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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l 17. 2020

공포영화 추천 100편, PART II

TOP 100 HORROR MOVIES, PART II

공포영화는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만큼이나 유통기간이 극히 짧다. 지금 관객은 제임스 웨일의 랑켄슈타인(1931)〉이나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1931)>〉가 당시엔 극한의 공포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나 역시 그렇다. 어릴 적에 무서웠던 링〉의 사다코나 주온〉의 카야코, 토시오를 지금에 와서는 개그 소재로 쓰일 때 기분이 묘하다. 십 년 전 영국에서 양들의 침묵(1991)〉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는데 그건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영화가 공포영화로서의 기능을 그만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00년간 호러 장르가 극단적인 자극을 향해 나아갈수록 과거의 공포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순한 맛’으로 뒤로 밀려났다.      

호러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장르다. 공포란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 같은 위협을 느낄 때 생겨나는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매우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자극적인 점프 스케어나 오싹한 장면이 별로 없이도 충분히 무서운 영화가 있다. 반면에 독창적이며 감각적인 소재라 해도 전혀 무섭거나 긴장감 없니 지루한 호러 영화가 허다하다. 그리고 사람마다 공포감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순위를 학문적인 잣대(비교분석)로 리스트를 짤 수밖에 없었다. 선정기준은 ①독창성, ②영향력, ③완성도 순으로 집계했다.




#90 : 지옥 (地獄·1960) 나카가와 노부오

충격적이고 아방가르드하고, 시적인 〈지옥〉은 일본 공포영화의 아버지인 나카가와 노부오의 혁신적인 창작물이다. 한 젊은 신학도 시로와 타무라에게 연이은 죄악을 통해 양심을 파고든다. 시로가 죄책감에 산채로 잡아먹히는 동안, 타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책임을 면피한다. 당연히 타무라는 자신의 악한 면에 굴복한 대가로 끝없는 고통을 선고받는다.     


〈지옥〉은 하나의 예술품이다. 불교 8대 지옥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서구의 플롯 장치를 통합한 최초의 일본 영화 중 하나이며, 시대를 앞서갔다. 공포감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카메라 트릭을 공급하며, 녹색과 회색 톤이 핏빛 붉은색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오진으로 환자에게 잘못된 처방을 내리는 의사, 증거를 조작해서 무고한 시민을 체포하는 경찰, 노인들을 학대하는 양로원장, 아들을 유혹하는 아버지의 내연녀 등을 사후에 심판하는 염라대왕에 다다르면 이 부조리극이 죄와 구원을 주제로 삼았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89 : 레디 오어 낫 (Ready Or Not·2019) 맷 베티넬리-올핀, 타일러 질렛

레디 오어 낫은 마녀사냥을 은유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근본이념인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공리주의란 모두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고 보는 윤리적 사상이다. 영화는 다수의 행복이 증진시키기 위해 개인을 희생해야 되는가라고 따진다. 이처럼 시댁 식구들이 새로 들어온 신부를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부를 지키는 악습 역시 공리주의와 엘리트주의에 대한 조롱이자 풍자다.


또 다른 측면에서 흔히 여전사가 등장하면 기계적으로 페미니즘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신데렐라'에 대한 반감이 은연중에 깔려있다. 극 중 사위 캐릭터는 돈을 노리고 결혼하는 '골드 디거'를 조롱하기 위해 설계된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는 굉장히 잘 조율된 풍자 코미디로 기능한다.



#88 : 기담 (奇談·2007) 정범식, 정식

두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엄마 귀신은 레알 무섭다. 정 씨 형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세심하게 다루며 공포를 자아낸다. 기묘하게 색이 바랜 색감으로 영화의 아련한 정서를 포장한다. 결국 이 옴니버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10월 유신의 근원을 일제 강점기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런 정치적 함의는 정범식 감독이 만든 곤지암(2018)에도 쭈욱 이어진다.



#87 : 불신지옥(Possessed·2009) 이용주

국내 호러로 한정하면 4인용 식탁소름의 후배를 자처하며 오컬트를 주제로 한 추리영화. 건축을 전공한 이용주 감독답게 공간활용이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장르적 관습을 답습하지도 배반하지도 않는 대단히 안전 지향적 태도를 보인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처음에는 개신교와 무속신앙을 동등한 위치에서 출발하다가 나중에는 개신교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둘 다 ‘기복(祈福) 신앙’인 건 마찬가지인데 왜 한쪽에만 면죄부를 주는지 그 점이 아주 미세하게 살짝 아쉽다.



