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극 (Western Movies)
덴마크 서부극의 배경은 1864년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시작된다. 덴마크 이주민을 주인공으로 삼아 세르히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을 현대적으로 리패키지한다. 매즈 미켈슨은 리 밴 크리프를 연상시키며, 감독은 레오네의 트레이드 마크인 빠른 컷과 와이드 샷을 환기시킨다. 그것을 제외하면 성폭행과 아동살인이 횡행하는 ‘서부’라는 세계의 야만성을 묘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문명 비판에 집착하느라 정작 중요한 주인공의 복수가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처한다.
직업도박사 매버릭(멜 깁슨)은 도둑인 ‘애나벨 브랜스포드(조디 포스터)’와 엮이면서 전국 포커대회 '루크러 챔피언 쉽'에 참가한다. 무려 참가비만 1인당 2만5,000달러나 된다. 꾼과 꾼들의 경쟁과 음모가 전개된다. 50년대 TV드라마를 각색한 코믹 서부극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서 모두 즐겁게 찍었다고 한다.
아카데미 촬영상
20세기 초 몬태나 주를 배경으로 홀아비(앤소니 홉킨스) 아래서 성장한 삼형제를 다룬 대하드라마다. 문명화된 신사 에이든 퀸, 야성적인 개인주의자 브래드 피트, 그리고 모두가 사랑에 빠진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젊은 이상주의자 헨리 토마스의 개척 모험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약혼녀 역의 줄리아 오먼드가 상징하는 도시문명과 충돌하는 서부 개척민의 문화충격을 장엄하게 그렸다.
30년대 인기드라마 〈론 레인저〉의 80주년 기념작으로 영화는 세르조 레오네, 버스터 키튼, D.W. 그리피스에서 자양분을 얻는다. 고어 버빈스키는 전매특허인 화끈하고 유머러스한 액션한스 짐머의 음악과 조니 뎁의 연기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기념물은 원주민 캐릭터에 대한 과거의 인종차별적인 시선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다. 건축가로써 버빈스키는 원작의 눈부신 유물을 못 본 척하지 못하지 못한 실수를 범했다.
〈레버넌트〉의 명백한 전신은 시드니 폴락의 산악인 서부극이다. 멕시코 전쟁에 환멸을 느낀 퇴역 군인이 가족과 친구, 문명과 완전히 단절하고 로키 산맥에 올라 홀로 살아간다.
영화는 원시 자연에 경의를 표하며, 자연인으로 살아가는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고독을 그리고 있다. 자연에 동화된 인간이 겪는 생존방식과 육체성을 촬영하기 위해 수십 명의 북미 원주민들을 배우, 엑스트라 및 제작진으로 고용했다. 폴락은 7개월 반 동안 편집하면서 “리듬과 분위기, 멋진 공연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멕시코가 주도권을 쥔 서부극 《엘 마리아치》(1992)의 후속편이자 리메이크 영화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기타 케이스에 총을 잔뜩 넣고 다니는 악사로 등장한다. 오우삼의 총격전에 찬사를 보내며 화려한 감각을 뽐낸다. 분명 과잉된 작품이지만, 멕시코 전통춤부터 프로레슬링까지 모든 것에 멕시코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어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샘 레이미는 기본적으로 영화광이다. 이것이 그가 여러 장르를 방랑한 까닭이기도 하다. 샘 레이미의 신서부극(Neo Westerns)은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표하기 위해 디자인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 총잡이가 복수를 꾀하는 내용이다. 샤론 스톤을 사연 많은 여성 총잡이로, 악덕 시장 역은 진 해크만이, 호주에서 할리우드로 막 진출한 러셀 크로우와 <타이타닉> 이전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목숨을 건 위험한 결투 시합에 참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배우진,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 단테 스피노티의 감각적인 촬영이 그 영화적인 트릭을 완벽히 구현한다.
