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100 Spy & Secret Agent Films
'첩보 스릴러'라고도 하는 에스피오나지(Espionage) 장르는 가상의 첩보 활동을 소재로 현실적인 방식(존 르 카레가 대표적) 또는 판타지(제임스 본드 영화)를 바탕으로 다루는 영화 장르이다. 존 뷰찬, 존 르 카레, 이안 플레밍, 렌 데이튼 등의 첩보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었으며, 알프레드 히치콕, 캐롤 리드 등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고, 영국 비밀정보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다.
스파이 영화는 정부 요원의 첩보 활동과 적에게 발각될 위험성을 보여준다. 1940년대의 나치 첩보 스릴러부터 1960년대 제임스 본드 영화, 탈냉전 시기의 테러리즘을 다룬 정치스릴러 그리고 오늘날의 하이테크 블록버스터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관객에게 인기를 끌었다. 흥미진진한 일탈, 테크노 스릴러, 이국적인 배경이 결합된 첩보 영화는 액션과 SF 장르와 융합하여 관객이 응원할 영웅과 미워할 악당을 명확하게 묘사된다. 또한 정치 스릴러의 요소가 포함되기도 한다. 의외로 코미디 영화도 많이 제작되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스필버그의 아버지가 잠시 소련에서 근무했을 때를 들었던 경험을 통해 '이념에 희생당한 일반인'을 고전 영화스러운 터치로 품격 있게 그렸다.
제목 그대로 ‘기관에 의해 세뇌당한 일반인’ 이야기는 꽤 의미심장하다. 수많은 2차 대전과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내 생애 최고의 해>나 <귀향>과 달리 사회에의 적응에 실패했다. 리처드 콘돈은 당시 만연했던 퇴역병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와 매카시즘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국민들에게 심어줘서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행태를 묶어 소설로 썼다.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의 정체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더욱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주인공의 어머니 즉 누구나 적이 될 수 있다는 냉전 시대의 감각으로 영화를 채운다. 또한 진실을 파헤치는 베넷 대위는 필름 누아르에 자주 등장하는 ‘사립 탐정’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두 장르 간에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이 프랜차이즈는 약 30년 가까이 슈퍼스파이 시장의 주역이었으며, 이단 헌트는 스파이계의 유명 브랜드로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들은 계속해서 꾸준히 훌륭하다.
영화는 주인공 이단 헌트의 고뇌에 큰 비중을 뒀다. 특히 아내 줄리아와의 인연을 성공리에 매듭지었다. 워낙 부피가 커져서 구성이 약간 허술해졌지만, 6부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제작자인 톰 크루즈는 이번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특히 런던 루프탑 장면에서 발목이 부러졌음을 직감했지만,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 절뚝거리며 연기를 마쳤다. 그런 노고가 고스란히 영화에 담겨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이 숨 쉬고 있다. 일례로 그는 자유 낙하 장면을 찍기 위해 비행기에서 106번이나 뛰어내렸다고 한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촬영상
영국 MI6(비밀정보부) 출신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쓴 소설은 전후 연합국이 공동 통치하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필름 누아르를 '첩보영화'냐고 되묻지만, 캘러웨이 소령(트레버 하워드)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보 장교이다. 그가 하려는 일은 분명히 첩보활동이다. 그를 통해 패전국에서의 혼란과 생필품 부족, 만연한 범죄와 같은 불가항력 앞에서 개인이 느끼는 부당함을 깊이 탐구한다.
이것은 수많은 스파이들이 겪는 내적 갈등의 양태이다. 이 지점부터 정치 스릴러, 고딕 미스터리, 이중성, 살인, 수사, 감시체제, 기묘한 로맨스가 줄줄이 생산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쓰인 아이디어는 훗날 ‘에스피나지(Espionage) 장르’의 토대가 되었다.
1960년대는 알제리 독립을 승인한 샤를 드골 대통령에게 프랑스 군부와 우익집단의 불만이 팽배했던 시기로 여러 차례 암살 기도가 실제로 있었다. 로이터통신 파리주재 특파원으로 이같은 움직임에 흥미를 느낀 포사이스는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 1970년 단 35일 만에 소설은 완성했다. 이 소설은 청부살인업자의 기본적 이미지를 제시했다. 탐정의 대중적 이미지를 형성한 캐릭터가 ‘셜록 홈즈’와 ‘필립 말로’라면 청부살인업자 캐릭터의 원형이 바로 ‘자칼’이다.
영화는 프랑스의 극우파 테러단체 OAS(Organisation Armée Secrète)의 의뢰를 받아 샤를 드골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살인청부업자 자칼과 프랑스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첩보전을 그리고 있다. 액션보다 대업을 이루려는 자칼의 치밀한 준비 묘사에 치중한다. 제작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꼼꼼하게 조합한 다음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냉혹하게 전개된다. 특수 사제 라이플을 주문하고 여러 개의 가짜 여권을 만드는 등 철두철미한 자칼의 성품에서 (관객에게) 대통령 저격에 성공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쯤해서 작가는 프랑스경시청의 르베르 경감이라는 호적수를 붙인다. 「자칼」이라는 암호가 유일한 정보인 상태에서 그의 위치와 행적을 찾아내는 추격전이 솜에 땀을 쥐게 하고, 두 전문가끼리의 무언의 존경심이 가슴 찡한 감동을 준다.
