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Were Never Really Here·2017
[시눕시스] 끔찍한 유년기와 전쟁 트라우마로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조’.
유력 인사들의 비밀스러운 뒷일을 해결해주며, 고통으로 얼룩진 하루하루를 버텨내던 어느 날,
상원 의원의 딸 ‘니나’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소녀를 찾아내지만 납치사건에 연루된 거물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다시 사라진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데…
죽어도 아쉬울 것 없는
살아있는 유령 같은 인생에
조용히 나를 깨우는 목소리 “Wake Up, Joe!”
대담하고 반 직관적인 서사를 선보이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확실히 낯설다. 현실과 회상(플래시백)장면이 번갈아 펼쳐지는 탓에 다소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주인공 조(호아킨 피닉스)의 심리 상태는 그처럼 엉망진창이다. 부모의 학대, 아프가니스탄과 FBI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매번 자살을 꿈꾸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감독은 그가 왜 자살하려고 하는지는 확실히 알려준다.
이후 줄거리는 간단하다. 조(호아킨 피닉스)는 상처받은 영혼이며, 히트맨(암살자)으로 삶을 연명한다. 그러다 뉴욕주 상원의원의 납치된 딸, 니나 보토를 구출하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과연 '그가 해결할 수 있을까?' 를 묻기 이전에 영화의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자!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 우드 (Jonny Greenwood)의 의도된 위압적인 스코어(영화음악)과
마치 폴 토마스 앤더슨를 연상시키는 화면구성, 박찬욱의 [올드보이]를 연상시키는 망치를 구입하는 장면,
그리고 [택시 드라이버]처럼 아웃사이더가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구도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다려간다.
바로 "자살충동은 어떻게 치유되는가?" 이다. 사회학의 아버지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잠깐 인용하겠다.
“자살은 종교 사회의 통합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자살은 가족사회의 통합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자살은 정치 사회의 통합의 정도에 반비례한다.” 라고 뒤르켐은 자살을 정의내렸다. 이를 영화에 대입해보자!
앞서 살펴봤듯이 조(호아킨 피닉스)에게 가족과 사회는 상처만 줬다. 공동체와의 결속이 약해진 그에게 어느날 니나와의 관계가 새로이 형성된다.
소위 '이기적 자살'은 공동체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거나 공동체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도피한 사람들이 선택한 자살이지 않은가? 여기에 바탕을 둔《너는 여기에 없었다》속 자살을 치유해가는 과정은 이토록 새로운 유대관계를 가져갈때, 흉터가 아문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출신 여성 감독 린 램지는 기존의 영화관습을 답습하지 않고서
인간의 손상된 내면만 따로 떼와서 관객에게 다치고, 아무는 광경을 전시했다.
★★★★ (4.0/5.0)
Good : 매우 신선한 편집예술
Caution : 낯설고 불친절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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