먹방 영화의 최고봉, 누더기 차림의 테렌스 힐과 버드 스펜서가 무법자 형제 역을 맡아 스파게티 웨스턴에 슬랩스틱 코미디로 접목한 독특한 시도가 흥행을 견인했다. 트리니티(테렌스 힐)가 촌장의 딸들에게 반한 후 결혼하기 위해 두 자매가 사는 몰몬교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말 도둑인 트리니티의 본성에 어긋나는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
60년대 동양에 자토이치와 쇼 브라더스가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마카로니 웨스턴이 있었다. 무수한 `링고 시리즈(15편)`의 첫 출발을 알린 작품. `엔젤 페이스`란 별명을 가진 링고(줄리아노 젬마)는 정당방어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는 무법자로 잇속을 철저히 챙긴다. 살인죄로 기소된 그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강도단을 소탕하고 인질을 구하는 작전에 투입한다. 가볍고 경쾌한 오락물로 재치 있는 대사와 창의적인 시퀀스가 영화를 꾸준히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혹스는 40년대까지 엘리트주의를 찬미하며 남성 전문가 집단들의 우정과 연대를 찬미하는 기조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말년에 만든 〈리오 브라보>(1959)〉와 〈리오 로보 Rio Lobo(1970)〉 3부작에서 영웅주의와 집단의 연대감을 스스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존 웨인과 로버트 미첨이 느슨하게 뭉치지만, 낭만적인 정통서부극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변호한다. 악당을 시원시원하게 척결하는 권선징악은 아메리칸 웨스턴다운 호쾌함을 잃지 않았다.
DH 로렌스 (DH Lawrence)의 격언처럼 영화의 오프닝부터 ‘증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종 전쟁으로 인해 동료를 잃은 상처,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악몽 같은 순간들, 부족을 잃은 상처, 대학살을 저지른 죄책감, 그로인해 제어할 수 없는 중오심과 분노 등 대립적 상황이 펼쳐진다. 그러나 영화는 공존하려면, 오직 용서와 화해뿐이라고 설파한다. 영화를 보면서 남북 긴장과 증오심은 도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종전 평화협정이 실현되면 어떤 세력에게 불리할까 같은 한반도 정세가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셰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알려있지만, 성서의 덕을 톡톡히 본 영화다. 제목부터 묵시록의 4기사에 나오는 '죽음의 청기사'를 의미한다. 목사(클린트 이스트우드)라 불리는 총잡이는 요한계시록 6장 8절을 낭송하며 죽음을 뜻하는 동의어로 신의 응징을 가한다. 80년대 서부극은 범죄 스릴러의 인기에 가려진 것처럼 보였다. 이스트우드는 웨스턴에서 채굴할 황금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박스 오피스에서 그 인기를 확인했다.
세르조 레오네의 영향력은 이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이스트우드의 목표는 이 장르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장르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다. 감독은 ‘이름 없는 남자(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매우 과격하게 묘사한다. 상류층의 여성을 무심코 강간함으로써 그 즉시 관객의 공감을 저버린다. 인간성에 대한 냉소와 어두운 주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환멸로 읽힌다. 마을의 표식을 붉은 페인트로 ‘지옥’이라 덧칠한 것은 구약의 응징 그리고 구원에 대한 낙관을 함께 허한다. 즉 1970년대 불안한 정세의 불안심리를 반영하고 스타배우로써 장르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한 것이다.
서부극의 상징인 '존 웨인'은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개척주의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라고 힐난했다.
혁명 웨스턴의 효시, 사바타 웨스턴이라 불리은 이 하위장르는 멕시코 혁명의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에서 따온 명칭으로 멕시코 혁명을 소재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파게티 웨스턴을 일컫는다. 주인공이 자신의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멕시코 혁명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정부군과 혁명군, 지주와 농민들의 계급투쟁 같은 정치적인 내용을 담았고, 기관총의 등장과 대량학살 장면은 웨스턴의 1:1 속사대결과 대비된다. 다소 불균질하지만 당대의 민중상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로버트 올드리치는 상이한 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질감이 초래한 도덕적 상대주의에 주목한다. 아파치의 족장 울자나(호아킨 마르티네즈)를 추격하는 기병대장 매킨토시(버트 랭커스터)은 아내가 아파치족이라 원주민을 이해하는 반면 가넷 드부인 중위(브루스 데이비슨)은 그가 경험한 것이 기독교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원주민에 적대적이다.