폴란드 역시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가슴 아픈 역사를 써야했던 우리들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제목 ‘재와 다이아몬드’는 19세기 폴란드의 낭만주의 시인인 노르비드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 조국을 위해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될지라도 그 가치는 영원히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국 해방이라는 목표가 소멸된 순간 정치적 이념에 따라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되어 갈라선다. 진영의 논리가 절대선으로 등장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력해진다. 좌파와 우파 중에 누가 '재'가 되고, 누가 '다이아몬드'로 남았는지 답하지 않는다. 모순과 부조리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명쾌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폴란드는 과거사를 10여 년만에 청산했지만, 우리는 50년이 지난 뒤에야 해방 뒤 이념 갈등 속에 민족상잔의 운명에 놓인 사람들간의 비극을 다룬 <남부군(1990)>과 <태백산맥(1994)>을 제작할 수 있었다.
존 르 카레의 1963년 원작 소설은 출간되지 얼마 되지 않아 ‘첩보물에 있어서의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냉전의 산물인) 첩보물의 진정한 재미는 수수께끼 같은 음모와 사건의 해결에 달려있지 않다. 조직에서 쓸모가 다하면 버려지는 유통기한을 가진 소모품들을 다룰 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던 670년대 대다수 영미권 스파이 소설들이 ‘소련’이라는 공공의 적과의 대결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삼았다면 존 르 카레는 이데올로기라는 냉전시대의 유산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끼는 개인의 초상을 직시한다. 르 카레의 스파이는 맡은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늘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그들의 직업에 대해 고뇌하는 회색지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스파이 한 개인이 느끼는 윤리적 혼란과 고독감에서 누구나 공감할 진한 페이소스를 선사한다.
아카데미 편집상·음향효과상·음향편집상
완결은 언제나 어렵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만큼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나 본이 기억을 되찾을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폴 그린그래스가 승부를 건 것은 원론적인 영화 제작이다. 촬영과 편집, 연기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높이면 하나의 이야기로도 3부작을 훌륭하게 완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나의 이야기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본 슈프리머시>부터 <본 레거시>까지 일들은 겨우 며칠 사이에 벌어진다. 시리즈가 압축된 하나의 사건을 다룬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짧은 이야기를 길게 늘이는 마법의 정체는 무엇일까? 본은 비밀을 폭로하려고 하고 드레드 스톤은 이를 막으려 하며 이 갈등의 한가운데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본의 기억이 놓여있다.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전편의 사건이 끊임없이 소환된다. 불안전한 기억을 재생하는 틈에 본의 고뇌는 깊어지고, 정체성은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기독교적인 속죄 테마다.
본은 시리즈 내내 기억을 되찾을수록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자신을 희생하고 속죄하지 않는가? 제이슨 본은 일찍이 '수정주의 서부극'들이 행했던 자아성찰을 에스피오나지 장르에서 해낸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미국이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무리한 대외정책을 반성하고, 부패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조직의 생리를 비판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왜 2편이 본 시리즈 중에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을까? 그 해답은 소설 <본 슈프리머시>에 있다. 원작은 기억을 되찾은 본이 납치된 아내를 위해 현장에 복귀한다. 우리가 아는 영화는 2편을 기점으로 원작과 결별한다.
폴 그린그래스는 원작에서 제목만 가져와 전편의 기억상실을 계승한다. ‘첩보 다큐멘터리’라 불러야 할 만큼 생동감 넘치는 가히 혁명적인 액션 스타일로 본이 자신의 과거 흔적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꽉 채운다. 이렇듯 기억을 잃은 1편과 자아가 완성되는 2편을 이어주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을 소화해낸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신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기본적인 개요를 제외하면 로버트 러들럼의 원작을 철저히 배제했다.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는 과정이다. 스파이로서의 직업적 회의를 고찰하고, 정부 요원이 ‘선역’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의 회개, 즉 기독교적 원죄론을 통해 스파이 장르를 영리하게 전복한다.
이렇듯 본 시리즈는 ‘내부의 적’을 통해 007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장점을 얻은 반면 원작에 원래 있었던 (이언 플레밍의 영향이 다분히 느껴지는) 안정된 첩보활동이 사라졌다. <제이슨 본(2016)>에서 ‘3부작의 기억상실’이 아버지와의 사적인 비밀로 대체되고 CIA의 다른 프로그램 ‘블랙 브라이어’이 가동되는 순간 저절로 기시감이 든다. 만약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도 복귀할 수 있었다면, 언제든 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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