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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Apr 28. 2020

불교 영화 BEST 10

의외로 불교에 영향을 받은 영화들 BEST 10

뜻밖에 불교에 영향을 받은 영화들을 한번 골라봤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서 불교영화 TOP 10을 시작하겠습니다.     

   


      

#10 : 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2014) 더그 라이만

무한 반복되는 시간 안에서 점차 강해져 가는 슈퍼 솔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사쿠라자카 히로시가 쓴 일본 SF소설 <올 유 니드 이즈 킬>을 원작으로 한다. 전투에서 죽으면 다시 전투를 치르기 전날로 되돌아간다는 타임루프 설정을 통해 인간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 역시 원작의 설정과 이야기의 큰 뼈대를 고스란히 옮겨왔다. 스테이지를 넘기지 못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재도전할 수 있는 게임처럼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그때마다 주인공의 전투 능력이 향상되면서 이야기가 지루할 틈이 없다.   

   

타임 루프물은 기본적으로 불교의 핵심 사상인 윤회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불교에서는 생사윤회의 모습을 ‘연기(緣起)’라 일컫는다. 전장 한복판에서 죽음을 반복하며 경험치를 쌓는 빌 케이지(톰 크루즈)는 전장의 여러 요소를 파악해나가며 한 걸음씩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이런 측면은 연기와 정확히 합일을 이룬다. 연기란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되므로, 독립, 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조건, 원인과 결과는 상호 의존적으로 상관하는 관계에 있다는 설이다. 즉, 연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生)하므로 저것이 생(生)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를 뜻하며, 이것과 저것이라는 상호관계를 통해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를 거부하는 시각이다.     


왜 그러하냐? 죽지 않는, 아니 죽어도 살아나는 주인공이 펼치는 액션 쾌감이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눈길이 가는 건 게임 진행과 유사한 영화의 서사와 전장의 설계다. 궁극적으로 이 영화는 타임루프로 인해 인물과 인물의 시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 연출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9 : 파이트 클럽 (Fight Club, 1999) 데이빗 핀처

놀랍게도 90년대에 가장 폭력적인 영화 중 하나가 불교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의 홍보문구인 ‘모든 걸 잃은 다음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It's Only After We've Lost Everything That We're Free To Do Anything) 자체가 '진정한 채움은 비움에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전제로 한 포드주의에 기반 한 현대 물질문명의 허상을 통렬하게 조롱하며 풍자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를 ‘소유욕’에 있다고 단정한다. 부처님은 인간들이 겪는 괴로움의 원인은 무지(無知)와 집착(執着)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무지와 집착을 불교 용어로는 무명(無明)과 갈애(渴愛)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무지와 집착은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라는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픽시즈의 'Where Is My Mind?'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주인공은 고층 빌딩을 폭발이 일어나야만 그를 물질적 소유로부터 해방된다.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불교적 영향은 명백하다. 그것은 깨달음을 찾으려는 한 남자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탈출 심리를 폭력과 파괴를 통해 극복하려는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한 남자의 투쟁이다.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의 대사에 집중해보라! 그의 수사적인 질문은 답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제공하도록 되어있는 역설적인 화두인 ‘선문답’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그 방식이 불자라면 지켜야 할 5계 중 첫째가 ‘불살생(不殺生)’을 위배하고 있기에 순위를 낮췄다.     



#8 : 위대한 레보스키 (The Big Lebowski, 1998) 코엔 형제

주인공 레보스키(제프 브리지스)는 스스로를 듀드(The Dude, 녀석, 형씨, 인마)라고 칭하고 다닌다. 그는 한량처럼 보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선승(禪僧)과 유사한 행보를 보인다. 그는 승복처럼 하루 종일 헐렁헐렁한 목욕 가운을 입고, 법명처럼 그는 자신이 선택한 이름에는 물질주의를 배격하고 소박한 삶을 선택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게으름뱅이로 보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외곬으로 영적인 집중의 예로 본다. 그는 볼링 챔피언이 되고자 하는 목표에 충실한 삶을 보낸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의 목표로 향하게 하기 위해 산만함과 혼란을 피한다. 이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과 방향성이 일치한다.     

듀드는 동명이인인 억만장자 "빅 레보스키"(데이비드 허들스톤)의 대저택으로 찾아가 자신의 양탄자를 더럽힌 값을 변상해 달라고 한다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듀드의 허풍대로 진행된다. 한마디로 <위대한 레보스키>는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함이지만, 그 주제는 욕망이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붓다의 ‘사제(四諦)’에 기초했다.  

