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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an 27. 2020

페인 앤 글로리 [영광의 밑거름은 바로 고통!]

페인 앤 글로리 리뷰

<페인 앤 글로리>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노년의 영화감독이다. 슬럼프에 빠진 그가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고, 창작의 영감을 얻는 줄거리에서 난 어떤 영화가 떠올렸다.     


바로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 (1963)>이다. 두 작품 모두 일과 사생활 모두에서 혼란에 빠진 한 영화감독이 겪는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알모도바르답게 어머니(페넬로페 크루즈)가 중요하다.      


그간 섹시심벌로써 강인한 남성미를 뿜어내던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질병에 굴복하고, 우울증과 회의감에 찌들어가는 연기를 펼친 것은 이채롭다. 배우가 가진 이미지의 전복은 창작력이 고갈된 예술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로써 훌륭하게 기능한다. 게다가 지리학과 해부학을 동원한 아이디어도 기발했다.      


《페인 앤 글로리  (Dolor Y Gloria, 2019)》 후기·리뷰_영광의 밑거름은 바로 고통!

이제 연출을 살펴보자, 알모도바르의 재능 중 하나가 전형적인 서사를 전개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완전히 논란이 될 만한 새로운 이슈를 교묘하게 접합하여 발칙하게 문제점을 꼬집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붉은 정지신호와 녹색의 통행신호, 푸른 풀장의 색감이 주는 시각적 불편함은 굉장히 의도적이다.      


육체의 고통과 시각적 불편함, 정신적 노쇠함(창작력의 고갈)을 교모히 드러내면서도 초기 작품보다는 훨씬 우아하게 구조화되어있고, 그 어조 역시 볼륨을 최대한 낮춰서인지 보다 사색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수영장 장면은 명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는 알모도바르 특유의 이중성을 잘 드러냈다. 이런 초조함을 통해서 실바도르의 창작력 쇠퇴를 은유하는 동시에 예수의 이미지를 은근슬쩍 덧씌운다.    


하지만 <페인 앤 글로리>는 굉장히 유머러스한 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주변 인물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자신의 전작들에 대한 셀프 디스는 거장 감독의 여유로 받아질 만큼 유쾌했다. 그럼 <페인 앤 글로리>은 희와 비를 교차하는 무엇일까?


인간은 수련생, 고통이 스승이니,

고통 받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알프레드 뮈세의 시 「10월의 밤」에서의 구절에서 우리는 제목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다.  ‘생노병사’ 즉 고통을 극복하고자 애썼던 석가모니가 마침내 해탈에 이르듯이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도 고통이라는 스승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의 삶에서 영광을 가져다 준 것은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아픔과 고통이었다.  


결국 영화제목 <고통과 영광>은 ‘창작력의 흥망성쇠’를 의미한다. 봉준호가 ‘모든 영화감독은 결국 한 가지 주제를 다룬다.’라고 인터뷰했었다. 이 말은 결국, 존 듀이의 <경험으로써의 예술>이 순간 떠올랐다. 예술 작품에서 보여지는 개별적 대상(소재)의 함의는 예술가로부터 그의 고유한 관심을 담고 있다. 즉, 표현하기 위해 일종의 ‘추상’화를 거치게 된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결정하고, 그 수위와 범위를 선택하는 과정이 바로 예술에서의 추상이다.


알모도바르 역시 창작의 근원은 자신의 경험으로 비롯된다는 이야기를 이 영화를 통해 고백한다. <페인 앤 글로리>에서 만나는 3번의 만남은 결국 예술가는 세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서 영감을 얻고 있음을 고해한다. 예술은 예술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함께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타자의 경험의 충돌하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덧붙여 같은 스페인 예술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예로 들자면, 나치의 게르니카 폭격의 참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나치에게 협력하고 자국민을 학살한 프랑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에 독재에 대한 비애감이 담겨있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한 재현의 문제에서 벗어나 예술가의 사적인 영감이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해줘야 한다고 <페인 앤 글로리>은 주장하고 있다,



★★★★ (4.1/5.0)      


Good : 창작력 고갈에 대한 예술가의 고민을 솔직담백하게 담다.

Caution : 알모도바르 스타일은 언제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이 작품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뉴욕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 등에서도 영광을 안았다.      


●살바도르 말로를 연기한 <귀향>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등 페드로 알모도바르와 여러 번 협업한 페넬로페 크루즈는 어린 살바도르 말로의 어머니를 연기해 거장의 특별한 뮤즈임을 증명한다.  

   

■석가모니의 사상을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어쨌든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고통’을 자신의 사상으로 삼은 철학자다.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되는 그의 진리는 팔정도(八正道)라는 방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그는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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