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쓰는 글_병아리
초등학교가 아직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 학교 앞 하굣길에서 허름한 종이 상자에 잔뜩 들어있는 병아리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의 94년 넥스트 앨범에 실린 노래 <날아라 병아리>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만난 노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로 들어가 (...)
우리 함께 한 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지
어느 날 얄리는 많이 아파 힘없이 누워만 있었지"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병아리를 길 위에서, 학교 앞에서, 아무 데서나 막 팔았던 걸까요? 혹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답을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으면서 짐작하셨겠지만, 저도 학교 앞에서 팔던 작고 여린 병아리를 데려와 집에서 기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제 동생이 사 왔고, 함께 길렀습니다. 작은 상자에 한가득 담겨 이리저리 실려 다녔을 병아리가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아이들이 사 오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죽고 말죠.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집 병아리는 아파서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 않고 계속 살아 마침내 성계가 되었습니다. 나와 내 동생은 신이 나서 사료도 챙겨주고, 상추도 주고, 매일매일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지만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함께 한 행복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마당도 없는 집에서, 다 큰 닭을 계속 그렇게 기를 수 없는 것이 어른들의 매서운 현실이었으니까요. 양철문과 집 담벼락 사이에 있는 길고 좁은 공용 공간에서 기르고 있었거든요.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집 뒷문을 열고 나가 닭이 잘 있는지 확인했는데 조그맣던 닭장이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이 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골머리를 앓던 부모님이 눈독을 들이던 주인집 아저씨에게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차마 글로 적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눈물이 나기 시작했거든요. 주책맞게 이 밤에 이게 뭔 일인가 싶네요. 저는 이 기억을 자주 떠올리지는 않습니다만,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먹먹합니다. 제대로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어른들은 이렇게 아이들에게 무심하게 폭력을 행사하곤 합니다.
밤에 곤히 잠든 아이 옆에 누워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면서도 엄마 몸을 만지며 평온을 찾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작고 여린 것들이 떠올라 마음이 시큰할 때가 많습니다. 아가들은 너무도 작고, 사랑스럽고, 외부 환경에 무력한 존재이니까요.
지금 이 시간 세상 어딘가에서 외롭고, 춥고, 어둡고, 무서운 밤을 보낼 어느 이름 모를 아이들을 떠올리고, 암탉인지 수탉인지도 모르고 이름도 못 지어준 작고 노란 병아리를 떠올리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