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케이팝은 세계를 정복했다. 그러자 일본은 '탄도소년단(BTZ)'을 내놓고 중국은 '시대소년단(TNT)'을 통해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이만큼 우리나라의 소프트파워가 성장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홍대나 이태원의 인디 뮤지션들의 활동이 어려워졌다. 무명 음악인들은 미래의 K팝을 위한 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에는 부디 정상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럼, <올해의 노래 2020>를 살펴보자!
[후보] 배드 버니(Bad Bunny) & Jhay Cortez, Dákiti(El Último Tour Del Mundo·2020)
빌보드 차트 TOP10과 빌보드 라틴 차트 1위에 동시에 핫 삿 데뷔한 첫 번째 사례다. 2060년대에는 히스패닉이 미국 주류 인종이 될 전망이라 라틴팝의 성장은 이미 무시할 수 없다.
그중에 푸에리토리코 출신 래퍼 배드 버니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3집<YHLQMDLG>를 비롯해 2020년 가장 훌륭한 음악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그런 만큼 <Dákiti>는 레게톤 혹은 라틴 힙합이 지닌 긍정의 힘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 <미스터 트롯>으로 촉발된 트로트 열풍에 화룡정점을 찍었다. 나훈아에 의하면 아버지를 그대로 쓰면 곡 분위기가 무거워질까봐 잘 알려진 소크라테스를 내세웠다는데 그것이 도리어 노래의 깊이를 더해줄 뿐 아니라 그 재치로 말미암아 인터넷 밈으로 승화되었다.
[후보]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Adore You (Fine Line 2019)
해리 스타일스는 원 디렉션 멤버 중 가장 뚜렷한 행보를 걷고 있다.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 바쁜 다른 멤버들에 비해 꾸준히 과거의 록 유산을 먼지 한 톨 없이 현대로 끌어온다. 디스코열풍에 많이 가려져있지만, 올해 가장 크게 주목받은 장르는 60년대 ‘사이키델릭 소울’이다.
<Adore You>는 과거의 유산에서 오늘날 젊은이들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는 강렬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데 성공했다.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 히트곡을 만나보자! 57년 만에 동양인으로 빌보드 HOT 100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방시혁 대표는 “미국 프로듀서에게 받은 노래를 영어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K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연유를 추적해보자!
먼저 케이팝은 뭘까? 케이팝은 '송캠프' 시스템로 일컬어지는 해외 데모를 한국어 가창과 가사를 붙이는 방식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이 작법을 통해 케이팝은 내수용으로 기획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도 어필할 수 있는 '무국적성'을 얻었다. 동시에 1960-90년대에 겪은 권력형 검열에 의해 케이팝의 가사에서 현실이 거세됐다. 파격적인 군무와 선동적인 뮤직비디오에는 젊음이 상징하는 ‘저항’과 ‘혁명’의 인상을 풍기나 서사나 맥락은 거세한 형국이다.
‘DYNAMITE’은 마이클 잭슨을 오마주하며, K팝 특유의 탈정치적 태도와 무국적성을 띈다. 미국시장에서 이런 오피니언이 표백된 K팝이 안전한 음악으로 받아졌다. 랩의 하부구조에 가득한 빈민가 정서와 갱스터 문화의 대체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방탄소년단과 K팝 아이돌의 차이가 크다.
무엇이 다를까? 방탄소년단은 데뷔곡 'No More Dream'부터 자신들이 보고 느낀 바를 담았다. RM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활력을 불어 놓고자 하는 마음으로 완성한 곡이라고 밝혔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애티듀드)가 담겨있다. 방시혁의 인터뷰를 해석하자면, K팝의 장점을 취하되 K팝의 단점을 보완한 '제 3의 K팝'이라고 도출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팝의 영역으로 끌어드는 것이 유행이다. 28살 동갑내기의 의기투합해서 이것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한다. 실제 악기의 골격 위로 전자음이 마음껏 뛰어놀도록 허락한다. 뉴턴의 만유인력을 벗어난 음표들은 ‘청량감’을 얻는다.
호소력은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 발생하기 쉽다. 아이유는 소중한 사람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갔지만, 오렌지 섬으로 표현되는 기억 속에서라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가상의 인물과 여러 비유를 사용해서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이유는 <스물셋>, <팔레트>에 이어 스물여덟 살의 ‘무기력함’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2020년을 겪으며 우리가 느껴야했던 ‘무력함’을 위로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로 K팝은 해외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해왔다. 이 곡의 히트는 ‘챌린지’프로모션이 한반도에 안착했음을 알린 사건이다. 한 번에 들으면 중독성 강한 펀치라인, 누구나 따라 몸을 흔들고 싶은 보사노바 그루브, SNS를 통해 놀이문화로 유행시키는 틱톡 마케팅이 제대로 어우러져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지코 특유의 중의적인 가사는 음원순위 조작을 언뜻언뜻 떠올리게 한다. 사재기 음원에 대한 은유적인 비판이 듣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창모가 직접 밝힌 대로 칸예 웨스트의 <Last Registration>에서 착안했다. 칸예의 가르침대로 이 시대의 랩은 더 이상 리듬의 영역에서만 놀지 않는다. 창모는 반복되는 현악 루프와 통통 튀는 플로우의 랩 싱잉 퍼포먼스에서 코리안 드림을 노래한다. 서울에 올라와 성공을 이뤄낸 자신을 괴물(메테오)로 비유하며 오디션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정상에 우뚝 선다. 좋은 음악만 있다면, 굳이 방송국과 제도권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뜰 수 있는 SNS시대의 힘을 보여준다.
