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영제(影帝), 강대위의 뒤를 이어 ‘영화황제’로 불리는 남배우다. 양조위는 아버지가 도박중독으로 양조위가 8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그와 여동생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중퇴한 후 삼촌 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홀어머니 아래서 말썽부리지 않고 아주 품행이 단정한 효자였다고 한다.
배우 데뷔는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18살 때 배우지망생인 한 친구를 만나게 되고 TVB의 오디션에 같이 응시한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는 떨어지고 양조위만 붙었다. 다행히 그 친구도 1년 뒤인 1982년에 합격하였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주성치다. 여담으로 똑같이 중학교 중퇴에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에 붙은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이름은 주윤발이다. <신찰사형>, <협객행>, <녹정기>, <의천도룡기> 등의 드라마에서 활약하다가 매염방과 함께한 <청춘차관>으로 영화계에 입문, 홍콩 최고의 배우로 발돋움 하였다. 홍콩 4대 천왕과 비슷한 시기에 청춘스타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중경삼림>이 글로벌한 인기를 얻으며 이름이 알려졌고, <해피투게더>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음한다. 최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합류함으로써 헐리우드에 진출했다.
사생활 역시 모범적이다. 주윤발과 함께 팬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유가령과의 로맨스는 유명하다. 두 사람은 1989년부터 무려 19년 동안 연애했으며, 2008년에 결혼했다.
황혼기에 접어든 홍콩 느와르의 마지막 명작 중 하나로, 이 영화는 주연급 영화배우로서의 양조위의 위치를 확고히 해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홍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베트남으로 도피한 건달두목 아B역을 맡았다. 코미디 연기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 작품부터 진지한 연기에도 재능이 있음을 증명한다.
영화는 <디어 헌터>의 명장면을 가져오는 듯 오우삼의 자전적인 야심을 드러내고 자신이 개창한 ‘홍콩느와르’의 영웅을 변주했다. 이렇듯 오우삼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 영화로 1992년 <첩혈속집>의 잠복형사 강랑(이 역할은 무간도의 진영인 역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된다.)과 2008년 <적벽대전 2부작>의 주인공 주유 역으로 출연하게 된다.
베를린 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2002년 장예모 감독의 <영웅(영화)>에 출연하여 최초로 대륙영화에 데뷔했다. 양조위는 모든 대사를 표준중국어로 소화했다. 서사구조상으로 <영웅>은 <라쇼몽>이나 <시민 케인>적인 장치를 취했다. 조나라 출신의 장공(견자단), 잔검(양조위), 비설(장만옥)이라는 절대 고수들이 어떻게 무명(이연걸)에게 연달아 패하게 되었는가라는 놓고 무명과 영정이 서로의 주장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조의 일반적인 쓰임새가 진위여부를 의심하면서 복수의 관점과 해석을 통해 한 인물이나 사건의 다면성을 드러내려는 데 있다면 <영웅>의 경우는 가정이 참이냐 거짓이냐가 명백하게 해명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단선적인 내러티브로 수렴된다. 그러나 시청각인 웅장함이 이런 약점을 보완하고 광학적인 즐거움이 만리장성을 뛰어넘는다.
양조위는 서예가이자 무술고수 잔검 역을 맡았다. 그는 연인 ‘비설’의 아버지를 죽인 영정을 암살할 계획을 짜지만, 여생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고 싶은 딜레마에 처해있다. 게다가 비설과의 로맨스는 그들의 상반된 국가관으로 인해 방해받고 있다. 그는 이연걸, 진도명, 견자단, 장만옥, 장쯔이의 화려한 퍼포먼스 중에서 가장 절제되었지만, 제일 복잡한 성격을 소화해냈다.
양조위는 2018년에 대박난 <몬스터 헌트 2>에서 알 수 있듯이 코미디 연기로 정평이 자자하다. 그의 초기작 특기인 코미디 연기는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은 양조위는 그간의 점잖은 태도를 잠시 내려놓고 그야말로 제대로 망가진다.
이 영화의 제작기부터 범상치 않다. 1992년부터 진행해온 <동서서독>이 왕가위 특유의 계획성 없는 제작 방식 때문에 계속 중단되곤 했다. 이에 유진위 감독은, 동사서독 촬영 때문에 모인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사막 벌판에서 허망하게 촬영을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다 1993년 설날 특수를 노려서 날림으로 제작한다.