#86 : 컨저링 1,2 (The Conjuring·2013-6)/인시디어스 1,2 (Insidious·2010-3) 제임스 완

컨저링은 국내 개봉 당시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로 홍보됐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러닝타임 내내 모두 무서운 장면으로 꽉꽉 채운 놀이공원으로 초대한다. 컨저링은 새로운 것은 없지만, 기존 영화에서 발명된 아이디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니다. 


인시디어스는 추리물의 플롯과 시간을 뒤섞는 장치를 통해 차별을 꾀한다. 특히 ‘시간여행’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이 영리한 서사적 장치는 관객이 지금까지 이해한 이야기의 성격을 바꿀 정도로 절묘하게 작동하며 단순한 공포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한번 보고 잊어버렸던 무서운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의 사연을 통해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85 : 더 헌팅 (The Haunting·1963) 로버트 와이즈

‘귀신 들린 집’ 장르의 양대 산맥 중 하나. 셜리 잭슨이 1959년에 출간한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종이에 쓰인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널리 추앙되어 왔다. 사운드 오브 뮤직웨스트사이드 스토리지구가 멈춘 날을 만든 명장 로버트 와이즈는 초자연현상을 자제하고 심리스릴러로 접근한다. 공포를 한 여자의 정신 상태를 꿰뚫어 보는 시선에서 끄집어낸다. 사각앵글과 거울상과 어안 렌즈의 교묘한 사용과 섬뜩한 음향, 보이스 오버를 통해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균열을 가하고, 그것을 ‘귀신 들린 집’을 통해 크게 증폭시킨다. 



#84 : 헬레이저 (Hellraiser·1987) 클라이브 바커

헬레이저는 '심야의 공포', '캔디맨' 등을 쓴 호러 소설 작가 클라이브 바커가 1987년 자신의 소설을 직접 영화로 연출한 작품이다. 사디즘, 고어, 에피쿠로스의 쾌락설 혹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스플래터가 뒤섞인 특별한 지옥으로 안내한다. 지금 보면 다소 어설프고 조악하지만,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은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꼭 한 번쯤 거쳐야 하는 필수 답사 코스가 되었다.



#83 : 영혼의 카니발 (Carnival Of Souls·1962) 허크 하비   

공포영화가 환한 대낮의 지나치게 밝은 화면이 웬 말인가? 초저예산 3만 달러로 제작된 이 촌스럽고 서툰 영화는 지금 봐도 이상한 마력을 마구 내뿜는다. 특히 사운드 디자인이 혁신적인데, 스크린 상의 이미지와 액션에서 오디오가 분리되어 여주인공의 악몽 같은 비현실성을 강조한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에 만들어졌다는 영화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텍사스 전기톱 살인〉, 이블 데드블레어 위치나이트메어 앨리〉와 같은 직계후손을 거느렸을뿐더러 일상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성은 훗날 데이빗 린치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82 : 죽음의 키스 (Near Dark·1987) 캐서린 비글로우

젊은 카우보이 ‘케일럽 콜턴(에이드리언 패스더)’은 우연히 만난 뱀파이어 메이(제니 라이트)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기괴한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은 피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고, 아버지와 여동생을 떠나 메이, 제시(랜스 헨릭슨)와 사악한 세브란(빌 팩스턴), 다이아몬드백(저넷 골드스틴). 호머(조슈아 밀러)로 구성된 뱀파이어 무리에 합류한다.   

  

흡혈귀 영화에 로맨스와 서부극의 요소를 결합하여,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의 아트록과 애덤 그린버그의 촬영, 탄탄한 앙상블 연기에 힘입어 영화는 예측 불가능성과 야만성이 지속적인 인상을 남긴다. 비글로우는 남성 감독보다 더 박력 넘치는 액션을 펼치다가도 유신론적 관점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를 박찬욱의 〈박쥐〉에서 무신론적으로 인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 적이 없는 강렬한 흡혈 영화 중 하나‘라는 명성을 얻었다.  



#81 : 검은 물 밑에서 (仄暗い水の底から·2001) 나카타 히데오

많은 공포영화가 주택소유자의 무의식적 두려움을 파헤친다. 〈검은 물 밑에서〉는 세입자들에게 흔한 악몽인, 아파트에 문제가 있는데, 집주인 측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또 양육권 분쟁으로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혼녀가 6살 난 딸과 비슷한 나이의 환영을 만난다. 전통적인 귀신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지만, 영화의 본질은 가족 드라마다. 모녀간의 진한 유대감에 대한 탐구이자,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직면한 모성애가 짙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참고로 2013년 발생한 엘리사 램 익사 사건을 예견한 것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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