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는 느슨하다. <서울역>과 <부산행>이 그랬던 것처럼 두 작품은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를 펼치는 스탠드 얼론 시퀄이다. 장르도 다르다. <부산행>이 '재난'과 '좀비 액션'에 집중했다면, <반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집중했다. 이 차이는 나중에 어머어마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뉴욕탈출 (좌) 반도(우)
포스트 아포칼립스인 <반도>는 어떻게 멸망한 세계를 그릴까? 연상호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고전 <뉴욕 탈출(1981)>을 레퍼런스 한다. <반도>의 줄거리부터 그러한데 4년 전 부산까지 좀비가 창궐하며 홍콩으로 피신한 미군 소속의 정석(강동원)이 주인공이다. 그는 제한시간 내에 달러가 든 트럭을 확보해 한반도를 탈출하는 미션을 부여받는다.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와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가 정석 일행을 가로막는다.
속편답게 스케일을 키우면서 '기차'라는 좁은 공간에서 한국 도심 전체로 무대를 확장한다. 침몰되어 있는 배들과 폐허가 된 인천항과 서울의 황량한 풍경은 <뉴욕 탈출>을 빼닮았고, 폐허가 된 도심, 널브러진 자동차들을 유유히 피해서 진행되는 아슬아슬한 카체이싱 액션은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2015)>를 참조했다. 차이점은 <분노의 도로>가 철저히 아날로그 액션에 치중했다면 <반도>는 스튜디오 촬영과 CG 기술로 추격전을 구현했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대로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1978)>을 참조해서 631부대의 아지트를 쇼핑몰로 정했다. 631부대의 세부적인 묘사는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날(1985)>를 연상시킨다.
이상 장르영화에서 레퍼런스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장르 영화답게 장르 습관(클리셰)을 이용해 오락성을 뽑아내느냐가 관건이다. 2장에서 이 부분을 알아보자!
2. 존 포드의 <역마차(1939)>의 미덕을 잊다.
부산행 (좌), 역마차 (우)
<역마차>는 우연히 함께 마차에 동승하게 된 승객들이 의기투합해서 인디언을 피해 목적지로 향하는 하나의 거대한 추격전이다.왠지 <부산행>과 연관되지 않는가? 이때 중요한 점은 <부산행>의 주인공 일행은 전부 남남이었다는 사실이다. 석우(공유)와 수안(김수안),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 인길(예수정)과 종길(박명신) 사이에는 일면식이 없다. 좀비가 열차 안에 없었다면 종착지 부산역까지 서로를 몰랐을 것이다. 캐릭터 묘사를 할 필요가 없이 ‘사건’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용석(김의성)과 노숙자(최귀화)를 통해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심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반면에 연상호는 <반도>를 좀비 아포칼립스 <워킹데드(2010-2019)>의 군상극처럼 그리고 싶었다. 생존자들끼리 벌이는 분열과 갈등 그리고 사회비판 말이다. <반도>는 다양한 배경을 오가며 여러 인물의 사연과 감정까지 표현하려 한다. 거기다 2시간 안에 세계관을 설명하고 군인과의 대립도 다루고, 액션도 벌이느라 정작 좀비의 출현 분량은 대폭 축소된다. 과부하를 줄이고자 영화의 시점은 자주 분산되고 각 사건의 연결을 '우연'에 의존한다.
연상호는 이런 약점을 의식한 듯 얄팍해진 캐릭터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신파’가 태어난다. 게다가 세 모녀를 등장시켜 기성세대의 반성을 다루려는 야심이 더해진다. 물론 사단장이 아이들에게 던지는 대사는 꽤 뭉클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나친 욕심이었다. 구슬픈 악보에 굳이 도돌이표를 붙일 필요가 있었는지 그 부분이 가장 아쉽다.
한국에서 좀비가 더 이상 새로운 소재나 장르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2018년 <워킹 데드 시즌 8>에서 시청률이 급락한 것처럼 관객의 눈높이에 걸맞게 계속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액션에 대해 한 마디만 하고 끝마치겠다. 한국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이라 응원하고 싶지만, 액션 연출은 <백두산>이 절로 연상됐다. 기술력을 과시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깜깜한 밤에 버려진 차량들이 빼곡한 도로에서 펼치는 추격전은 박진감과 속도감 둘 다 약간씩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 (2.4/5.0)
Good : 최초의 한국형 포스트 묵시룩, 훌륭한 프로덕션 디자인
Caution : 줄어든 긴장감, 투머치한 신파 코드와 슬로 모션, 평면적인 캐릭터
●<반도>는 올해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해외 세일즈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미 전 세계 185개국에 판매됐다. 이를 통해 손익분기점을 250만 명까지 낮췄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VOD 예상수익과 특별상영관 예상수익 등 아직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희안한 장부계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