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Films : 100위부터-
미리 알려드리지만, 일제강점기 작품들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선정 작업이 어려웠지만, 저 스스로에게는 의미가 컸습니다. 한국영화의 나이테를 시대별로, 감독별로, 장르별로 꼼꼼히 헤아려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영화 TOP 100>은 준비하면서 과거의 고전을 만나보고 동시대의 영화를 즐기며, 미래의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즐거운 시간여행이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가볍게 즐겨주셨으면 합니다.
코미디에서 제일 중요한 '타이밍'과 '보편적인 정서'를 정확히 판독한다.
당시로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인 ‘깡패 같은 형사’와 ‘겉보기에 멀쩡한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이후 한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배창호 감독은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떡잎이 달랐다. 군사독재의 감시와 검열을 피해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려 저항정신을 은밀하고도 코믹하게 표현했다. 암울했던 제5공화국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논평을 제공한다.
헤겔은 사랑에 관해 ‘자아가 개체로서의 자기를 상실하는 동시에 자기를 좀 더 넓은 전체로서의 부분으로서 발견하거나 획득하는 역설적인 과정’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과 더불어 1980년 이후 한국영화사를 결정짓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검열과 투자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영화문법을 깡그리 무시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 자체가 이미 저항의 몸부림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도입한 이장호는 그렇게 '방화(邦畫)'와 명확하게 선을 긋은 덕분에 오늘날 충무로의 풍토가 다져질 수 있었다.
강제규 감독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한국 영화의 규모와 기술 수준을 갱신해나갔다. <은행나무 침대(1996)>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디지털 특수효과의 시발점이 되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충무로가 그간 등한시하던 스펙터클과 스케일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임권택의 <축제>와 더불어 전통 장례의식에 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듣을만큼 충실히 기록하면서도 해학을 섞어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김지운 감독은 장르 도장 깨기에 나선 사람처럼 보인다. 국내에 거의 멸종되다시피한 '만주 웨스턴'을 부활시키는 '놈놈놈' 프로젝트는 액션과 스케일에서는 만족스럽지만, 극본과 짜임새 측면에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놈놈>은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경쟁력을 갖춘 '서부극'이라는 점에서 귀중하다. 감시와 검열로 인해 장르영화 발전에 더딘 국내 환경에서 이런 시도는 <부산행(좀비)>, <신과 함께(판타지)>, <승리호(스페이스 오페라)>, <곡성(오컬트)>로 계승되어 꾸준히 발전 중이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2020년대 한국 영화의 3대 화두인 '실화에 근거한 팩션', '시대극', '분단 소재'에 모두 해당한다. 왜냐하면 <피아골>은 '근현대사의 질곡과 치부를 드러낸 최초의 논쟁작'이기 때문이다. <피아골>은 공산주의자들 내면의 인간성의 모순과 본능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빨치산을 괴물이나 악마처럼 묘사하지 않고 '평범한 인간'으로 그렸다 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상영 금지 처분이 내려진다. 이렇듯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심도 있게 그려내기까지는 <남부군 (1990)>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다.
제작일화를 소개하자면, 6·25직후 공비 토벌작전이 막 완료된 시점에 지리산에서 크랭크인되어 실감나게 생생하다. 촬영 당시 마을 주민이 진짜 공비인줄 착각했다는 일화가 있다. 극본도 소탕된 공비의 일지와 기록에 근거해서 탄탄하다.
고용과 주거의 불안에 젊은이들이 영끌로 내몰리는 현실은 40여 년 전이랑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개발이 한창인 서울 강남의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이 제일 취약한 계층인 점은 변함없다.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을 한국에 도입한 이장호는 아트 하우스 성향의〈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로 또 한 번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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