주성치 영화를 연출해온 유진위 감독은 장국영, 임청하, 왕조현, 양가휘, 장만옥, 장학우 등 초호화 진용을 들었다 놨다하면서 막 나간다. 훗날 칸 영화제 벌칸상을 받게 되는 미술감독 장숙평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의 어린이 연극 수준의 의상과 미술을 비롯하여, 모든 배우들이 대사를 일부러 조잡한 후시녹음으로 한 번 더 더빙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만화 원작이라서 그런지 영화가 30여분이 지날 때까지 참 유치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주인공 유문은 빈민가의 슈바이처로 대학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골수암으로 잃은 상처를 갖고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센티멘털리즘의 화신들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양조위가 많은 역할과 마찬가지로 이 캐릭터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다층적이며 입체적이다. 겉보기에는 낙천적이고 태평해보이지만, 관료적 의료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있다. 양조위의 소외계층을 깊이 배려하는 태도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감상적이라는 행위들 속에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캐릭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의 처지에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자면, 이지의 감독은 이 영화에서 상투성을 극대화하며 홍콩영화 저변에 흐르는 낭만주의를 통렬히 조롱한다. 만화적인 과장, 잔잔한 드라마, 능청스러운 코미디, 존 콜트레인, 엘라 피츠제랄드의 재즈 명곡을 활용한 뮤지컬 등 이질적인 장르가 충돌하는 혼돈과 자유분방함의 정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요구된다. 이런 패러디 코미디를 감지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동사서독>의 지지부진한 촬영과 편집에 지친 왕가위 감독이 휴식차 홍콩으로 돌아와 심심풀이 삼아 만들었는데, 그게 글쎄 글로벌한 인기를 얻게 된다. 홍콩 경찰 2명이 우울증과 싸우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느슨하게 묶은 <중경삼림>으로 양조위는 국내에서 확고한 팬덤을 구축한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에 포착된) 홍콩반환을 앞둔 고통과 혼란을 포착하면서도 홍콩영화의 활기를 잃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경찰관 역으로 나오는데, 실연의 상처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을 짝사랑하는 패스트푸드집 점원(왕페이)에게는 사무적인 태도로 차갑게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에서 갭 모에를 여기저기에 마구마구 뿌린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중국계 미국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이 1997년 실화를 바탕으로 쓴 동명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은 정핑루(鄭平如·1918~1940)라는 여성과 딩모춘(丁默邨·1901~1947)이라는 남성이다. 딩모춘은 2차 대전당시 일본군이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한 뒤 세운 친일 괴뢰 정부 왕징웨이 정권의 고위층이었으며, 정핑루는 중국 국민당 조사통계국으로부터 딩모춘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딩모춘의 비서로 접근한 첩자였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제목인 ‘색’(色)과 ‘계’(戒)는 상반되지만 인간사를 관통하는 두 개의 욕망을 의미한다. ‘색’은 성욕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감정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 ‘계’는 바로 감정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 즉 이성적 판단을 의미한다.
양조위는 냉정과 열정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친일파인 이모청은 민족을 배신하여 많은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고독하다. 그런 그가 편안하게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 수 있는 곳은 막부인(탕웨이)과 밀실에 단둘이 있을 때뿐이다. 내면이 황폐하기 때문에 왕치아즈가 연기하는 막부인에게 빠져든다. 그의 ‘계’는 ‘색’을 갈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의 연기인생에서 처음 해보는 노출신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암살을 시종일관 경계하며 신중하고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칼 날 위에서 춤을 추는 캐릭터의 느낌이 확연히 느껴진다. 이것은 1998년에 <암화>로, 2006년에 <상성>에서 본인의 타고난 선한 마스크와 반대되는 연기 변신을 꾸준히 해온 노력의 산물이다.
결말에서 막부인이 사라진 방에 홀로 남은 이모청은 밖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인다. 암살음모를 알게 된 순간 신속하게 대처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하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았던 상대의 정체를 알고 망연자실한다. 암살계획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사라지기 전에 안간힘을 쓰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다.
양조위가 출연한 많은 영화들이 지금은 고전이라 할 수 있지만, <무간도>야 말로 문화적 시금석이라 부를만하다. 홍콩의 범죄 영화에 절실히 필요한 신선함을 불러일으켰고, 마틴 스콜세지가 리메이크 영화를 연출할 정도로 그 위대함이 컸다. 위장수사중인 진영인은 경찰에 잠입한 범죄조직원을 추적하는 중이다. 이후 숨바꼭질 경쟁이 치열해진다. 피를 흘리고, 불행은 쌓이고, 과거가 현재를 옥죈다. 제목은 지옥을 언급하고, 오프닝은 지옥을 보여주며, 영화는 지옥의 경험을 담아낸다.