감독과 각본가 앨런 샤프는 베트남 전쟁의 우화로 기획했다. 그래서 영화는 엄격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아파치의 게릴라전에 속수무책인 기병대의 무력감, 가차 없는 양민 학살 장면은 추악하고 거슬린다. 이 불편한 묘사는 역설적이게도 상호존중과 관용을 촉구한다.
60년대 서부극은 혁신의 연속이었다. 샘 페킨파는 ‘죽음의 발레’을 선보였고, 세르지오 레오네는 ‘얼굴의 파노라마’를, 하워드 혹스는 팀 플레이를 통한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면모를 보여줬다. 웨스턴에 심리극을 도입한 건 안소니 만이 이미 다 했다. 마틴 리트는 점잖은 미국시민의 위선을 통쾌하게 폭로한다.
데스밸리에서 촬영되어 애리조나의 자연경관을 멋진 구도로 담아낸 영화로 유명하다. 아파치 족의 손에 자란 ‘존 러셀(폴 뉴먼)’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파란 눈의 폴 뉴먼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백인의 시선으로 인종차별을 탐구한다.
훗날 샘 페킨파와 스파게티 웨스턴에 거대한 유산을 남긴 혁명적인 작품이다. 1866년 멕시코 민중혁명을 배경으로 스페인 왕당파와 멕시코 반란군 사이에서 미국인들은 황금만 추구한다. 서부개척을 미화하는 로맨티시즘을 떨쳐버리고 자기 잇속만 쫓는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아비규환이라고 폭로한다.
호주 중서부 사막지대를 무대로 한 '미트파이 웨스턴'이다. 호주 영화답게 웨스턴에서 발견되는 명제인 문명과 야만을 백인들끼리의 항쟁에 적용한다. 호주에 정착한 영국 이민자, 영국군, 아일랜드 출신 ‘아웃로’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열차안의 낯선 자들》을 연상시킨다. 보안관이 악명 높은 무법자(가이 피어스)를 체포한다. 보안관은 네 형을 죽이지 않으면 네 동생을 죽일 것이라며 무법자에게 제의한다. 잔혹한 개인 간의 대립은 피로 얼룩진 호주의 건국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고통과 상실감을 내포하는 모순적인 대위법이다.
국내엔 〈허망한 경주〉로도 소개된 스포츠 영화이다. 경부선보다 더 먼 700마일(1126.54km)짜리 경마대회를 다뤘다. 동물애호가인 진 해크먼과 쾌활한 멋쟁이 제임스 코번의 선의의 경쟁을 중심으로 참가자들의 천태망상을 소개한다.
제목은 대회에 출전한 멕시코인의 치통을 치료하기 위해 탄피를 의치로 활용하는 장면에서 유래했다. 영화에서 총탄이 살상용이 아닌 의료용으로 탈바꿈한 거의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존 웨인의 유작은 웨스턴 장르와 동일시되는 우아하고 메타 아웃트로(meta outro)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전설적인 총잡이 J.B.북스 역을 맡았다. 존 웨인은 암 투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열연을 펼쳤다. 클라이맥스인 바(Bar)에서의 결투는 상징성이 크다. 서부시대 마지막 영웅이 자기 죽기 전에 무법자들을 소탕하고 제자인 길룸이 스승의 복수를 대신 행하지만, 과감히 총을 던져 버린다. 존 웨인의 상징성을 맥락화한 모더니즘 서부극은 정통 웨스턴의 종언을 고한다.
