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Films : 100위부터-
미리 알려드리지만, 일제강점기 작품들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선정 작업이 어려웠지만, 저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컸습니다.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시대별로, 감독별로, 장르별로 꼼꼼히 헤아려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영화 TOP 100>은 준비하면서 과거의 고전을 만나보고 동시대의 영화를 즐기며, 미래의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즐거운 시간여행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가볍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신상옥의 <내시(1968)>이후로 제대로 나온 쿼어영화, 여중고생들 사이의 미묘한 동성애적 감수성을 남성 감독들이 감각적이고 섬세하게 다뤘다.
<바람 불어 좋은 날>과 더불어 1980년 이후 한국영화사를 결정짓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검열과 투자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영화문법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 자체가 이미 저항의 몸부림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도입한 이장호는 그렇게 '방화(邦畫)'와 명확하게 선을 긋은 덕분에 오늘날 충무로의 풍토가 다져질 수 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 시절, 충무로에선 문예영화가 주도했다. 주효섭의 단편을 각색한 영화는 ‘옥희’(전영선)라는 소녀의 눈으로 보이는 ‘어머니’(최은희)와 사랑방으로 하숙을 오게 된 ‘아저씨’(김진규)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두 사람이 썸을 탈 때마다 옥희 엄마의 들끓는 연정이 쇼팽의 ‘야상곡’과 ‘즉흥환상곡’의 격렬한 연주로 표현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1960년대 ‘최루성’ 멜로드라마가 유행했지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여타 아류작과 비교 불가능한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성취를 이뤘다.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떡잎이 달랐다. 군사독재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려 하층민의 저항정신을 은밀하고도 코믹하게 표현했다. 암울했던 제5공화국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논평을 제공하는 동시에 연대와 공감을 희망적으로 설파한다.
그간 충무로가 등한시되던 'K-호러'를 꽤 진지하게 접근한 최초의 사례다.
김지운 감독은 장르 도장 깨기에 나선 사람처럼 보인다. 국내에 거의 멸종되다시피한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키는 '놈놈놈' 프로젝트는 액션과 스케일에서는 만족스럽지만, 극본과 짜임새 측면에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놈놈>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경쟁력을 갖춘 '서부극'이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감시와 검열로 인해 장르영화 발전에 더딘 국내 환경에서 이런 시도는 <부산행(좀비)>, <신과 함께(판타지)>, <승리호(스페이스 오페라)>, <곡성(오컬트)>로 계승되어 꾸준히 발전 중이다.
웰메이드 액션스릴러를 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교실 내의 권력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비겁한 어른들을 닮아가거나 폭력에 호소한다.
1987년 6월항쟁과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충무로에서도 등장한다. 그해 흥행 1위에 오른 《남부군》이 그간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어 온 한국 사회에 큰 충격에 주었다. 안성기, 최민수, 이혜영, 최진실, 임창정, 트위스트 김의 스타 배우들과 당시로는 파격적인 14억원의 예산, 제작 기간 3년, 엑스트라 3만 명, 항공기까지 지원받아 제작된 블록버스터로 비평과 상업성 두 마리 토끼를 사로잡았다. 빨치산을 버린 김일성과 북한의 처사 때문에 ‘반북’ 성향의 영화이지만, 공산주의자를 정면으로 응시한 용기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장면은 국군과 빨치산 부대가 대치한 상황에서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전투 한 가운데에 뛰어든 동네 아이를 위해 모두가 사격을 중지하고 노래를 부르는 대목이다. 한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민요를 합창하는 대목에 복잡한 느낌을 준다. 시인인 김영(최민수)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게 차라리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대사는 인간적인 두려움마저 죄악처럼 여겨야 하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총제작비 6500만 원으로 만든 단편들을 완결하며, 전체적으로 유기성을 갖춘 장편을 완성해냈다.
강제규 감독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한국 영화의 규모와 기술 수준을 갱신해나갔다. <은행나무 침대(1996)>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디지털 특수효과의 시발점이 되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충무로가 그간 등한시하던 스펙터클과 스케일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베니스 영화제 볼피컵(여우주연상)
국내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만들어진 양반과 ‘쌍것’ 사이의 넘나들 수 없는 좌절된 신데렐라 스토리 중 하나다.
엄석대가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대항하기를 포기해버렸던 ‘이름 모를 녀석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대한민국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유지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안개》는 ‘새로운 영상 표현’의 혁명을 이루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김승옥 작가가 본인이 쓴 소설 〈무진기행〉을 직접 각색해서 원작에서의 ‘언어적’ 시간의 이행은 주인공의 공간을 따라 전개되는 플래시백을 통해 ‘오감적’ 체험의 이행으로 변환된다. 고향 무진으로 내려가는 제약회사의 상무인 기준(신성일)은 새로 부임했다는 음악선생 ‘하인숙’(윤정희)를 만나지만, 특별한 사건도 없다. ‘명산품’이라고는 안개뿐이라는 무진에서 도시인의 위선과 모순, 속물근성, 자기혐오 등 복잡한 감정을 흔적 없이 자욱하게 묻힌다. 감독은 인간의 진실이 표백되는 과정을 안개처럼 모호하게 지워나가는 수채화 화법을 쓰고 있다.
심각한 상황과 무거운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함과 유머를 잃지 않아 놀라웠다.
임권택의 <축제>와 더불어 전통 장례의식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듣을만큼 충실히 기록하면서도 해학을 섞어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기괴한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컬트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전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문어체로 읊어대는 인물 등, 상식을 뛰어넘는 전개와 상상력으로 영화 내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모티프가 되는 두 가지 상징, 해골과 나비 중에서 삶의 의지를 상징하는 해골과 죽음을 상징하는 나비를 내세워 삶이 얼마나 죽음과 밀접해 있는가를 보여준다. 김기영은 이 작품에 대해 “나는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내 취미대로 영화를 가지고 놀았다.”라고 회고했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2020년대 한국 영화의 3대 화두인 '실화에 근거한 팩션', '시대극', '분단 소재'에 모두 해당한다. 왜냐하면 <피아골>은 '근현대사의 질곡과 치부를 드러낸 최초의 논쟁작'이기 때문이다. <피아골>은 공산주의자들 내면의 인간성의 모순과 본능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빨치산을 괴물이나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고 '평범한 인간'으로 그렸다 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 금지 처분이 내려진다. 이렇듯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심도 있게 그려내기까지는 <남부군 (1990)>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제작일화를 소개하자면, 6·25직후 공비 토벌작전이 막 완료된 시점에 지리산에서 크랭크인되어 실감나게 생생하다. 촬영 당시 마을 주민이 진짜 공비인줄 착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극본도 소탕된 공비의 일지와 기록에 근거해서 탄탄하다.
베니스 영화제 특별 감독상,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신인상)
전과 3범과 중증 지체장애인의 '평범한 연애담'은 관객들에게 오히려 낯설고 불편했다. 다 보고 나면 세상에 소외된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의 고정관념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전세계 어디든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겪을 보편적인 성장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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