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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an 16.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100% 러브스토리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후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2019)》 후기·리뷰_ 100% 러브스토리

     


[줄거리] 정략결혼할 남자에게 보낼 결혼초상화를 그리다

1770년 프랑스 어느 마을,  화가인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는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고 한 저택을 방문한다. 백작 부인(발레리아 골리노)은 결혼을 거부하는 둘째 딸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그림을 몰래 그려달라고 의뢰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화가를 꿈꾸는 마리안느는 그 까다로운 부탁을 수락한다. 엘로이즈 모르게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마리안느는 비밀스럽게 그녀를 관찰하며,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의 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어느 날 마리안느는 하녀 소피(루아나 바이라미)를 통해 정략결혼이 싫어 자살한 엘로이즈의 언니이야기를 듣는다. 요즘 소개팅에 앞서 보내는 사진처럼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녀의 약혼자에게 보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이에 마리안느는 초상화를 지운다. 백작 부인은 그녀를 해고하려고 했지만, 엘로이즈가 갑자기 초상화 작업에 협조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백작 부인은 둘이서 5일 동안 초상화를 그릴 수 있도록 여유를 준다.

  






◎ 잉마르 베리만처럼 추상적인 공간을 설정하다.

▲섬은 여성 해방의 공간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여성끼리의 연대와 쿼어 로맨스’를 펼치기 위해 편집을 통해 현실과 가상을 나눈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오마주한 오프닝을 살펴보자! 마리안느가 바다에 빠진 캔버스를 줍기 위해 바다에 입수하는 장면 바로 뒤에 담요를 뒤집어 쓴 마리안느가 떨고 있는 장면을 이어 붙였다. 바다에서 캔버스를 건지고 배로 돌아오는 중간 과정이 의도적으로 생략되어있다.  분절과 생략을 통해서 ‘가상의 18세기 프랑스’라는 무대를 세팅한다. 샹탈 애커만의 <잔느 달망(1975)>에서 영감을 얻은 ' 고립감’과 ‘억압‘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회상할 때 코르셋을 꽉 맨 드레스 차림이 아니라 그냥 속옷 차림인 건 다소 뻔한 상징이다.


엘로이즈 입장에서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모델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장시간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는 초상화가 의미하는 결혼제도에 속박되는 여성의 삶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마리안느가 지켜보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장면과 결부지어보면 꽤 흥미롭다. 


반대로 화가 마리안느 역시 사회구조적 억압에 노출되어 있다. 여성화가는 남성의 알몸을 그릴 수 없다. 스승이자 애인인 어귀스트 로뎅의 그늘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까미유 클로델 같은 여성 예술가의 처지를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진짜 중요한 요소는 제한적인 촬영과 절제된 스코어(영화음악)이다. 인위적인 음악와 인공적인 조명을 최소화한 야간 장면은 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을 암흑으로 처리해버린다. 그 고립감이 인물들이 느끼는 ‘구조적 억압’이다. 


▲가부장제를 지키는 것은 여성이라는 보부아르의 페미니즘 사싱을 충실히 따랐다.
▲핵심은 여성끼리의 연대이다.

  
그 억압을 상징하는 백작부인의 압제를 벗어난 공간에서부터 귀족인 엘로이즈, 평민인 마리안느, 하녀 소피는 신분을 초월하며 연대하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 주제는 ‘왜 오르페우스는 뒤돌아 봤을까?’에 담겨있다.

▲에우리디케와 동일선상에 놓은 엘로이즈


소피, 마리안느, 엘로이즈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리기 위해 명계로 찾아간다.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에 감명 받아 에우리디케를 풀어주며 단서조항을 덧붙인다. 바로 지상에 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지상의 빛이 보일 무렵, 오르페우스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돌아본다. 아직 덜 빠져나왔던 에우리디케는 그대로 명계에 끌려가버렸다. 


우리는 오르페우스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는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서 돌아봤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문제의 단서조항을 붙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감독은 되묻는다.   


그 대답을 하기 전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로맨스 영화답게 ‘금지된 사랑’이 주된 테마다. 여기서 잠깐 영화가 왜 18세기를 배경으로 그렸겠는가? 당대의 인습들, 이를테면 신분제, 성차별, 정략결혼, 여성의 사회진출 제한, 코르셋 등등 구조적 억압이 횡행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하데스가 걸었던 조건은 당시 엄격한 사회체계를 의미하며, 세 여인의 토론을 통해 이를 풍자한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고전주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로마형식의 복원, 고전적 소재와 내용, 명백하고도 엄격한 구성, 뚜렷한 윤곽, 차가운 느낌의 색채가 특징인 신고전주의 미술사조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해석해야만 한다.





◎단 5일간의 사랑이 뜻하는 것은?

▲마리안느는 감독의 오너캐다.

이쯤해서 왜 감독은 화가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마리안느가 엘로이즈 모르게 자신의 기억과 감정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시아마 감독이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면서 이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과 과 동일하다. 쉽게말해, 카메라는 극중 화자 마리안느가 훔쳐보듯이 엘로이즈를 대상화한다. 


화가의 시선과 피사체로써의 모델의 마주침에서 농밀한 로맨스를 피어오른다. 한편, 피사체인냥 시종일관 침묵하던 엘로이즈가 가끔 감정을 터트릴때 더 깊은 감흥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생략과 관찰을 통해 셀린 시아마 감독은 전 여자친구 '아델 에넬'을 향한 그리움을 영상에 옮긴다.



▲그림 속에 갖힌 것은? 그녀의 결혼생활이다.


정해진 비극은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굴러간다. 밝은 전시회 장면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군중들이 운집한다. 지금까지의 공간과 왜 틀릴까? 이제 현실로 돌아왔음을 영화적인 기법으로 관객들에게 알린다.



★★★★ (4.0/5.0)   

   

Good : 숨 막히는 시선을 표현한 섬세한 미장센!

Caution : 관찰과 생략화법에 익숙하지 않다면?   



●작년 칸 영화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했다. 


●모닥불 씬 합창곡 음원 / 극 중반부 마리안이 친 피아노 곡과 엔딩씬 곡은 안토니오 비발디 - 사계의 여름 3악장 프레스토이다.   


■영화 내 등장하는 모든 그림과 스케치는 화가 엘렌 델메르(Hélène Delmaire)가 그렸다. 그녀의 손 역시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다.   

  

시아마 감독과 아델 둘 다 레즈비언으로, 두 사람은 과거 연인 사이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이번이  '워터 릴리스'(Naissance des Pieuvres)에 이은 두번째 협업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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