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처럼 외부 자극에 둔감한 채 먹고, 자고, 싸는 신체 생리반응이 우세한 정상적 자폐단계가 지나고 나면, 생후 2~5개월 무렵 아기는 정상적 공생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말러에 따르면
이 시기에 유아는 자신과 어머니가 마치 하나의 전능체계(하나의 공통 경계 내의 이중적 단일체)인 것처럼 행동하고 기능한다.
한마디로 이 시기에 유아는 주양육자와 심리적으로 융합된 상태로, '나'와 '나 아닌 것', 즉 나와 대상/타인 사이의 구분이 없다.
이 시기의 또또는 엄마인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예컨대,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내가 갑자기 손가락을 다쳐서 ‘아야’ 하면, 입꼬리가 내려가며 울상을 짓고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엄마와 ‘나’가 마치 하나라고 느끼는 정상적 공생단계에서 아기들이 느끼는 원시적인 본능을 정신분석에서는 ‘전능 환상(Omnipotant Phantasy)’, 혹은 ‘전능 통제(Omnipotant Control)’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엄마와 내가 하나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고,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전능 통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위의 밑줄 친 단어에 링크된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이 시기는 자극에 대한 유아의 지각적, 정서적 참여가 증가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기억의 섬들'(memory islands)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유아의 세계는 어머니에게 집중되며, 어머니에 대한 리비도 집중이 이 단계의 주요한 심리적 성취물이다.
말러는 기억의 흔적들에서 신체적 자기 및 나중의 정신적 자기의 상뿐만 아니라 애정 대상의 상도 생겨난다고 말했다.
아기의 몸과 의식, 무의식 속에 저장될 기억의 흔적들 중에 가장 긍정적이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은 주양육자의 ‘안아주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꽉 안아주는 자극 속에서 아직 불안정한 상태였던 유아는 심리생리적 평형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평형 상태 속에서 개별 된 존재로 ‘분화‘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도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다고 느낄 때 누군가 꼭 안아주면 긴장이 풀리면서 한 순간 안도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안아주는 행동이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기울어져 있던 마음을 따뜻한 신체 자극을 통해 균형 상태로 바로 잡는 데는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균형이 잡혀야 비로소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여유가 생기게 된다.
말러가 말하는 ‘분리 개별화(궁금하신 분은 링크 참고)’라는 인간의 심리 발달 과업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가 ‘공생 단계’인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탄생 초기부터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겠다고 잘 안아주지 않고 분리된 경험을 많이 하게 하면 오히려 심리적 분화가 이뤄지지 않으며, 반대로 마치 너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일치된, 마음껏 의지하고 안기는 경험을 통해 분리된 존재, 개성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이 심리 상담을 받는 것에 대해 주저하는 마음을 가지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 의지하게 될까 봐’인데, 이것도 사실 공생단계와 분화의 관계를 이해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신뢰할만한) 상담 관계에서 정말로 흠뻑, 마음껏 의지해본 내담자들은 더 이상 종결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잘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