올해 최대 히트곡, 빌보드 핫 100 탑 5에서 33주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오프닝 드럼비트는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이 지배하던 1982년으로 데려간다. 이 시간여행은 로드 스튜어트의 <Young Turks(1981)>의 흥겨운 리듬을 소생시킨다. 그리고 퍼지 신스는 록웰의 <Somebody's Watching Me(1984)>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듯 맥스 마틴과 더 위켄드는 80년대 팝의 고속도로를 무한 질주한다.
#6 : 이브스 튜머(Yves Tumor), Kerosene! (Heaven To A Tortured Mind·2020)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록커 이브스 튜머는 문자대로 실험에 몰두한다. 아트록과 사이키델릭이 등장한 6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고 나서 록 음악이 전통, 관습, 권위에 도전하던 저항의식을 부활시킨다. 프린스와 데이비드 보위, 킹크림슨,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 (Oneohtrix Point Never)을 넘나들며 레트로에 몰두해있는 음악계의 엔트로피를 거꾸로 되돌린다. 그는 양자컴퓨팅, AI, 빅데이터가 대두되는 변혁에 어울릴 만큼 전혀 새로운 브랜드의 대중음악을 소개한다.
리나 사와야마는 "XS"를 이렇게 소개한다. "침몰하는 세상에서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노래"라고 말이다. 넵튠스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절로 연상되는 구성은 밀레니엄 팝송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뮤직비디오에서 TV 홈쇼핑과 택배서비스를 통해 불황에도 안정적인 여성의 소비성향을 꼬집는다. 동시에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자극하는 미디어를 비판한다.
일렉, R&B, 뉴메탈, 버블팝(아이돌 음악)의 특징을 잔뜩 부풀린 편곡과 프로듀싱은 이것이 뭔가 끔찍하게 잘못되었다는 암시이다. 그러므로 그 과잉의 감각마저 풍자적이다.
#4 : Christine And The Queens, People, I’ve Been Sad (La Vita Nuova EP·2020)
2020년 ‘대봉쇄(Great Lockdown)’로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나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로 명명되었다.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우울한 한해가 되었다.
얇게 가공된 신스음 위로 프랑스 가수 크리스틴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단어들로 보편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흡사 마이클 잭슨이 연상될 만큼 '코러스'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래서 그녀와 코러스가 마치 듀엣처럼 노래하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너도 그 느낌을 알잖아’라고 제4의 벽의 깨뜨리며 청자들과 소통한다. 그 솔직함과 유머, 예리한 통찰이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는 고독과 우울을 다함께 나누자고 권한다.
올해 가장 참신한 곡이었고, 그 어떤 랩송보다 창의적이고, 그 어떤 얼터너티브 팝보다 신선했다. 먼저 <타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곡성>, <부산행>의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장영규의 무한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고수처럼 2대의 베이스 기타로 둘러친 장단(리듬)의 울타리 아래 판소리의 가락(멜로디)을 싱잉랩처럼 활용하는 착상이 기발하다.
요즘 아프리카 음악(대표적으로 남아공 하우스)마저 지역 색을 잃고 미국 팝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국악 팝은 실로 놀랍다. 게다가 K팝 역시 빌보드 차트를 레퍼런스한 지도 어언 30년이 넘는다. 그 가운데 자생적인 '국악팝'이 확립되는 순간만큼 정말 반갑다.
이 노래는 단순히 야해서 뜬 게 아니다. 타임, 롤링스톤, 피치포크 등 유력지에서 ‘올해의 노래’로 선정한 데에는 이유가 분명하다. 미국의 바이블벨트는 이슬람문화권, 대한민국 못지않게 기독교 근본주의와 레디컬 페미니즘에 기반한 ‘성적 보수주의’가 강하다. <WAP>은 여성의 자기성결정권을 행사하겠다고 기독교 근본주의와 레디컬 페미니즘 앞에서 선언한다. <WAP>는 단지 우리가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 전 지구인이 가지는 가장 보편타당한 감정과 현상에 대해 찬미할 뿐이다.
가끔 대중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는 노래가 등장할 때가 있는데, 올해 <WAP>이 그렇다. 이 노래는 성(性)에 있어 개인의 선택에 맡겨놓으라며 '정치적 올바름(PC)'을 탈옥한다. 그러면서 여권신장의 영토를 확장한다.이상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에서 ‘에로스’은 여전히 어려운 주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노래의 메시지를 외면할 수 없다.
2010년대 중반부터 스트리밍으로 재편된 음악시장에서 팬덤의 크기, 인터넷 밈, 아티스트의 유명세에 의해 빌보드 차트가 결정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생산자 중심의 음악시장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의 음악시장이 도래한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의 지원 없이 SNS로 팬들과 소통하며 전 세계 A.R.M.Y.이 하나둘 모이게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기존 제도권의 도움 없이 팬덤을 형성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혁신적인 플랫폼은 이후 과거만 바라보고 있는 현대 팝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사전설명은 이쯤하고 노래에 집중하자! <Life Goes On>은 펜데믹의 여파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K팝을 상징하는 '칼군무' 등 퍼포먼스를 배제하고, 가창과 메시지에 집중했다. K팝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우리나라가 트레이닝 시스템이 발달된 만큼 아티스트로서 입지를 굳히려면 ‘기획된 공산품’이라는 선입관을 불식시켜야 한다. BTS는 이런 전략적 판단 하에 이곡을 골랐을 것 같다.
결국 ‘한국어 노래’가 빌보드 1위를 했다는 사실은 BTS는 빌보드를 움직일 만큼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가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적과 국경을 뛰어넘는 힐링의 메시지가 '한국어'라는 진입장벽을 뛰어넘었다는 뜻도 된다. 마침내 K팝이 세계인의 음악으로 도약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