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00 HORROR MOVIES, PART V
공포영화는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만큼이나 유통기간이 극히 짧다. 지금 관객은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슈타인(1931)〉이나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1931)〉가 당시엔 극한의 공포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였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나 역시 그렇다. 어릴 적에 무서웠던 〈링〉의 사다코나 〈주온〉의 카야코, 토시오를 지금에 와서는 개그 소재로 쓰일 때 기분이 묘하다. 십 년 전 영국에서 〈양들의 침묵(1991)〉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는데 그건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영화가 공포영화로서의 기능을 그만큼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100년간 호러 장르가 극단적인 자극을 향해 나아갈수록 과거의 공포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순한 맛’으로 뒤로 밀려났다.
공포영화에 있어 1960년은 〈피핑 톰〉과 〈싸이코〉의 해로 기억된다. 그러나 마리오 바바의 고딕호러 〈사탄의 가면〉도 충분히 그들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19세기를 배경으로 부활한 마녀로 인해 벌어지는 공포와 살육을 그리고 있다. 흑백으로 촬영된 강렬한 이미지, 음산한 음악, 끈적거리는 피의 질감뿐 아니라 공포영화에 출연한 여배우 중 기이하고 섹시한 바바라 스틸의 독특한 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킬, 베이비… 킬!〉은 아역 유령으로 유명하지만, 그랍스 남작부인과 멜리사로 대표되는 귀족 계급과 루트로 대표되는 평민 계급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컬러와 조명을 다루는 극단적인 방식, 유령을 다루는 직설적인 태도, 멜로드라마와 선정적인 폭력성의 결합은 모두 바바가 남긴 유산들이다. 더욱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여자(1963)〉로 '지알로'라는 피투성이 서브 장르를 창시하기도 했다. 바바는 창의적이고 위대한 영화예술가였고 호러 장르의 어휘를 넓히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지금도 그의 트릭들은 여전히 쓰인다.
〈블러드 베이〉는 발정난 십 대들을 포함해 다양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호수로 주말을 보내기 위해 모인다. 그리고 한 명씩 의문의 습격자에 의해 사라진다. 마리오 바바는 슬래셔 영화의 프로트타입을 세상에 내놓았다. 내장을 파내고 교살하는 장면들은 갈수록 아주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신랄한 반전 결말로 관객의 뒤통수를 유쾌하게 강타한다. 〈13일의 금요일 2〉에 노골적으로 샷 대 샷으로 모방되었다.
H.P 러브크래프트의 단편소설 〈허버트 웨스트 리애니메이터〉을 원작으로, 80년대 스플래터의 메카로 당시 스크린의 공포를 재정의하고 수많은 모방작을 낳았다. 극단적인 고어 장면과 신들린 듯한 '허버트 웨스트(제프리 콤즈)'의 연기는 거의 고루하기까지 한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 영혼을 불어넣는다.이 궁극적인 그로테스크함에 도달하기 위해 제작진이 노력할수록 아이러니하게 웃음을 참기 힘들게 만든다.
영화사상 가장 끔찍한 자매애, '카니발리즘(식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 진심으로 대단한 음악, 그리고 과장된 고어가 아닌 현실적인 신체 손상은 이 여성판 '늑대인간'을 더 멀리 금기시하도록 이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식 양옥’로 대변되는 이후 한국 호러 장르에서 간과된 미장센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물론 이병우의 유려한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심리 스릴러와 귀신 공포영화를 적절히 섞고 드라마가 탄탄하다. 이 영화가 한국호러 장르에 더 큰 유산이 하나 더 있다. 바로바로 귀신에 얽힌 ‘한 맺힌 사연’과 ‘반전’의 결합이다. 이후 한국 공포영화들 〈아파트〉, 〈신데렐라〉, 〈분홍신〉, 〈해부학 교실〉같은 직계후손을 거느리게 되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임신부 살인, 인육 등 금기를 깨며, 영화 속 범죄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듯한 리얼이즘에서 공포를 이끌어낸다.
〈피핑 톰〉이란 제목의 의미는 '관음증'이다. 잠깐 소개하자면 영국의 어느 악덕 영주에게 항의하기 위해 한 여성이 누드시위를 벌였는데, 시위가 끝날 때까지 그녀를 쳐다보지 않기로 했던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하게 톰이 커튼 사이로 훔쳐봤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고전은 〈싸이코〉, 〈얼굴 없는 눈〉과 함께 슬래셔 장르의 토대를 다졌다고 평가받는다. 〈싸이코〉가 객관적 관점에서 살인범을 관찰했다면 〈저주받은 카메라〉는 살인마의 탄생과 주관적 심리를 엿본다. 카메라가 살인도구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거대한 은유임은 당연한 것이다. 파웰 감독의 혁신성과 비전은 후세 많은 영화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었다. 〈헨리: 연쇄살인범의 초상(1990)〉, 〈아메리칸 싸이코(2000)〉, 〈한니발(2001)〉등이 대표적이다.
점프 스케어(깜놀)에 의존하는 현대 호러 장르에 〈팔로우〉는 반기를 든다. 이를테면 분위기로 서서히 조여들어가는 고전적인 서스펜스 열풍을 일으킨다. '성병'을 의인화한, 죽을 때까지 따라오는 저주(괴물)는 굉장히 독창적일뿐더러 마땅히 제거할 방법이 없어 곰곰이 따져볼수록 소름 끼친다.
〈오니바바〉는 날 것 그대로의 강렬한 스타일은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일본 최고의 공포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작품이다. 14세기 난보쿠초 시대를 배경으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의 참상에서 공포의 기초를 쌓는다. 젊은 남성들은 징집되고, 그들의 가족은 그들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인륜을 저버린다. 가난과 기아에 대한 위협에서 공포를 이끌어 낸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야만성과 국민을 소모품 취급하는 일본 군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수풀 속의 검은 고양이〉는 히로시마 출신의 신도 가네토에게 원폭의 기억은 강렬했다. 그는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억압에 주목한 것은 당연하다. 헤이안 시대의 요괴 전설을 극화했다. 한 여성에게 불어닥친 비극을 침묵의 미학으로 풀어내 관객의 숨통을 잡아챈다. 그리고 훌륭한 공포 영화가 그렇듯이 사회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을 지니고 있다.
원작자 잭 피너는 "만약 신체가 복제되고 정신이 사라진다면?" 라며 불신에 휩싸인 인간군상을 통해 공포의 근원을 되짚는다. 그는 인터뷰에서 정치적 함의는 없다고 부정했지만, 냉전시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해석하거나 이와 정반대로 매카시즘을 통한 마녀사냥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신체강탈자 2부작〉이 SF 공포영화로의 고속도로를 건설하자마자 아벨 페라라의 〈보디 에일리언(1993)〉, 니콜 키드먼 주연의 〈인베이젼 (2007)〉 등 수차례 리메이크됐다. 더 나아가 존 카펜터의 《더 씽(1982)》와 마블코믹스의 《심비오토(베놈)》, 《기생수》 《지구가 끝장나는 날(2013)》등의 이후의 ‘SF 호러’ 작품들이 신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순수하게 ‘무서움’만 따졌을 때 아마 이 작품을 능가하는 공포영화를 만나기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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