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U Feb 17. 2019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정치적 무관심의 폐해

The Favourite, 2018 후기·리뷰

[줄거리] 18세기 초,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앤 여왕 재임 시절을 배경으로 한 전기, 역사, 드라마 영화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뚱뚱한 군주였던, 앤 여왕은 '신교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교도였던 남동생 제임스(제임스 3세)를 제치고, 형부였던 윌리엄 3세의 뒤를 이었다. 친언니였던 메리 2세와는 사이가 안 좋았지만, 윌리엄 3세의 정책을 대부분 계승했기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뛰어들었다. 영국 왕실 사상 가장 비만했던 앤 여왕은 18번이나 임신했지만, 아들 1명 외에는 일찍 죽었다. 그 외아들마저 여왕보다 먼저 죽었다. 자식복은 없지만, 남편복은 있었다. 덴마크 왕자 외르겐(컴벌랜드 공작 조지 경)은 정치는 서툴렀지만, 앤 여왕을 진실로 아꼈다. 1707년 자상한 남편이 죽고, 앤여왕은 외톨이로 7년을 더 살다가 불우한 삶을 마감했다.


<송곳니(2009)>,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등에서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했던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이번엔 역사를 선택했다. 18세기 초(1710년) 영국, 절대권력을 가졌지만, 후계자 수업을 받지 못한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사라(레이철 바이스)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사라의 사촌이자 몰락한 귀족 출신, 애비게일 매섬(엠마 스톤)이 여왕의 새로운 시종이 되며 사이가 가까워지자 사라와 애비게일은 라이벌 관계가 된다. 말버러 공작부인 사라 제닝스의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애정, 권력, 치정을 둘러싼 일종의 부조리 극이다. 


앤 여왕 시기가 영국 역사에서 중요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식으로 통합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된다. 둘째, 토리당과 휘그당이라는 양당제가 확립된다. 앤 여왕은 (숙종 임금처럼)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토리당 와 연결된 사라 제닝스와 애비게일도 이런 방식으로 실각한다. 셋째,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지브룰터를 손에 넣는다. 참고로, 영국군 사령관, 존 처칠(사라의 남편)은 영국 육군에 손꼽히는 명장 중 하나이다. 어쨌든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를 보면 좀 더 깊이 즐길 수 있다.



전시상황인데도 앤 여왕은 토끼와 화장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소꼽친구이자 최측근인 사라의 관심을 갈구한다. 반면에 권신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던 사라는 화장이 안 먹힌 여왕에게 '오소리'라고 일갈하거나, 여왕이 아끼는 토끼에게 인사를 하라고 명하자 딱 잘라 거절한다. 하지만 여성이라 임명직에 오를수 없다.  이런 막후의 실력자인 사라에게 최근 여왕과 가까워진 애비게일 매섬이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한다. 여왕의 총애를 얻으려는 두 여자는 정치적 야심과 권력, 애정을 얻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인다. 그런데 우리 사극에서 보던 핏빛 암투는 커녕 1차원적이고,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광각렌즈로 찍어서 모서리가 왜곡되어있다.

자세히 훑어보면, 18세기를 재현하기보다는 곳곳에 현대적인 면을 심어놓아서 음악, 촬영, 의상, 미술(프로덕션 디자인) 죄다 의도적이고, 풍자적이다. 음악이 대표적이다. 바흐, 헨델 등 바로크 음악뿐 아니라 20세기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엔, 뤽 페라리, 대중음악가 안나 메레디스, 엘튼 존의 'Skyline Pigeon'이 함께 사용됐다. 


촬영감독, 로비 라이언은  휩팬, 광각렌즈, 큐브릭스런 스테디캠(Kubrickian steadicam)을 통해 이를 화면에 담았다. 그중 로우앵글로 잡은 광각렌즈는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공간 왜곡을 일으키는데, 이는 인물들의 위선과 음모를 대변해준다. 샌디 파월의 시대착오적인 의상은 엄격한 사회 관습을 경멸하며, 피오나 크롬비의 엄격한 미술(올곧은 건축물, 기둥, 계단)과도 불일치를 이룬다. 예를 들면, 슬로모션을 잡은 오리 경주 장면이 아둔한 여왕과 사라와 에비가일의 권력투쟁을 우스꽝스렇게 비꼬고 있다면, 마지막 토끼 장면은 앤과 애비가일의 관계를 비유한다. 실제 역사도 애비가일도 그 전임자처럼 실각한다.



이제 세 사람의 연기를 살펴보자, 여왕의 오른팔이자, 정권의 실세인 사라는 이성적이고, 냉철하지만, 가문이 몰락해버린 애비게일은 감성적이고, 열정적이다. 이런 대조적인 연적이자 정적의 대결은 영화를 흥미롭게 하지만, 그럴수록 고립된 앤 여왕이 더 비극적으로 부각된다. 


다시 말해, 출세지향적인 엠마 스톤과 손아귀에 넣은 권력을 지키려는 레이첼 바이스의 연기도 나무랄 때 없지만, 올리비아 콜먼이야말로 그야말로 군계일학이다. 측근들이 여왕의 총애를 얻으려고 애정공세와 충성경쟁, 아첨을 벌이지만, 정작 자신은 자식도, 남편도 없는 외톨이에다 정치적 역량이 부족해서 이 다툼마저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능한 군주를 완벽히 체화해냈다.



얼핏 사라와 앤의 러브스토리 같기도 하고, 애비가일의 권력투쟁기 같지만, <더 페이보릿: 여왕의 여자>는 정치철학이 부재한 채 오로지 사리사욕과 야심만 가득한 궁중생활을 통해 정치적 무관심의 패해를 보여준다. 정사를 등한시한 '앤 여왕'처럼 주권자(국민)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같은 진짜 중요한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사라 처칠나 애비가일 매섬 같은 측근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가를 재테크 수단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 (4.0/5.0) 


Good :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플라톤-

Caution : 우리나라 전통사극처럼 궁중 암투가 치밀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토끼의 의미 : 헤브라이에서 토끼는 부정한 동물, 마녀의 심부름꾼, 교활한 책략을 상징하며 주의 깊고, 소심한 기질을 상징한답니다. 기독교와 신화적 해석을 즐기는 란티모스이기에 이런 쪽의 해석이 적합할 것 같네요.


또다른 해석 :  그리스 국적의 란티모스가 굳이 영국역사를 다룬 점도 흥미로운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가 어떤 서울시장의 무상급식투표처럼 떨어진 지지율을 올리려는 야망에서 벌인 '브렉시트'를 비판하려는 의도일 수 있습니다. 만약 브렉시트 협상이 결렬된다면, 영화속 전쟁으로 얻은 '지브롤터'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벌어진다는 점에서도 그렇구요. 


 비하인드 스토리 : 각본가인 데보라 데이비스가 20년 전인 1998년에 처음 각본을 썼으나 어느 제작사도 세 명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10년 후, 어떤 제작자가 이걸 란티모스 감독에게 보여줬고, 이 초고를 바탕으로 감독과 토니 맥나마라가 4년간 공동 각색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輝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 데스데이 2 유, 초심을 잃은 블룸하우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