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inema
1980년대 후반 스파이크 리가 《똑바로 살아라》로 등장한 이후, 오스카 작품상에 빛나는 《노예 12년》, 《문라이트》 까지 흑인 영화인들이 만든 흑인 이야기는 민권 운동, 힙합의 부상, 셰익스피어가 질투할 만한 가슴 저민 로맨스, 크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성장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흑인 영화 《블랙팬서》 같이 블록버스터로 확장해왔다. 단순한 영화 그 이상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고 놀라게 하고 생각을 자극해왔다.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흑인 영화들을 모아보자!
흑인 영화에서 여전사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팸 그리어일 것이다. 〈코피〉와 〈폭스 브라운〉로 섹스 심볼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불러왔다. 블랙스플로팅 스토리가 그러하듯 평범한 복수극이지만, 강인하고 도발적인 흑인 여성 영웅을 내세워서 화제를 모았다.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으로 존경을 표할 정도로 문화사적으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아카데미 주제가상
베트남전 이후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이 성장한 흑인 관객층을 공략한 블랙스폴로테이션 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흑인 주인공은 백인 악당을 물리치고, 펑크와 소울 사운드트랙은 할리우드에 혁신을 가져왔다. 특히 아이작 헤이스의 넘버원 주제가 ‘Theme From Shaft’은 두 개의 그래미상과 오스카 주제가상을 거뒀다. 〈샤프트〉는 흑인 문화가 상업적·미학적 성취를 거둘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흑인 영화에 짙게 깔린 빈민가 정서를 우아하게 비켜나가고 밝고 건강한 작품이다. 이 성장 드라마는 하버드 진학과 펑크 밴드에 집착하는 흑인 모범생 말콤(Malcolm), 집(Jib), 디기(Diggy)가 마약 범죄에 휘말리며 흔들리는 신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은 하우스 파티에서 실수로 마약 한 봉지를 가져오게 된다. 그들은 범죄, 갱단, 폭력의 사슬을 뿌리치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인기 청소년 소설을 원작으로 인종차별과 경찰의 과잉 대응 문제가 단순히 성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전역의 흑인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16살의 스타 카터(아만들라 스텐버그)는 전통적인 흑인 동네에 살고 있지만 백인 학생이 대부분인 사립 명문고를 다닌다. 소꿉친구가 그녀의 눈 앞에서 경찰에게 부당하게 살해당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가정에서의 페르소나와 학교에서의 페르소나를 분리하려는 노력에도 불가하고 주인공은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의 훌륭한 점은 흑인과 백인, 경찰과 마약상의 입장을 공평하게 다뤘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불의에 항거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라는 주제가 인상 깊다.
아카데미 주제가상
전기영화는 위인의 본질을 포착하려고 시도하는데, 에바 두버네이의 〈셀마〉도 그런 성과를 거뒀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듬해인 1965년, 그는 흑인 투표권 획득을 위해 셀마-몽고메리 투표권 행진으로 안내한다. 그 역사적 묘사는 민권 투쟁에 관한 탐구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투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0여 년 이상 민권 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킹 목사의 불안과 피로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 고충을 십분 전달한다. 그 감동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미국 흑인들을 위한 더 나은 더 공정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선조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아카데미 음악·의상·미술상
영화적 이정표로서 〈블랙 팬서〉는 특정 경계를 허물고 흑인 영화를 블록버스터 시장에 출시한다. 흑인 감독이 연출하고 흑인 배우가 연기하는 흑인 영웅이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고 오스카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 자체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나 다름없다. 디즈니가 아카데미 작품상으로 후원한 데에는 할리우드 내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개봉당시 ‘흑인판 〈델마와 루이스〉 혹은 〈트레인스포팅〉의 LA버전'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견뎌왔으며, 네 명의 주인공 시점을 통해〈셋 잇 오프〉는 흑인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경험의 일부를 담은 타임캡슐 역할을 했다. 경제적인 궁핍, 실업, 양육, 정체성 등 흑인 여성들이 직면하는 냉엄한 현실의 문제를 여과 없이 다뤄 거의 30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 문화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도시 빈민가의 범죄환경에 둘러싸인 청년의 암울한 나날을 그린다. LA 남부의 도시 왓츠의 흑인 빈민가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케인 로슨(타이린 터너)의 삶 곳곳에는 뿌리 깊은 범죄의 덫이 도사리고 있다. 마약 딜러이자 마약 중독자인 부모, 거리에서 총격을 받아 죽은 사촌, 학업을 포기하고 갱단에 가입하는 친구들로 말미암아 주인공도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백인이 분리이나 차별만큼이나 촘촘하게 얽혀있는 흑인 사회 내부의 체념과 증오를 다뤘기 때문이다.