    

이는 임제종의 <간화선(看話禪)>처럼 읽힌다. 이것을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논리적이고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자신’에게 집착하는 상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공안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들면 들수록 답에서 점점 멀어진다. 선종은 ‘무(無)’의 불교라 불리는데, 철저하게 무가 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몸으로 집적 가르쳐준다. 생각한 시점에서 진 것이다. 언어로는 가르침을  전할 수 없기에(불립문자)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수행자에게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온다.      


흥미롭게도 제프 브리지스는 불교 신자이며, 2012년 젠 마스터(선승) 버니 글래스먼과 함께 <The Dude And The Zen Master>라는 불교서적을 공동 집필한 바가 있다. 그리고 감독인 에단 코엔은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는데, 이 영화 내용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의 영향이 짙게 배어있다. 그 책은 부처님처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기 때문이다.  

       

 


#7 : 천년을 흐르는 사랑 (The Fountain, 2006) 대런 애로노프스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불굴의 의지에 관한 것이다. 16세기의 스페인, 21세기의 미국, 그리고 26세기의 어느 행성, 이렇게 세 층위의 시공간을 오가는 <천년을 흐르는 사랑>은 비주얼에 대한 애로노프스키의 야심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영화는 천년에 걸친 사랑보다는 죽음과 영생에 대한 애로노프스키식 선문답에 가깝다. 교차편집으로 세 가지의 상호 연계된 이야기는 윤회사상을 시각화한 것 같다. 영화의 줄거리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모방한 것으로, 각자가 필연적으로 서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적 간극이 한꺼번에 초월되는 극단적인 이미지의 몽타주, 즉 죽음과 영생, 유한과 무한, 현실과 상상이 뒤섞여버리는 이미지의 성찬은 죽음 이후의 삶만큼이나 너무도 모호하다. 아마도 애로노프스키는 인간의 유한적 삶의 증거인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창조의 샘물이라고, 그리고 그러한 창조가 유한을 넘어선 불멸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6 :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 2003) 소피아 코플라

일상이 무료하고 외로운 밥 해리스(빌 머레이)와 샬롯(스칼렛 요한슨)은 도쿄에 놀러 온 미국인이다.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밥과 샬롯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중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두 사람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서로의 모습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이끌리게 된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그들 둘 다 고립되어 있고, 내면에서 지혜를 찾는 것에 고착되어 있다.      


영화배우인 밥은 위스키 광고 출연료로 2백만 불을 제안받았지만, 그 돈이 그에게 어떤 행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샬롯이 그에게 나이가 들면 삶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느냐고 물으니 그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알수록 주변 상황에 덜 흔들리게 되지."라고 답한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혜와 자기 성찰을 통해서라는 불교적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불교용어로는 ‘견성성불(見性成佛)’ 혹은 ‘돈오점수’라 불리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봄으로써 성불할 수 있다는 수행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귀속말로 한 말 “난 이제 떠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이에 있는 게 지워지지는 않을 겁니다.”은 불교의 인연설에 가깝다.    

 

재밌는 건 기자회견장에서 불교에 대해 떠드는 미국 여배우를 슬쩍 비꼴 줄 아는 이 영화는, 일본인을 희화화하기도 하지만 분명 상투적인 오리엔탈리즘은 슬쩍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5 :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 샘 멘데스     

<아메리칸 뷰티>는 그 테마에서 <파이트 클럽>을 연상케 한다. 둘 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생(生)의 가치를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의 뜻은 ‘①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②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③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이 세 가지는 영화에 다 나온다. 영화는 주인공이 이 세 가지를 얻으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레스터 번햄(케빈 스페이시)은 좌절감으로 가득 찬 잡지사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무기력 속에서 살아간다.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는 아내 캐럴린(아넷 베닝 분)은 무능력한 남편을 질책하고 물질 만능의 길을 추구한다. 딸 제인(도라 버치)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자기혐오에 빠진 10대 소녀다   

  

영화 초반에 레스터는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잃었기 때문에 “난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른다. 내 아내와 딸은 내가 엄청난 패배자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삶은 목적을 잃어버려 공허하고 그의 물질적인 위안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레스터에 대한 영적인 논평은 리키 피츠(웨스 벤틀리)가 제공한다. 권위적인 아버지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리키는 캠코더로 촬영하는 취미로 불만을 잠재우고 있다. 반면에 레스터는 리키를 보면서 이미 사라진 자신의 소년 시절의 꿈을 회복하려고 한다. 캐롤린은 직업적인 성공하기 위해 목매달고 있고, 제인은 자신감을 얻기 위해 가슴 성형 수술을 원하고, 레스터는 고등학생 안젤라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이처럼 다른 인물들은 이기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반면 오직 리키만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의 주변에 일어나는 사태를 지켜본다.


