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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Dec 03. 2019

나이브스 아웃 <'메타 후더닛'이 주는 재미!>

Knives Out (2019) 영화 후기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2019)》영화리뷰_‘메타 후더넛’이 주는 재미!

오프닝에서 <바스커빌 가의 개>를 패러디 할 때부터 ‘애가서 크리스티’이 아닌 '아서 코난 도일’ 스타일인가?‘ 라고 잠시 착각했다.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작가 할런 톰레이(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그의 빅토리아풍 대저택에 모여든다. 이렇게 비밀을 감추고 있는 용의자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무대세팅이 끝났다. 곧이어 85살의 미스터리 작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여기까지는 딱 크리스티 스타일이다. 중간에 WiFi가 등장해서 ’ 21세기‘라고 확인사살 해주지만 말이다. 

     

그런데 살인사건의 범인을 슬쩍 흘린다. 거기 감독양반! 이게 무슨 짓이요? 

이 시점부터 영화는 미스터리의 일정부분을 포기한다. 대신에 정보를 일부러 공개함으로써 얻는 긴장감(서스펜스)으로 몰아간다. 추리소설로 설명하자면 ‘서술트릭’기법을 썼다. 영화장르로 바꿔 말하면 ‘누가 범인이냐?를 묻는 ‘후더닛(whodunit)’을 일부러 해체시킨다. “‘누가’ 아니라 ‘왜’라고 물어야지‘라는 <올드보이>의 대사처럼 후더닛에서 와이더닛(whydunit)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나이브스 아웃>도 마찬가지로 후더닛과 와이더닛을 골고루 섞어 쓰면서 의도적으로 편향된 단서들을 흘려주며 관객들을 오인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범인의 동기와 심리를 유추하면서 관객들을 영화에 적극 참여하도록 이끈다.  <반 다인의 20칙>처럼 추리 영화를 존슨와 관객이 벌이는 지적게임으로 여기고 마치 스포츠처럼 공정한 룰 아래 대결을 벌인다.  과거회상 등을 통해 관객과 탐정 블랑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탐정과 관객이 아는 바가 달라지는 데서 오는 미스터리를 부활시킨다. 이렇게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섞어주면서 관객들만의 추리 외에 블랑 입장에서도 추리해보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볼 때쯤 되면 ‘(앞에 등장했던) 대사가 복선이었네?’라고 깜짝 놀라게 된다. 나중에 크리스티 특유의 비밀이 풀리는 대목에서 다 설명해주므로 대사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보지 않아도 된다.      


이쯤해서 우리는 <나이브스 아웃>을 또 한 번 낚이게 되는데. 이 영화는 추리물이 아니라 큰 틀에서 일종의 ‘패러디 코미디’란 사실이다. 정확하게는 추리소설을 패러디한 가족 시트콤에 가깝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1974)>의 음악을 맡은 리차드 로드니 베넷을 연상케 하는 고전적인 스코어부터가 매우 노골적이다.      


그 다음으로 패러디의 흔적은 등장인물에서부터 눈치 챌 수 있다. 사립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의 이름부터가 에르퀼 푸아로처럼 프랑스계로 설정됐고, 개콘에서 사투리 개그를 하듯 우스꽝스러운 미국 남부 억양을 쓴다. 영국산 스파이 ‘007’배우를 가져다가 똑같은 영국탐정 셜록 홈즈로 패러디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런 설정을 붙인 것 같다. 하지만 셜록 홈즈의 영향이 아예 없진 않다.      


바로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다. 홈즈의 조수, 존 왓슨의 군의관 설정대로 ‘간병인’ 포지션을 맡고 있다. 그리고 성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히스패닉 계열이다. 어떤 통치자에게 ‘미국이 발전하는 원동력이야말로 뛰어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임을 일깨워주기 위한 캐릭터 같다. 이처럼 현재의 미국을 정확히 패러디한 인물 배치나 상황이 SNL 혹은 가족시트콤처럼 유쾌하게 관람케 한다.      


그렇다면 왜 추리극으로 시작해서 트럼프 시대의 화두를 꺼내들며 종국엔 가족 시트콤이 되었을까? 추리 영화의 구조적 단점을 가리기 위함이다. 알리바이를 각각의 용의자마다 매번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지루한 대화 장면의 반복을 관객들을 위트 있는 대사와 코믹한 상황으로 무마하려는 목적이다. 게다가 마르타가 텅 빈 세탁소를 들어갈 장면 같이 공포감을 자극하는 서스펜스를 병행한다.     



그러나 멀티 캐스팅의 한계를 노출한다. 관계에 대한 묘사가 부족해지는 단점 말이다. 일부 캐릭터들 (스탠필드, 랭포드, 마르텔 등)은 특정 목적에만 소모된다. 또. 집 밖에 나갔을 때보다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더 흥미진진했다. 그 이유는 라이언 존슨 특유의 산문체적 연출 탓이다. 극중 야외장면과 밀실 미스터리의 간극은 그의 장기가 어디에 있는지 단번에 드러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라이언 존슨은 <브릭>, <블룸 형제 사기단>, <루퍼>처럼 ‘기승전결’을 다 갖춘 작품을 연출할 때는 그만의 장르 해체술이 통하지만, <라스트 제다이>처럼 시리즈물에서는 약한 것 같다. 그가 <라스트 제다이>에서 실패한 이유는 어떤 걸 해체하고 비꼬았는지에 대한 ‘비전(해답)’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전통을 파괴했는지 ‘결말’부분에서 밝혀줘야 했는데 시리즈물에서는 후속작을 위해 보통 남겨두니까 관객들이 납득하려해도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이 매력적인 탐정시리즈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스타워즈 차기작>에서 손을 뗐으면 좋겠다는 소신을 이 자리를 빌어서 밝힌다. 



★★★☆ (3.7/5.0)      


Good : 이 맛에 영화를 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장르적 재미! 

Caution : 대사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 도 있다. 

 


●등장인물을 할아버지 '할런 톰레이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시점에서 정리해보자!

그의 간병인 마르타 카브레라(아나 데 아르마스), 맏딸 린다(제이미 리 커티스)와 사위 리처드 드라이스데일(돈 존슨) 그리고 외손자 랜섬 드라이스데일 (크리스 에반스), 죽은 맏아들의 며느리 조니 톰레이(토니 콜렛)와 손녀 메그(캐서린 랭퍼드), 출판사를 물려받은 막내아들 월트(마이클 쉐넌)과 막내며느리 도나(리키 린드홈), 손자 제이콥(제이든 마텔),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 엘리엇 형사(라케이스 스탠필드)등이 주요 인물이다. 이중에 크리스 에반스가 제일 놀라웠다. 지미 키멜 쇼에서 반려견에 대한 사랑을 피력했는데, 여기서 그가 개를 무서워하는 연기를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전체적으론 라이언 존슨의 데뷔작 <브릭 (Brick. 2005)>이 절로 떠오를 만큼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리고 이게 추리소설 자체의 한계인지 헷갈리지만, <나이브스 아웃>의 시나리오 자체가 그리 대단하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존슨은 <현기증(1958)>에서 얻은 힌트를 매우 영리하게 써먹었다. 그만큼 연출과 편집이 굉장했다. 올해 2번째로 재밌게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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