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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Sep 14.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7) 후기

헬레니즘 문화에 대한 찬가

01> 왜 헬레니즘(인본주의) 인가? 


많은 로맨스물이 두 사람이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고 하나가 되는 변화를 생략해버린다.하지만, 구아다니노는 그 순간의 찰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랑의 대상물을 동원한다. 그 감정의 방향성과 에너지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꺼내든 카드는 '철학, 문학, 미술'이다. 특히, 극중 올리버가 펄먼 교수의 라틴어설을 반박하고, 그리스어를 주장하는 살구 논쟁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의 카토가 동성애를 '그리스화'라고 일컬으며 원로원에서 규탄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떠오려 보자! 소크라테스가 '소년애' 야말로 완벽한 사랑이라고 찬양했을 만큼 군대(그리스의 팔랑크스나 마케도니아의 신성 부대)에서 동성애는 권장되었다. 이는 대열을 중시하는 고대 전술상 동지애를 고취할 목적 하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각주) 자바 회전 이후 로마군단에 기병 전술이 보편화되면서 밀집 보병 전술은 점차 퇴조하였던 영향은 분명했다. 대사로 언급되는 하드리아누스에게도 '안티노'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이에 아름다운 청소년에 대한 사랑은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은 아니었지만, 드러내놓고 공공연히 해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후에 기독교가 공인된 로마에서는 동성애는 점차 자취를 감췄다.-

     

오프닝 크레디트, 유물 발굴, 슬라이드 쇼를 통해 남성 나체상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 올리버는 기독화된 현대문명보다 '남성 간의 사랑'을 진정한 연애로 믿었던 헬레니즘 시대로 회귀하자고 설득한다. 욕망을 숨기지 말고 찬란한 햇살에서 당당히 다루는 구아다니노에게도 솔깃한 제안이다. 그가 연출한 펄먼 부부 역시, 올리버의 주장을 십분 이해하고 아들의 '헬레니즘화'를 돕는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엡타멜롱> 속 이야기와 베르가모 여행 권유 그리고 아버지의 동성애 고해성사가 그러하다.     


또한,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에서는 나오는데, 영화에서는 삭제된 올리버가 여자를 만나는 대목이나, 약혼녀의 존재, 엘리오와 마르치아의 섹스 장면에서 말하는 이성애와의 공존은 도대체 무얼 뜻할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특이할지 몰라도 동성애와 이성애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분명 아테네에서는 동성애를 권장했다. 즉, 이성애는 출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소년애야말로 남성들끼리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일종의 유희였기 때문이다.     


02> 베르톨루치의 성장영화를 실존적으로 다루다.    

  

이를 종합해보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욕망 3부작'에 가장 억압된 기제를 다루고 있다. 앞선 양성 간의 투쟁보다도 말이다. 라캉의 견해대로 욕망은 가질 수 없는 금기이기에 더 소유하고 싶은 법이다. 이 위험한 사랑은 "침략자다"라는 첫 대사부터 암시된다. 이질적인 문명의 충돌로 인해 엘리오는 잠도 설친다. 구아다니노 특유의 야외 식사 장면에서 클로즈업 인서트로 올리버의 '다윗의 별' 목걸이를 비춘다. 유태인임을 숨기고 있던 엘리오의 눈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동질감이었다. 이것이 구애의 시작이었다. 함께 몸을 섞고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 구애를 하던 객체에서 펠라치오를 받는 주체로 승화된다. 여행길에서는 당당하게 '금지된 욕망'을 목에다 찬다.    

  

좀 더 고찰해보자, 하이데거에 의하면 자신의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본래적인 실존을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여기에 첫사랑을 대입해보자, 엘리오에게 올리버와의 함께 할 수 있는 기간은 6주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이 현재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올리버 앞에서 리스트와 부조니를 가미했던 엘리오는 (올리버와의 커플이 된 후) 아이작 와 무니르 커플 앞에서는 바흐 원곡 그대로를 충실하게 연주한다. 이것은 펄먼 교수가 아들에게 했던 충고와 같다. 그 내용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나이가 되었잖아?"였다. 즉, 오직 인간만이 이처럼 있지도 않은 미래가 현실을 규정한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현존재 Da-Sein를 영화적으로 풀어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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