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인 Apr 11. 2021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심리적 방어기제_5편 격리와 해리

현대 물리학에서는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현재'의 개념이 주관적인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현재에 대한 생각이 환상이며,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은 효력 없는 일반화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절친했던 친구 미켈레 베소가 죽었을 때 그의 누이에게 이런 글과 함께 감동적인 편지를 썼습니다.

'미켈레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이 기이한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처럼 물리학을 믿는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 고질적으로 집착하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순간의 물리학> 중, 카를로 로벨리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만든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고 흠뻑 빠져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주의 신비를 담은 천체물리학에서 마이크로한 인간의 세포 세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다. 나와는 전혀 거리가 멀던 물리학에 난생처음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다. 인간도 결국 별의 먼지이며, 인간의 몸속에 우주의 근원이 담겨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며칠 전 우연히 <모든 순간의 물리학>(카를로 로벨리 지음)을 접하게 됐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부터 양자역학까지 현대 물리학의 흐름을 아주 쉽게 설명해놓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심리상담을 하면서 경험하고 고민했던 주제들이 물리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는 것, 가능성을 따질 수는 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 사물 혹은 입자 간의 부딪힘, 상호 작용이 있기 전에는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등. 많은 이야기들이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학문이 담고 있는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 이목을 끈 것은 바로 '시간'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직선적으로 흐른다고 상상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한다. 영문법에서 동사 시제를 배울 때 선생님이 칠판에 자주 그리곤 하던 이 그림을 기억하시는지? 왼쪽에서 오른쪽,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직선상의 시간 개념은 한번 흐른 시간을 뒤로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의 지혜를 담고 있다.

영문법 시간에 배우는 동사 시제 구분

한 번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지나간 시간도 되돌릴 수 없다. 컴퓨터 게임하듯이 구간별로 저장해서 지나간 실수를 복구할 기회도 없다. 시간의 잔인함 앞에 좌절하고 무릎 꿇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살아온 시간이 많다는 뜻일 터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는 일반인들의 시간 개념에 대해 '환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빛이 굴절되는 것처럼 시간도 곡선으로 흐르며, 중력이 센 지구 표면(예컨대, 땅)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상대적으로 중력이 약한 높은 곳(예컨대, 산)에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더 나아가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현재'의 개념이 주관적인 것으로 증명되었고, '공간'과 '시간'이라는 고정되어 있는 본질적인 실체에 대한 일반 상식을 뒤집는 설명을 내놓았다.


양자중력이론에서 설명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수용' 하는 공간도 없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긴 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공간 양자와 물질이 계속 서로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과정만 있습니다. 우리 주위를 계속 맴도는 공간과 시간의 환영은 이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더기로 발생할 때의 희미한 모습입니다.

 -  <모든 순간의 물리학> 중, 카를로 로벨리


여기까지 읽고 나서 나는 수년간 개인 분석을 받으며 변화와 퇴보를 반복했던 지난날의 나와 그동안 내가 만난 수많은 내담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나를 포함해 그들이 경험하는 시간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내 앞에 마주 앉아 '여기' 현재에 있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그가 어느새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 혼자 있는 외로운 아이의 마음이 되기도 하고, 현재로 돌아와 그 아이를 바라보는 슬픈 눈을 한 어른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두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 자기 삶에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내담자가 다시 예전의 문제로 되돌아가는 퇴보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구부러진 곡선으로, 용수철 모양의 나선형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때로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고여있거나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내담자가 과거나 현재의 어떤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있었던 객관적인 사건과 그에 대한 생각만 이야기하고, 거기에 담긴 '감정'을 모조리 빼고 이야기할 때 특히 그런 느낌이 든다. 이것을 '격리'(isolation) 방어기제라고 부르는데, 상담실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 자신도 처음 심리 상담을 받을 때 주로 감정을 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중요한 건 일부러, 의식적으로 감정을 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할 때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격리와는 조금 양상이 다르지만,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개인을 지키기 위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비슷한 '해리'(dissociation)도 있다. 격리가 경험에서 감정을 빼는 것이라면, 해리는 특정 경험 자체가 의식 차원에서 아예 차단되어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해리된 경험은 보통 개인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큰 비극(전쟁, 죽음, 학대, 성폭력 등 외상 사건)을 마주했을 때 생겨난다.


격리되고 해리된 시간들은 내담자의 무의식이라는 깊고 넓은 우주 안에서 수면 위로 건져 올려지기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그대로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 나을까. 정해진 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멈춰있거나, 고여있거나, 곡선처럼 굽이치며 흐르는 시간을 바라보며 시간이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사건들이 곧 이 세상 공간이고 그 자체가 시간의 원천이다 (by 카를로 로벨리)

입자들 간의 상호작용, 부딪힘, 사건 자체가 이 세상이라고 말하는 물리학의 진리가 점점 마음 깊이 와 닿는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마음이 발달하는 과정 속에는 '나'와 '너'의 만남이 반드시 선행된다.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만나는 주관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마음이 탄생한다. 입자들이 춤을 추듯 당신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지런한 만남과 부딪힘 속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 춤이 아름답기를 바란다. 햇빛에 부서지며 부지런히 빛나는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욕하면서 닮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