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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May 17. 2021

첩보영화 추천 TOP100 (7)

BEST 100 Spy & Secret Agent Films 

첩보물(Spy Films)이나 에스피오나지(Espionage) 장르의 태동과 이후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프리츠 랑과 알프레드 히치콕부터 제임스 본드, 존 르 카레, 스티븐 스필버그, 제이슨 본에 이르기까지 에스피오나지 장르의 양식(컨벤션)을 쌓아왔습니다. 그 발전상을 짚어보기 위해 첩보 영화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작품들을 이 목록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10 : 본 얼티메이텀 (Bourne Ultimatum·2007) 폴 그린그래스

아카데미 편집상·음향효과상·음향편집상

완결은 언제나 어렵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만큼 기대를 충족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누구나 본이 기억을 되찾을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래서 폴 그린그래스가 승부를 건 것은 원론적인 영화 제작이다. 촬영과 편집, 연기의 완성도를 극한으로 높이면 하나의 이야기로도 3부작을 훌륭하게 완성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나의 이야기라니 그게 말이 되느냐? 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본 슈프리머시>부터 <본 레거시>까지 일들은 겨우 며칠 사이에 벌어진다. 시리즈가 압축된 하나의 사건을 다룬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짧은 이야기를 길게 늘이는 마법의 정체는 무엇일까? 본은 비밀을 폭로하려고 하고 드레드 스톤은 이를 막으려 하며 이 갈등의 한가운데엔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본의 기억이 놓여있다.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전편의 사건이 끊임없이 소환된다. 불안전한 기억을 재생하는 틈에 본의 고뇌는 깊어지고, 정체성은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기독교적인 속죄 테마다.


본은 시리즈 내내 기억을 되찾을수록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자신을 희생하고 속죄하지 않는가? 제이슨 본은 일찍이 '수정주의 서부극'들이 행했던 자아성찰을 에스피오나지 장르에서 해낸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미국이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무리한 대외정책을 반성하고, 부패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찾으려는 조직의 생리를 비판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9 :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2004) 폴 그린그래스

왜 2편이 본 시리즈 중에서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을까? 그 해답은 소설 <본 슈프리머시>에 있다. 원작은 기억을 되찾은 본이 납치된 아내를 위해 현장에 복귀한다. 우리가 아는 영화는 2편을 기점으로 원작과 결별한다.


폴 그린그래스는 원작에서 제목만 가져와 전편의 기억상실을 계승한다. ‘첩보 다큐멘터리’라 불러야 할 만큼 생동감 넘치는 가히 혁명적인 액션 스타일로 본이 자신의 과거 흔적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꽉 채운다. 이렇듯 기억을 잃은 1편과 자아가 완성되는 2편을 이어주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을 소화해낸다.




#8 : 본 아이덴티티 (The Bourne Identity·2002) 더그 라이먼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자신의 신원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기본적인 개요를 제외하면 로버트 러들럼의 원작을 철저히 배제했다.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는 과정이다. 스파이로서의 직업적 회의를 고찰하고, 정부 요원이 ‘선역’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 이 영화는 한 인간의 회개, 즉 기독교적 원죄론을 통해 스파이 장르를 영리하게 전복한다.


이렇듯 본 시리즈는 ‘내부의 적’을 통해 007 시리즈와 차별화되는 장점을 얻은 반면 원작에 원래 있었던 (이언 플레밍의 영향이 다분히 느껴지는) 안정된 첩보활동이 사라졌다. <제이슨 본(2016)>에서 ‘3부작의 기억상실’이 아버지와의 사적인 비밀로 대체되고 CIA의 다른 프로그램 ‘블랙 브라이어’이 가동되는 순간 저절로 기시감이 든다. 만약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도 복귀할 수 있었다면, 언제든 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에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은 셈이다.




#7 : 007과 여왕 (On Her Majesty's Secret Service·1969) 피터 R. 헌트

어쩌면 조지 레이전비가 제작진과 불화를 겪지 않았다면, <007과 여왕>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본드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위치를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제 설명은 추후에 올릴 예정이니 생략하고 다른 분의 의견을 들어보자!


