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자, 그는 평단의 지지와 대중적 흥행이 가장 행복하게 만난 케이스이다. 봉준호는 기존의 장르영화의 규칙에 충실하다가 마자막에 어떻게 해체시키느냐가에서 차별화된다. 그래서 봉준호 영화의 악당은 선과 악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회색지대에 놓이게된다. 이를 통해 '시스템이 마땅히 구성원들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구성원들이 과연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대한 봉준호의 대안은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으로, 시스템이 보호하지 못하는 개인들의 취약성에 희망을 발견하려는 측면이 존재한다. 즉, 약자가 더 약한 이를 도와주는 게 인상적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가끔 메시지가 과할 때도 있긴 있다.
#7 : 플란다스의 개 (Barking Dogs Never Bite, 2000)
홍콩 국제영화제 국제 영화비평가상
봉준호를 공부하고 싶은 영화학과 학생이라면 이 작품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플란다스의 개>는 봉준호 연출 스타일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다. 겉으로는 강아지 도난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플란다스의 개>는 1998년 교수 임용 비리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그의 영화가 다소 허무맹랑해보이지만 그 기반은 현실의 사건이다. 그외에 삑사리의 미학,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아이러니한 블랙 코미디, 현실적인 부조리를 꼬집는 디테일이 잘 살아있다.
#6 : 옥자 (Okja, 2017)
뉴욕타임스 올해 최고의 영화 TOP10
채식주의자 봉준호가 <옥자>를 '사랑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E.T.>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았다. <E.T.>에서 외계인 대신에 돼지를 놓고 이해해도 좋고, 전반부는 <토토로>, 후반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로 읽어도 좋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할리우드 장르적이며, 동화적이라 이질적이다. 그러나 ‘동물도 우리 인간처럼 힘들게 살고 있지 않나’고 묻는 주제에서 봉준호가 항상 다루던 동물, 가족, 시스템과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극이라는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다.
#5 :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로마 국제영화제 감독상·보스턴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
에드 해리스의 20분간 독백은 허술한 설정, 부실한 설명, 계몽적인 태도를 비판할 수 있지만, 자본축적 과정에서의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해석된다. 꼬리 칸의 항거는 포템킨 함선의 수병 반란, 도끼 부대는 코사크 기병대, 엔진은 산업혁명을, 윌포드는 대량생산의 상징인 헨리 포드를 각각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봉준호는 인간은 시스템(사회) 안에서 모여 살아가는 객체이지만, 불합리한 제도와 법률을 만드는 주체(기득권자)이기도 하다라고 아이러니를 빚어낸다.
#4 : 괴물 (The Host, 2006)
카이에 뒤 시네마 2000년대 최고의 영화 4위
재난영화 <감기(2013)>, <백두산(2019)>를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괴물>은 <맥팔랜드 사건 (2000)>라는 실화를 바탕에 뒀고, 나머지는 전시작전권을 과대 해석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반미보다 시스템의 부재에 더 무게를 뒀다. 즉, <세월호> 사태에서 정부와 사회가 우리를 과연 지켜줬는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3 :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2003)
시네마스코프 선정 2000년대 최고의 영화 9위
대한민국 스릴러는 <살인의 추억>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한국적 변주’에 이렇게 성공했다. 2003년 같은 해에 만들어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더불어 한국 영화를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킨 작품이다. 이젠 한국 영화제작자들이 본받고 싶은 교본이 되었다.
봉준호는 가족이 위협받고, 그의 영화는 그 가해자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놀랍게도 이상한 지점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도록 영화 스스로가 긴장을 해체시킨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치밀한 수사보다는 형사의 심리에 주안점을 두면서 제5 공화국의 암울한 사회상을 노출된다. 이후 쏟아진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시대정신’을 범죄 스릴러에 담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사건을 감정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2 : 기생충 (Parasite, 2019)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아카데미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단연코 전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미칠 한국영화다. '빈부격차'와 '사다리 걷어차기'는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한계이다. 어떠한 이론과 정책도 이걸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떤 한국 감독이 '불평등'을 아주 쉽고 가볍게 이를 그렸다. 부자도 악인이 아니고, 빈자도 선하지 않다. 그렇게 즐겁게 관람하고 나면, 관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위대한 점이다.
#1 : 마더 (Mother, 2009)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10위
봉준호는 <마더>부터 자신의 예술적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국민 어머니 김혜자를 통해 한국사회에 퍼진 모성 과잉의 그림자를 비춘다. 우리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행동이 다른 가정에는 눈물을 안기지 않는지 봉준호는 조심스럽게 묻고 있다. 독무 오프닝은 한 개인으로 국한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지막 군무에서 이 땅의 어머니 전부로 확대된다.
봉준호는 ‘사실 나는 나의 모든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마더> 엔딩 장면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강하다.’고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밝힌 바가 있다. 봉준호의 누나도 이 작품을 동생의 최고작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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