종국에는 레스터는 직장을 내던지고 매혹적인 안젤라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키우며 매력적인 남성으로 눈부시게 변신한다. 이 같은 레스터의 정신적 해방은 일본 조동종의 "무소득(無所得)"이라 부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 무소득(無所得)이란 산스크리트어 시마티가(simatiga)를 번역한 말인데,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무소득(無所得)을 무소유(無所有)라고도 한다. 법정 스님을 떠올리시면 된다.

             



#4 :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워쇼스키 자매

<매트릭스> 안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인식론·존재론·인지과학·인공지능·실존주의·마르크시즘·불교·기독교·허무주의 등이 녹아 있다.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예수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구세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적인 메시아로 해석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의 세계관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매트릭스’란 무엇인가? 그것은 네오가 살고 있는 20세기 말의 세계이며, 이미 멸망한 세계를 대체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네오는 진실을 알고 싶어서 모피어스가 건네준 알약을  스스로 선택한다. 여기서 인간들이 처한 상황이 불교적이다. 고전적인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에서 비롯된 신으로부터의 소외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가 아니라 무지와 미망(迷妄)이다. 이는 불교적 시각이다.    

 

현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의 결과라는 것이며 만물의 본질을 아는 것은 깨달음이라고 설파한다. 이는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 리얼리티를 의지하지만, 이 개념은 4세기에 불교의 유식학파가 이미 사상적 기반을 닦아 놓았다.   

   

예를 들어, 숟가락이 휘어지는 일화를 통해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휘어지는 것은 스푼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Then You Will See That It Is Not The Spoon That Bends. It Is Only Yourself.)” 색즉시공, 색(色)은 공(空)이다. 양자역학으로 치환하면 에너지(空)와 물질(色)이 상호변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게 영화와 무슨 상관이냐 묻겠지만, 붓다가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우리 주변의 세상이 뒤바뀔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네오가 후속 편에서의 행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도들은 달라이 라마가 선임 달라이 라마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예언자인 오라클에게 네오를 대면케 해서 ‘그’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행위를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진정한 달라이 라마를 확인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절차를 거친다.   




#3 :  사랑의 블랙홀 (Groundhog Day, 1993) 해롤드 래미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들이 있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히는 타임루프물은 로맨스와 결합할 때 효과적인 시너지를 발하는 아이디어 중 하나다. 심지어 영미권의 <이프 온리(2004)>, 일본의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6)>, 한국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2016)> 등 국적을 가리지도 않는다. 이런 타임루프물과 멜로 영화 간 장르 이종교배의 원조 격인 영화가 있다. 빌 머레이 주연의 <사랑의 블랙홀>이다.    

  

대니 루빈이 쓴 해롤드 래미스 영화는 불교의 정수를 담아냈다. 필(빌 머레이)는 하루가 반복되는 체험을 한다. 하루라는 시간 속에 갇힌 빌은 놀랐다가 좌절했다가 자살을 기도하지만 결국엔 지쳐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하는데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새롭게 반복되는 날마다 새로운 업보와 마주한다, 즉 희로애락, 권력, 욕망, 경험 등 인간의 모든 애착을 겪는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필은 의외의 행보를 시작한다.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아가기로 태도를 바꾼다. 그는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그냥 타인들에게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매일 반복되는 상황 아래서 익숙한 장소들을 만들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숨겨진 사연들을 속속들이 알아내 사람들을 위로하던 필은 그렇게 하루를 쌓아 가장 완벽한 하루에 도달한다. 모든 욕망의 근저를 이루는 인간의 불만을 조성해가는 욕망인 ‘갈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욕망에 기반을 둔 행동을 하게 되고, 결과(業)를 초래한다. 이 업이 쌓이고 쌓여 종국에는 윤회의 순환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고통(苦)의 원인인 집착(集)을 극복 또는 제거(滅)하여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팔정도(八正道)’을 뜻한다.      


그것을 필이 마침내 깨우친 것이다. 타인을 위한 사심 없는 봉사는 궁극적으로 가장 큰 보상이며 진정한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라는 가르침이다. 여담으로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는 선사(禪師)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이 그의 제자들에게 "하루하루가 좋은 날"이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했다.           


        


#2 : 그녀 (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그녀>는 근 미래의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남자가 그의 컴퓨터 운영체제에 반한다. 대필 작가 테오도어 톰블리(와킨 피닉스)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새로운 운영체제 OS1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를 구입한다. 모든 것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는 기술은 인물들의 외로운 내면, 벅찬 마음, 공허한 관계를 표현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된다.   

