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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Jul 25. 2020

야구소녀 리뷰 마음의 편견을 없애라!

Baseball Girl 2019 영화 리뷰

#야구치 시노부식 작명법의 로컬라이징


여성 야구리그가 없는데 제목에 ‘야구 + 소녀’를 명명한 이유는 아무래도 <스윙걸즈>, <워터보이즈>의 야구치 시노부의 영향으로 읽힌다. 그러나 야구치 시노부스러운 힐링 영화나 코미디는 없다. 그리고 틴에이저 무비답지 않게 러브라인이 없다. 극 중 정호(곽동연)가 매니큐어를 선물하자 주인공은 여동생에게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단하기 위해 바르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로써 최원태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여성영화에서 스포츠 영화로 전환한 이유가 여기서 밝혀진다. <야구소녀>는 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야기다.      


한국영화아카데미 32기 최원태 감독은 신인답지 않게 연출이 단단했다. 돌다리를 두드리듯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생략 화법과 플래시백이 대세인 요즘 영화들과 궤가 다르다. 익숙한 클리세를 기교 없이 벽돌 쌓듯이 쌓아 올린다. ‘뭐야 어디선가 본 영화 같아’고 생각이 들 무렵 감독의 미끼에 걸리고 말았다.     



#루저들의 대리 욕망

보통의 스포츠 드라마나 성장영화에서 고난에 부딪친 주인공을 주변에서 온 세상이 응원해서 마침내 꿈을 이루게 해주는 식으로 끝맺는다. 그런데 <야구소녀>는 정확히 반대다. 주위의 회유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주수인(이주영)은 유일하게 꿈을 향해서 도전한다. 주변 인물들은 다 패배자들뿐이다. 주수인의 친구 '한방글'(주해은)은 아이돌을 꿈꾸며 오디션을 준비했지만 결국 불합격한다.    

  

‘최진태’(이준혁)는 프로는커녕 독립구단에서 방출돼서 부인과 이혼했다.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고교 야구부 코치로 겨우 밥벌이를 할 뿐이다. 그가 수인의 꿈을 돕는 이유는 강속구에만 집착하지 말았어야 할 자신의 과거를 응원하는 것과 같다. 도전정신이 강한 주인공을 통해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변화하면서 자기의 고정관념이나 꿈에 대한 태도를 스스로 되짚어보게 만든다.      


가족은 어떠한가? 아버지 '주귀남'(송영규)는 공인중개사 시험 매번 낙방하는 만년 수험생이고, 어머니 '신해숙'(염혜란)은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이다. 어머니는 수인을 가장 방해하는 반동 인물로 “나는 처음부터 네 엄마인 줄 아는 거니?”라며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영화에서 모녀관계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지 못한 ‘아이스크림’을 수인이 자기 돈으로 사 먹는 장면은 모녀의 갈등이 치유된다는 상징이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실력이 모자라서야! 

라이브볼 시대의 최다승(363승) 투수인 워렌 스판은 “타격은 타이밍이다.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Hi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ting timing.)”라고 야구를 정의 내렸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뛰어난 왼손 투수 한 명에게 수여되는 워렌 스판상은 이 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트라이아웃에서 주수인은 현직 프로선수를 상대로 너클볼로 스트라이크 2개를 잡는다.  타자는 3구도 너클볼을 예상하지만, 그녀는 속구로 타자의 밸런스를 무너뜨린다. 워렌 스판의 명언을 증명해주는 이 장면은 슬로 모션으로 강조한다. 이것이 유희관 같이 구속이 느린 투수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에게 수여되는 최동원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주수인은 중학교 때 강속구 투수로 명성을 얻었고, 신생 야구부를 띄우기 위해 교장 덕분에 고등학교에서도 야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주수인의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수에게 체격은 중요하다. 키가 크면 공의 궤적을 쫓기가 어려워져 타자들이 상대하기 곤란해한다. KBO 투수 평균 신장이 184 cm이고, 메이저리그 선발투수는 192cm가 평균이다. 마운드 높이에 따라 리그 방어율 차이가 유의미하게 난다는 것은 세이버매트릭스로 판명된 사실이다.      


만약 주인공이 남자라고 해도 체격도 작고, 최고 구속 132Km의 투수에게 프로선수로써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수인의 유일한 장점은 공의 회전력이 좋다는 것이다. 최진태 코치는 너클볼을 배워보자고 조언한다. 하지만 너클볼은 공을 거의 회전하지 않게 만들어서 공을 던진 투수조차 공의 궤적을 예측할 수 없게 하는 데서 위력을 발생한다.      


아마 감독은 강속구에 집착하는 주인공 자신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이런 설정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보다 야구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 이건 난센스로 들린다. 1달 만에 새로운 구종을 익힌다는 것은 <야구소녀>가 판타지라는 점에서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다만 훈련 방식이 구식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야구선수로서 1999년 대통령 배 고교 야구대회 준결승전에 선발투수로 출전해 화제를 모았던 안향미 선수를 모티브로 삼고, 여자 야구선수 몇 분을 참고한 점은 기특할 일이나 근본적으로 '야구'라는 종목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축구나 농구보다 야구가 오히려 여성에게 유리할지도 

축구나 농구보다 체력(피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이 야구는 낮다. 야구는 지구력보다 순간적인 파워가 중요하다. 파워란 근력과 스피드가 합친 개념이다. 그리고 야구는 육성의 스포츠다. 야구는 농구처럼 1라운드 1번이라고 성공하지 않는다. 현재 최고의 야구선수인 마이크 트라웃은 드래프트 25순위에 불과했다. 농장이라는 의미인 ‘팜(Farm)’인 마이너리그(2군 리그)에서 기술을 단련시킨다. 야구선수는 해당 포지션에 맞는 기술을 따로 훈련하지 않는 이상 매우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수인처럼 트라이아웃을 통해 2군 선수로 계약해서 기량을 열심히 갈고닦는다면 1군에 올라갈 수 있다. 국가대표 포수인 양의지같은 하위 순번선수가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야구소녀>는 주인공 한 명을 위한 응원가가 아니다. 영화 속 수많은 패배자들을 위로한다, 트라이아웃 장면에 현직 국가대표 야구선수인 원혜련이 분한 ‘정 제이미’은 파이팅을 제일 먼저 외친다. 그 파이팅은 우리 모두가 편견과 불가능의 장벽을 넘으라는 감독의 독려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 (3.0/5.0)      


Good :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이야기 

Caution : 감독이 야알못이다. 삼진아웃!!!     


■영화를 보면서 웰메이드 성장영화 <벌새>만큼 재밌게 봤다. 그런데 미취약 아동인 여동생에게 과자 몇 봉지 사주고 집에 홀로 놔둔 장면은 불편했다. 만약 마음 편하게 판타지로 여기시고 보신다면 뻔하지만 제법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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