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00 HORROR MOVIES, PART VI
공포영화는 오락적 목적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려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영화 장르로 한 세기가 넘도록 존재해왔다. 괴담, 종말론적 사건, 괴수, 종교적·민속적 신념, 미신, 에드거 앨런 포, 브램 스토커, 메릴 셜리, H. P. 러브크래프트, 스티븐 킹 등의 고딕 및 공포 문학에 기반하여 의도적으로 공포심을 유발해 흥미를 돋구기도 한다.
무성 영화와 독일 표현주의에서 시작된 공포는 〈드라큘라(1931)〉가 개봉한 이후에야 비로소 성문화된 장르로 인정받았다. 이후 한 세기가 넘는 동안 바디 호러, 코미디 호러, 슬래셔 영화, 초자연적 호러, 심리 호러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등장했다. 공포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지역마다 내용과 스타일이 다양하다. 특히 일본, 대한민국, 이탈리아, 태국 등에서 호러 장르가 두드러지게 발전했다.
공포라는 소재로 인해 사회적·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표현 수위가 높은 경우가 많이 때문에 흥행하기 쉽지 않은 장르 중 하나다. 그러나 저예산으로도 프랜차이즈로 이꼴고 갈 수 있으므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여러 대중문화 아이콘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2015년까지 서대문구의 금화시민아파트에서 촬영된 영화는, 양쪽이 트여있는 복도식 아파트를 마치 90년대 한국 사회의 축소판로 은유한다. “햄스터를 한 마리 키우다가 한 마리 더 넣어주면 물어 죽인대요.”이라는 대사에서 청년세대가 경쟁질서를 내면화하여 일상생활, 학교, 취업과 노동, 결혼과 연애 등 모든 영역에서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외부의 성과 지표로 인정받으려고 할수록 내면은 공허해지고,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우리 스스로 자녀를 낳기를 거부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계발’이라는 명목하에 차별을 찬성했기 때문이다. 또 그 차별을 자녀에게 흙수저로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각효과·음향편집·음향효과상
〈킹콩〉과 〈고지라〉는 저예산 위주의 공포영화시장에서 대자본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사례들이다. 둘 다 21세기에 여전히 블록버스터로 제작될 만큼 인기가 많다. 사람들은 이 괴수들을 신데렐라 이야기만큼 잘 안다. 호러, 어드벤처, 로맨스, 재난 영화를 이전까지 시도해 본 적 없던 방식으로 합쳤기 때문에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
로버트 에거시는 공포의 본질을 작곡하려고 애쓰는 감독이다. 인류학적으로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종교’를 발명했다. 그중에서 일신교는 일체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주의에 바탕을 뒀다. 중세 신학이 ‘보편 논쟁’ 등을 벌이면서 이 약점을 메우려고 했지만, 도리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불러왔다. 근본주의를 내세운 개신교는 목회에서의 거짓말과 오류, 조직적인 통제불가능, 자율 정화능력의 부재, 목사의 전횡과 치부(致富) 등으로 가톨릭보다 더 쉽게 타락하고 말았다.
이것이 ‘신학’을 신봉하던 중세보다 ‘합리론’이 대세가 된 근대사회에서 마녀재판이 더 활발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마녀'를 명분 삼아 인간의 나약함은 불신과 광기에 빠지고 만다. 〈더 위치〉는 그 광신의 시대상을 온전히 담았다.
오바야시 노부히코는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닥쳐오는 친근함의 공포를 꿈으로 그리는 방식’을 통해 반전 (反戰)메시지를 전한다. 엉성한 특수효과와 우스꽝스러운 팝아트, 기괴한 애니메이션을 동원한 표현주의 양식은 현상 유지에 대한 불안과 경멸을 추구한다. 호러 문법을 근본부터 파괴하지만 일관성있게 유지한다.
〈야곱의 사다리〉는 영적인 여행으로서 공포영화다. 주인공은 철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기억과 애착을 갖고 있는 것들을 태워버린다. 뉴욕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사후세계로의 여행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다. 즉 베트남 참전군인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려는 시도 그 자체가 예측불가능한 영화적 정황을 창조해 냈다는 점이다.
〈새〉는 음악을 쓰지 않고, 실제 새소리를 녹음하고, 전자적인 방식으로 증폭되고 변형된 음향을 통해 일상으로부터 공포를 이끌어낸다. 재난영화와 동일한 음표로 이뤄진 정교하게 계산된 교향곡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악보대로 연주된다. 비인간적이라고 할 만큼 냉정한 지휘 아래 영화는 막을 내렸지만, 영화는 아무런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때가 ‘열린 결말’이 호러 장르에 귀속되는 순간이다.
제목부터 ‘캐빈 오브 더 우즈’ 장르를 패러디했으며, 호러 장르를 제멋대로 해킹하고, 슬래셔와 고문 포르노 영화들의 무덤을 도굴한다. 거꾸로 이 점이 수많은 공포영화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터널 선샤인〉과 〈존 말코비치되기〉, 〈아노말리사〉의 작가인 찰리 카우프만이 발굴할 수 있는 심리묘사는 기대만큼 기이하다. 그러나 카우프만답지 않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그의 장기인 부조리함을 호러/스릴러에 심으며 더욱 뚜렷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주인공은 지난날의 후회와 고독을 낭독한다. 이것이 기괴하고 생경한 심리를 자아낸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택에 대한 불확실성에 불안을 느끼므로 지나간 결정에 대해 아쉬워하는 심리가 있다. 또한, 필멸자로서 언젠가는 끝이 있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회피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공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칸 영화제 국제 영화 비평가 연맹(FIPRESCI)상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세이렌 신화, 19세기 뱃사람들의 구전설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한데 모아 감독 말마따나 “실제와 같은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러나 1.19:1의 정방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로 영화를 촬영한 까닭은 한정된 공간에 제한된 정보로 승부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다 보고 나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결말이 그 증거다.
〈스크림〉은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다 무한 자기 복제로 자멸한 ‘슬래셔 장르’를 부활시킨다. 웨스 크레이븐과 각본가 케빈 윌리엄슨이 마련한 공포영화 퀴즈는 '호러 장르의 법칙'을 얼마나 통달했느냐에 따라서 그 재미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이 지적 유희로서의 재활용은 〈케빈 인 더 우즈〉, 〈새벽의 황당한 저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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