신랄한 사회논평과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영화로 퍼시벌 에버렛의 소설 《이레이저》를 각색했다. 인기가 없는 소설가 델로니어스는 ’몽크‘라는 필명으로 의도적으로 진부한 픽션을 집필한다. 흑인 문학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인종적 고정관념, 진부한 비유, 뻔뻔한 농담 등을 조롱하듯 영합한다. 안타깝게도 백인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천재의 작품으로 고평가받는다. 이 갑작스러운 성공은 호들갑스러운 언론의 천박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윤리적 난관에 빠지게 된다. 흑인의 고통에 초점을 맞춘 흑인 창작자들의 작품을 조명하는 그린라이팅(Greenlighting)으로 기득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위선적인 세태에 풍자하는 익살이기도 하다.
아카데미 작품·각색·여우조연상
솔로몬 노섭의 1853년 회고록은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유인이었던 노섭은 1841년 워싱턴DC에서 납치당해 노예로 팔려가고 다시 자유를 되찾기까지 고난의 12년을 버틴다. 노섭 같은 흑인들이 농장에서 겪었던 폭력과 학대를 가감 없이 바라봄으로써 19세기 노예제도에서 오늘날 인종 차별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발본색원한다. 스티브 매퀸 감독은 흑인 인권이라는 구호에 기대지 않고, 솔로몬이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견뎌내는 동안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만인 공통의 인권이라고 명시한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 아카데미 각색상
스파이크 리는 70년대 인종적 긴장을 다루면서 현대의 이슈와 매우 흡사하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영화는 쿠 클럭스 클랜의 영향력과 그 영향력을 조사하기 위해 야심찬 흑인 형사 론 스탤워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인종과 사회 규범에 대한 문화적 담론의 관련성을 다루면서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대한 잠복수사가 매우 흥미로웠다. 대담한 스토리텔링, 예리한 사회적 논평, 뛰어난 연기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매우 민감하고 트라우마로 가득 찬 이슈를 코믹하게 다뤘다는 점이다.
명망 있는 작가인 제임스 볼드윈은 민권 운동을 위해 평생을 바쳐왔고 백인에 의해 뒤틀려 각인된 흑인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불행히도 볼드윈은 마틴 루터 킹, 말콤 X, 메드가 에버스에 대한 삶과 피살 사건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라울 펙 감독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에 근거해 볼드윈의 유지를 이어받았다. 사무엘 L. 잭슨이 내레이션을 맡아 생동감 있게 볼드윈이 남긴 웅변을 대독한다.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형벌을 제외하고는 노예제도나 비자발적 노역은 미국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라는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예외 조항에 주목한다. 남부지역의 경제를 뒷받침하던 400만 노예들이 해방되자, 이 예외 조항을 이용하여 노예 대신 범죄자를 양산하고 재소자 임대(Convict Leasing) 방식으로 값싼 노동력을 조달하였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미국 교도소 사업(범산복합체)과 미국 사법 제도에서 인종 차별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해놓았다.
많은 흑인 영화가 충격요법과 유독한 고정관념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스포츠 코미디 영화는 보편적인 시네마와 맥을 같이 하기에 흑인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벗어난 작품이다. 소꿉친구인 모니카와 퀸시가 농구선수로의 꿈을 공요하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우는 과정을 따라간다. 야망은 그들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두 사람은 오직 사랑을 위해 모든 고통을 감내한다.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마일즈 모랄레스는 분명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결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다. 소박한 소시민인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흑인 후드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엄할 수 있다. 힙합과 R&B로 가득한 사운드트랙에서 검게 물들인 스파이더맨 세계관은 모든 클리셰를 비켜간다. 그리고 피터 램지는 흑인 애니메이터로 최초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에디 머피가 주연도 맡았지만, 각본 작업에도 직접 찹여했다. 사실 코미디는 흑인 영화인에게 허락된 몇 안 되는 장르 중 하나였다. 진정한 사랑을 찾는 자문다 왕국의 아킴 조퍼 왕자의 유쾌한 여정을 따라간다. 에디 머피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영리한 서사가 더해져 전세계 박스오피스 약 2억 8,800만 달러 이상을 달성했다. 흑인 문화가 국경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졌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그렇게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에서 〈구혼 작전〉은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논픽션 작가 마고 리 셰털 리가는 우주 항공역사에서 숨겨진 인물들을 발견한다. 