영화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최고의 본드 영화이며, 순수한 오락성 외에도 반복해서 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영화라고 극찬했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동생 조너선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본드 영화로 꼽았다. 놀란은 <인셉션(2010)>를 예로 들면서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본받으려고 했던 것은 액션과 규모, 낭만주의, 비극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며 극찬했다.




#6 : 공동경비구역 JSA (Joint Security Area·2000) 박찬욱

냉전이 여전히 진행 중인 한반도만큼 정치 스릴러를 제작하기 좋은 국가도 없다. 이 영화는 남북 장병들 간의 이뤄질 수 없는 우정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표출하고 있다.


 


#5 :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2013) 캐서린 비글로우

아카데미 음향편집상

<제로 다크 서티>는 화려한 할리우드 첩보 스릴러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말은 즉슨 가장 현실적인 첩보물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NSA/CIA 요원들은 수집해온 정보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분석·평가·자료 작성에 매진한다. 이 과중하고 반복되는 일과와 피곤, 스트레스가 첩보원들의 생생한 일상이다.




#4 :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2006)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공산권 국가들은 ‘일당독재‘와 ’ 계획경제‘로 내부로부터 무너져갔다. <공산당 선언>을 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재를 옹호하지 않았고, 계획경제를 긍정한 적도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부르주아 정권을 타도할 목적이었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서구의 공산당들 이를테면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제1야당에 오른 적이 있었고, 인도와 일본에서도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3 : 오명 (Notorious·1946) 알프레드 히치콕

<오명>은 겉으로는 명백한 첩보물이나 본질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진지한 로맨스 영화다. 첩보물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성의 여부’를 가져와서 멜로 영화에서 제일 알고 싶은 상대방의 ‘진심’을 판별한다. 스파이 소재를 통해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있게 확장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2 : 그림자 군단 (L'Armée Des Ombres·1969) 장 피에르 멜빌

2차 대전 당시 런던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장 피에르 멜빌은 ‘자유 프랑스군’을 거창한 영웅으로 대접하지 않는다. 그들은 본인의 안위와 소중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매일매일 불안에 떨면서 괴로워하는 한 평범한 인간이라고 나직이 고해한다.




#1 :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1959) 알프레드 히치콕

이 걸작은 모든 스파이 영화들이 모방하고 싶어 하는 플라톤적 이상에 도달했다. 거장 히치콕은 오인된 남자, 맥거핀, 클리프행어로 관객의 눈과 귀와 마음을 빼앗는다. 그렇게 이 영화의 촬영 및 아이디어는 전설이 되었다. 액션 스릴러는 볼거리를 위해 이야기 짜임새가 헐겁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주인공이 미국의 여러 도시를 누비는 동안 정신적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종합적으로 현대 할리우드 액션 스릴러의 플롯이 갖춰야 할 요소가 총망라되어 있어서 영화학과에서 반드시 가르친다.


이 작품은 007 시리즈에 많은 영향을 줬는데 능글맞은 주인공, 임무 수행 중 여성과의 관계, 키스로 마무리하는 결말, 도시들을 순례하는 로드무비 같은 형식, 현실과 적당히 거리를 둔 점 등이 유사하다. 특히 해외 여러 곳을 탐방하는 007 시리즈식 다채로운 로케이션은 오늘날 블록버스터라면 꼭 등장하지 않는가? 그렇게 지구 행성을 안방처럼 오가며 신출귀몰한 첩보원을 가리켜 존 르 카레는 ‘지정학적 연금술사’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런지 007과 히치콕의 관계가 흥미롭다. 히치콕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열성적인 팬으로, 스티븐 스필버그나 쿠엔틴 타란티노보다 앞서서 007 시리즈를 연출할 뻔했다. 1950년대 초반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1959년 이언 플레밍은 전보로 <007 썬더볼>의 연출을 히치콕에게 의뢰했다. 당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막 끝낸 히치콕은 또다시 스파이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탐탐치 않았다. 그렇게 히치콕은 <싸이코>를 준비하게 되며 논의가 종결된다. 히치콕은 <007 위기일발(1963)>을 보고 나서 <북북서>의 비행기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헬리콥터 장면으로 오마주한 것을 불쾌하게 여겼다. 이후에 발표된 <암호명 토파즈(1969)>는 ‘히치콕이 만든 제임스 본드 영화’로 불릴 만큼 007을 의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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