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Joker 2019) 영화 후기
[줄거리]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잭 니콜슨의 심술궂은 광대나 히스 레저의 대담하고 당당한 무정부주의자 혹은 조커의 오리진(기원)을 담고 있는 앨런 무어의 코믹스 <킬링 조크, 1988>와는 맞닿아있는 동시에 완전히 동떨어진 캐릭터를 선보인다. 토드 필립스가 진짜 영감을 받은 건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이다. 둘 다 사회 부적응자가 겪는 심리적 불안을 영화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호아킨 피닉스 역시 마찬가지다.
<조커>가 괜히 70년대 말~8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다. 그 당시 막 각광받기 시작한 신자유주의가 케인스주의를 치유하는 동안 빈부격차는 커졌고, 막 도입된 노동유연화와 축소된 복지는 노동자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특히 저소득층 美의료보험체계가 망가진게 딱 이 시기부터다. 토드 필립스가 <조커>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던 2017년도 노동자들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조커>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커>는 미국 블루칼라 계급이 왜 범죄에 빠지는가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다.
한편 영화적으로 <조커>는 코믹스를 벗어나서 780년대 클래식 작품들의 철학과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왔다. ‘미국은 병들어 있다.’는 입장인 시드니 루멧의 <뜨거운 오후>와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등처럼 고담시를 현실로 끌어내린다. 만연한 부패와 범죄 그리고 경제적 위기, 사회적 타락 등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참고로 19세기 사실주의와 달리 20세기 사실주의가 그러하듯 사회적 변혁 이데올로기와 결합된다. 그래서 <조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으로도 읽히는 까닭이다. 예를 들어, 고담 시의 상류층들이 비참한 노동자의 삶을 그린 <모던 타임스> 보고 있지만, 그저 웃고만 있다. 극장 밖에서는 빈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행오버>등 코미디를 주로 만들어왔다.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듯이 그는 코미디언과 많이 작업해왔다. 그래서 그는 코미디언의 삶과 심리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하필이면 극 중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도 출장 광대다. 아서의 심리가 주된 관심사이므로 슈퍼히어로 영화의 문법을 적용할 여지가 적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슈퍼히어로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광대 아서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해서 영화<조커>는 ‘희극(코미디)이 어떻게 비극과 맞닿아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이는 엔딩 크레딧에 흘러나오는 프랑키 시나트라의 'Send In The Clowns'와 영화 <모던 타임스>의 주제가인 지미 튜란티의 ‘SMILE’가 쓰인 데서 감독의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코미디언은 자신이 슬프거나 화가 나도 관객들 앞에서 웃겨야 한다. 장애가 있는 아서 플렉은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올라도 웃는다. 이는 코미디언의 애환과도 매우 흡사하다. 그런 고충을 호아킨 피닉스는 그의 구겨진 몸과 비참한 얼굴로 표현한다. 그리고 아서 플렉의 고민과 좌절, 불안정한 정신세계는 망상으로 대체된다. 극도로 리얼한 배경과 달리 캐릭터의 심리상태는 초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모순이야말로 조커가 지닌 ‘혼란’이라고 필립스는 (영화적으로) 말한다.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일련의 과정은 더러운 현실세계를 벗어나는 일종의 구원이자 해탈이다. 급기야 대중을 웃길 수 없는 코미디언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부정해버린다.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너뜨리려고 한다. 사회란 무릇 질서로 유지되지 않은가? 조커가 벌이는 범죄와 광기, 혼란은 이 질서를 파괴하기 위함이다. 그로 인해 자신만의 해방을 맛보게 된다.
혼돈의 아이콘 '조커'가 사실은 소심하고 무능력한 소시민였다는 과거는 굳이 <조커>가 아닌 범죄심리드라마여도 상관없다. 역으로 생각하면, 예측불허의 빌런에서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가로막혀 좌절한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인물로 추존된다. 이것이 <조커>를 호볼호로 나뉘는 분기점이다.
★★★★☆ (4.5/5.0)
Good : 호아퀸 피닉스의 명연기가 영화의 단점을 모두 뒤덮는다.
Caution : 알 수 없는 '악의 화신'에서 공감가는 정신이상자로 내려앉다.
●유약한 광대가 범죄자가 되는 <조커>가 미국에서 모방범죄를 우려하는 이유는 ‘선이 악으로 타락해가는 과정을 영화가 생생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 <조커>를 보기 전에 보면 좋을 영화 TOP 5
1. 코미디의 왕 (1983) : 상처 입은 영혼, 입증되지 않은 재능, 비현실적인 꿈에 대한 불편한 성명서
2. 택시 드라이버(1976) : 사회 부적응자의 심리상태와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극사실주의로 표현함
3. 모던 타임스(1936) : 리얼리즘과 코미디를 화학적으로 훌륭하게 결합한 작품
4. 시계태엽 오렌지(1971) : '개인의 범죄를 국가 권력이 제어할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5. 파이트 클럽(1999) : '사회구조적 모순을 폭력과 일탈로 해결할 수 있는가?'를 환상적으로 풀어냄
●토드 필립스 감독 와 호아킨 피닉스의 인터뷰
Q: <조커>는 현대 사회에 대한 우화라고 생각된다. 코믹북의 캐릭터를 가져와서 현대 사회에 문제점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나?
토드 필립스: 영화 속 배경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로 설정했지만, 각본을 쓴 건 2017년이다. 영화는 만들어진 당대의 모습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슈들을 <조커>라는 영화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아동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나 사회 경제적 취약 계층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담았다.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다양한 문제점들을 논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Q: 조커의 웃음, 춤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아서 플렉을 연기할 때와 조커를 연기할 때의 몸동작이 다른데 어떤 기준을 잡고 연기했나?
호아킨 피닉스: 아서는 무척 산만한 편이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점을 반영하며 행동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반면에 조커는 우아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그렇게 대비되는 연기를 하려 했다.
Q: 영화 속에서 조커는 코미디언을 자처하지만 누구도 웃기지를 못한다. 토드 필립스 감독도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다가 이번에 섬뜩한 <조커>를 내놓았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로 봐도 될까?
토드 필립스: 코미디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코미디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또 스탠드업 코미디언들과도 여러 차례 함께 작업했다. 그런 코미디언들도 연기하는 과정에서 고통과 절박함을 느낀다. 사람들을 웃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조커>는 코미디라는 장르에 대한 탐험이라고 생각한다. 또 코미디와 비극 사이의 경계선을 살펴보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의 촬영이 재밌었다. 호아킨이 무대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웃기려 하지만 실패하잖나. 그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 하지만 광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 점을 영화 속에서 탐험하는 것이 재밌을 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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