미국 최초의 우주 궤도 비행 프로젝트에서 핵심 업무를 수행한 실존 인물 캐서린 존슨과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책임자 도로시 본,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이 그 주인공들이다. 흑인이자 여성에게 가해진 제한을 하나씩 풀어내며 존 글렌이 달 탐사를 하는 데 공헌했다. 그들의 업적은 우주 경쟁에 도움이 되었고, 흑인 여성 과학자의 성공신화는 만인이 사랑할 영웅담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쉰들러 리스트〉 이전에 오스카상을 탈 기회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 남부 조지아 주의 가난한 흑인 마을을 배경으로 억압받던 여성 샐리 해리스의 삶을 장중한 필체로 그려나간다. 당대 최고의 흥행감독이 보통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흑인 인권과 여성 문제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참고로 유명 프로듀서 퀸시 존스이 제작에 참여하고, 음악을 맡았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폭력시위의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데 이 분을 빼놓을 수 없다. 말콤 X는 흑인 민족주의(블랙 파워)에 기반한 흑백 분리론을 주장한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흑인 민족주의 사상가이다. 그는 열등감과 패배주의에 젖어있던 흑인들에게 흑인 민족주의 사상을 통해 흑인이 열등한 인종이 아니라는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그의 급진론은 여러 흑인 무장투쟁 단체에 영향을 많이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흑표당’이 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음향효과상
미국 역사에서 흑인의 역할은 노예제도, 대중음악, 스포츠에 한정될 수 없다. 〈영광의 깃발〉은 조국에 대한 충성은 피부색을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남북전쟁 당시 실존했던 흑인 부대 ‘54연대’를 통해 흑인이 링컨의 노예해방을 위해 피를 흘렸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노예해방을 명분 삼은 북군 내부에서조차 흑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은연중 벌어진다고 고발한다.
로버트 타운센드와 스파이크 리 등 아프리카계 흑인 감독들이 흑인의 시선과 목소리를 대변한 영화를 들고 주류 영화계에 등장했지만 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건 존 싱글턴 감독이래 봐도 무방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비평적 호평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영화 평론가 아만다 화이트는 "80년대 10대 영화들 속에서 백인 10대들이 삶을 흥밋거리(fun)로 보았다면, 〈보이즈 앤 후드〉에서 흑인 10대들은 그것을 생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라고 평했다.
흑인으로써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가가 수많은 흑인 영화에 다뤄졌지만, 존 싱글턴 은 접근 방식이 달랐다. 그는 흑인 커뮤니티의 '결핍'에 대해 이야기한다. 절망적인 현실을 분노하지 말고 "(흑인 거주지 내의) 평화를 늘리라"(Increase The Peace)는 권하고 "자네는(우리 흑인들은) 더 배워야 해"라고 자성을 촉구한다. 〈보이즈 앤 후드〉 이후 유사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며 갱스터 장르의 일종인 이른바 ‘후드 필름’ 장르의 전성기를 연다. 영화를 통해 미국 내 흑인들이 맞닥뜨린 인종차별, 빈곤 등 현실 문제를 대중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렸다.
흑인 감독이 만든 흑인이 겪는 인종차별의 두터운 벽에 맨몸으로 돌진하는 최초의 영화다. 백인 중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축인 이탈리아계 미국인과 흑인 간의 인종적 긴장을 그린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단순한 선악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는 해묵은 논쟁에 말려들어가지 않고 현실을 잘 드러냈다. 그리고 흑인 빈민가에서 돈을 벌고 있지만 흑인 사회에 전혀 섞여 들어가지 않으려는 한국계 미국인을 여과 없이 묘사했다.
아카데미 각본·남우조연상
서부극은 인종주의에서 갈등을 이끌어내는 장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섣불리 〈노예 12년〉처럼 미국 노예제도의 민낯을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에 친일 민족반역자처럼 백인 노예주 캘빈 캔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빌붙어서 흑인 동족을 팔아먹는 '스티븐 (새뮤얼 L. 잭슨)'을 '장고(제이미 폭스)'를 해방시켜 주는 '닥터 킹(크리스토프 왈츠)'과 대조시킨다. 피부색 하나로 1차원적으로 문제를 접근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카데미 각본상
일찍이 좀비 영화의 시민케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부터 흑백 갈등을 다뤘듯이 미국 호러 영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성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조던 필이 직접 겪었던 백인과 일본인들이 흑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공포와 스릴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작품·남우조연·각색상
기본적으로 로맨스 성장영화지만, 빈민가 흑인 가정이 처한 현실을 이토록 실감 나게 그린 영화도 드물 것 같다. 편부모 가정에서 엄마아빠는 마약에 빠져있어 자녀에게 신경을 쓸 수 없고, 열악한 공립학교를 다녀야 하고, 어릴 적부터 범죄조직에 노출된 가정환경을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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