토미 리 존스는 미국의 뿌리를 거꾸로 되짚어 본다. 19세기, 미국 네브라스카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노처녀 ‘메리(힐러리 스웽크)’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을 아이오와의 요양원으로 후송하라는 교회의 지시를 받는다. 서부에서 동부로의 여정에 여성이 남성을 데리고 떠나는 그림은 여성의 성(性)억압을 남성이 공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와 그의 친구 닥 할리데이가 등장하는 영화들 중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와 더불어 가장 유명하다. 존 스터지스는 어프에게는 존 포드의 신화적인 영웅상을 제시하고, 닥에게는 수정주의적 시각을 담아 적용방식을 달리했다. 자신이 액션 세트피스의 거장임을 다시금 입증한 스터지스는 정교하게 연출된 5분간의 시원하고 화끈한 총격전으로 정통 서부극의 묘미를 잘 살리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을 리메이크했다. 흥미롭게도 구로사와의 사무라이 영화는 존 포드 서부극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시대와 배경을 미국 서부와 멕시코로 옮겼지만 그 과정에서 원작이 지니고 있던 인물 묘사, 주제 의식, 형식적 미학 등은 증발하고 상업적 요소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짜임새나 휘황찬란한 액션의 박진감은 대단한 수준이다. 특히 앨머 번스타인의 격정적인 스코어가 영화를 모르더라도 흥얼거릴 만큼 중독성이 높다.
훌륭한 웨스턴을 만들기 위해 꼭 미국인이거나 심지어 미국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동부소식은?" "고통과 폭력요" "서부는요?" "꿈과 고통이지" "인종말살이 문학과 예술에 의해 신화와 낭만으로 포장한 채 말야"라며 살의와 냉소로 가득한 서부를 의인화한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서부극은 결국 미국 건국과정에서 미국인의 정체성을 묻는 장르이다. 이것은 한국계 미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미나리>는 거시적인 이민사와 미시적인 가족사를 교묘히 배치해 놨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인공 시점을 둘로 쪼개 놓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제이콥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는 데이빗의 시점으로 나눠놨다. 아버지와 아들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어서 진부한 가족드라마로 낭비되지 않도록 막고 있다.
<퍼스트 카우>가 우유를 훔쳤다면 제이콥은 지하수를 몰래 끌어다 쓰고 있다. 이렇듯 존 포드의 서부극에 함의되어있던 개척정신과 프로테스탄티즘을 ‘미나리’로 상징되는 한국인의 민족성과 결부 짓는다.
남북전쟁 당시 미주리주 민병대 이야기를 통해 공존의 화합을 기막히게 풀어낸다. 전통적으로 북군을 지지하는 독일계와 자신의 인종을 해방시키겠다는 북군을 향해 총을 든 흑인 청년이 이 영화의 아이러니한 주인공이다. 이런 경계에 선 이방인들을 배척하는 남군의 허울뿐인 이상이 드러나고, 무턱대고 적의를 드러내는 차별과 혐오가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말한다.
〈기병대 3부작〉의 첫 번째 영화는 인명과 지명을 바꿨지만 리틀 빅혼 전투 혹은 커스터의 옥쇄(Custer’s Last Stand)가 모티브가 됐다. 1876년 6월, 커스터 장군이 이끌던 제7기병대가 인디언 수족에게 패배해 미군 268명이 몰살당한 이유는 뭘까? 써스데이 중령(헨리 폰다)는 서부의 오지로 발령받자 분해한다. 공명심에 눈 먼 그는 요새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존 포드는 언제나 공동체의 몰락에 염려했다. 모래알 같은 흩어지기 쉬운 다인종국가가 신화 만들기에 몰두한 것도 공동체의 분열을 막기 위함이다. 위정자의 대리인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것에 포드는 분개했다.
1965년, 존 포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야. 거기엔 액션도 있고 유머도 있고, 내 인디언 형제들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첫 작품이지.”라고 말했다. 이런 원주민 영웅서사는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가 무법천지 서부(Wild West)에 문명을 가져다준다는 식으로 그려진 미국 건국신화를 해체한다. 포드 자신은 <수색자>(1956)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보다 훨씬 앞선 1948년에 수정주의 서부극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뜻이다.
카타르시스가 증발된 복수극, 와이오밍 주의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원주민이 폭력적인 억압의 역사 구렁텅이에서 그들의 문화와 뿌리를 잃었으나 긍지만은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현실을 폭로한다. 이 영화를 계기로 원주민 실종자들은 미국인 실종자 통계에 집계하지 않는 미국 정부에 불합리한 관행을 제고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