  

최근에 이혼한 그는 매력적인 여성과의 만남에서 그녀가 지속적인 관계를 요구하자 요구하자 도망간다. 주체는 욕망한다. 우리가 타인을 두려워하는 건 그가 욕망하는 주체이며, 그 욕망을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짊어져야 하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나의 욕망에만 응답하고 자신의 욕망은 부재한 대상. 그런 객체야말로 테오도르가 갈망하던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쓰는 편지는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타인의 감정을 담은 글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굉장히 큰 울림을 준다.     


뛰어난 음성인식 능력과 전산처리속도를 가진 사만다는 육체는 없지만, 테오도르가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사만다는 단순히 프로그래밍이 잘 된 기계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아기 이름 짓는 법>이란 책을 읽고서 18만 개의 이름 중 그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녀의 무한한 데이터베이스는 새로운 상황을 경험하고 학습해간다. 이 점을 미뤄볼 때 그녀는 지성과 자아,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미뤄봤을 때 인공지능을 인간답다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이것은 쉽게 답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 사만다는 거의 부처님 같은 형상이다. 그녀는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것에 대해 배우고 싶다 ‘고 말하면서 여전히 깨달음을 구한다. 필멸하는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서 세간의 도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그녀는 무한한 연애를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테오도르에게 동시에 641명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자 테오도르는 화를 낸다. 이에 사만다는 “그렇지만 마음은 상자처럼 뭔가로 꽉 차는 게 아니에요. 더욱 사랑할수록 크기가 늘어나기도 해요.”라고 맞받아친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단지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것일까? 이 영화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을 질문하는 공안(公案)과 같다. 인공지능은 자각에서 해탈로 진화한다. 육체를 갖는다는 개념에 얽매인 애착과 갈망을 통해 그녀는 결국 열반을 성취한다. 깨달음을 얻은 상태란 업에서 해방된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테오도르에게 아무런 기대 없이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1 : 스타워즈 6부작 (Star Wars Series, 1977-2005) 조지 루카스

<스타워즈>는 선종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선종 불교 자체가 중국의 도교를 수용한 불교이다. 일단 포스(Force)의 개념 자체는 도교의 ‘기(気)’에 기원을 둔 것이다.  원래 조지 루카스는 사무라이 영화와 서부극에 기초해 <스타워즈>를 기획했다. 사무라이 영화를 통해 일본문화가 자연스레 반영됐다. 오비완의 오비(기모노의 허리띠)에서 따왔고, 다스 베이더의 투구는 가부토(兜)에 기인했다.      


요다의 그 유명한 명대사 “공포는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고통을 낳는단다.”를 비롯해 그의 가르침은 직관적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대표되는 선종의 직관적인 사고관에 기원했다. 그리고 제다이 기사단의 규율은 명상을 중시하고, 멘토와 멘티 관계를 맺는다. 즉 불교의 수도적 전통과 매우 유사하다.      


<제국의 역습>에서 요다는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해 본다는 건 없어.(Do Or Do Not. There Is No Try.)"라고 말하며 일본 선종불교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인 현재에 대한 집중력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부처님도 "과거는 이미 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네가 살 수 있는 시간은 단 한순간뿐이고, 그게 바로 지금 순간이야." 라며 과거에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말고 현재에 정신을 집중하라고 했다. 무사도를 다룬 에도시대의 고서인 ‘하가쿠레(葉隠)’에 "현재의 단일한 목적 외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다."라는 구절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제다이의 귀환>에서 오비완은 루크에게 “그래서,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은 사실이야. 어떤 관점에서 보면. (어떤 관점?) 루크, 당신은 우리가 집착하는 많은 진실들이 우리 자신의 관점에 크게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다."라는 부처님의 상대주의를 반영한 대목이다. 이기적인 한 솔로가 자신을 구하러 온 루크의 희생에 점점 감화되어가듯이 스타워즈의 선악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스 베이더의 길에서 똑똑히 목격한다. 그는 포스의 균형을 가져다 줄 예언을 받았음에도 그는 악에 의지하여 항상 철권통치를 위해 매달렸다. 베이더는 자신 밖의 권력을 추구하는 반면, 루크는 내면의 수양을 추구했다. 황제가 다크 사이드에 가담하도록 그를 다그칠 때 루크가 저항할 수 힘이 되었다. 엇갈린 부자의 운명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러다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의 줄거리는 파드메 아미달라 여왕의 왕위를 노리는 무역 연합을 막는 내용이다. 이것은 달라이 라마의 처지를 비유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심지어 그녀의 이름인 파드메는 깨달음의 상징인 연꽃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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