진영인은 궁극적으로 비극적인 캐릭터이며 양조위가 전달하는 본능적인 연기는 관객들에게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풍긴다. 양조위는 조직생활한지 약 10년이 지난 경찰을 연기하면서 이중 정체성으로 인한 고통을 내재화한다. 이것은 중국에 반환되어 당시 홍콩인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다. 불행히도 그 불길한 예측은 적중했다. 2003년 국가보안법 철회 시위, 2014년의 우산 시위,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양조위는 이미 1992년 <첩혈속집>에서도 조직에 잠입한 경찰 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첩협솔직>에서 양조위가 모시던 삼합회 보스 역을 맡을 배우가 다름아인 무간도에서 황지성 국장을 맡은 황추생이다.
칸 영화제 감독상
<해피 투게더>는 성소수자(LGBTQ)+ 영화에 대한 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며, 양조위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배우로서 국제적 명성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2046>으로 칸 영화제에 3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2000년에만 화양연화로 칸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영화의 고독감은 ‘아르헨티나’라는 낯선 배경이 큰 힘을 발휘한다. 홍콩반환에 따른 긴박힌 사회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고향에 대한 불안은 로맨스 못지않게 애절하다. 그리고 섹스신에 관대한 홍콩에서도 동성애 장면은 호의적이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서도 1997년에 개봉 불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양조위는 장국영과 동성베드신을 찍을 때 동성애연기가 서툴러서 많은 커트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휘역의 양조위는 보영(장국영)와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겪는 고뇌를 너무나 진실되게 다가와 어떤 순간에도 스크린을 응시하도록 만든다. 보영의 변덕스러운 짜증에 대비되는 아휘의 조용한 고통을 눈빛과 자세, 몸짓만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택시 뒷좌석에서 담배 한 대를 나눠 피우다 보영이 아휘의 어깨에 천천히 머리를 기대는 장면이나, 손을 다쳐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영에게 아휘가 수프를 떠먹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달콤한 슬픔은 관계를 산산조각 내는 것이 보영 자신의 터무니없는 소유욕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돕는다. 이렇듯 양조위는 조용한 말투와 깊은 눈빛으로 세상에 슬픔을 전염시킨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양조위는 주인공인 벙어리 사진사 역으로 열연해 대사 한마디 없지만, 신인답지 않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그의 연기는 단숨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비정성시>는 대만의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2·28사건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서 우리나라의 <1987>, <택시운전사>, <남산의 부장들>, 중화권의 <고령가살인사건>, <패왕별희>, <인생>등에 깊은 영향을 준 걸작이다. 또 한국 독립영화계에 불어 닥친 대만 뉴웨이브를 글로벌하게 알린 작품이라 더 의미 깊다. 영화는 중화민국의 국민당 정부가 중국 본토로부터 건너와 본성인과 외성인의 뿌리 깊은 차별을 그리고 있다. 1947년 2월27일에 일어난 2만 명 이상의 본성인(토착민)이 학살당한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비정성시>는 이같은 피비린내나는 대만 역사와 그 그늘에 묻힌 슬픈 도시, 처연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아록의 네 아들이 영화의 초점이다. 양조위는 청각장애인이자 좌파정서에 호감을 가진 사진작가이자 넷째아들 임문청 역을 맡았다. 당시에 그가 민남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서 벙어리로 설정했다고 한다. 허우샤우시엔의 관조적인 카메라는 그 어느 곳을 잡던 늘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각도로 고정된 지점에서 동일한 공간을 잡아낸다. 술집, 골목, 병원의 복도, 문웅의 거실, 귀머거리 문청의 방을 잡을 때도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각도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가족의 출산, 장례식, 결혼식이 연달아 펼쳐진다. 이것이 역사의 순환성이 가족의 순환성과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치 거대한 동심원을 그리며, 인간은 생애주기를 돌고 도는 숙명을 다루는 것 같다.
네 아들 중 가장 무난한 삶을 사는 주인공 문청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로지 필답으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왜 그럴까? 부패한 정권에 탄압받고 착취당하지만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처지가 딱 억눌려 살아온 대만 민중의 입장과 일치한다. 그는 민중을 상징하는 캐릭터지만 무성영화의 장점을 취한 것이다. 필답은 자막으로 처리되어 관객으로 하여금 그 내용을 음미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은 역사적 비극을 마주볼 용기를 얻고 극장을 나설 수 있다.
살수호접몽 (殺手蝴蝶夢·1988)
첩혈속집 (辣手神探·1992)
동사서독 (東邪西毒·1995)
씨클로 (Cyclo·1996)
해상화 (海上花·1998)
상성: 상처받은 도시 (傷城·2007)
적벽대전 2부작 (Red Cliff, 2008-9)
엽문, 일대종사 (一代宗师·2013)
웬우,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2021)
칸 영화제 남우주연·최우수예술성취상
양조위는 <화양연화>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초의 홍콩배우가 되었다. 왕가위의 초기작<아비정전>으로 인연을 맺어 약 30여 년간 그의 페르소나로 지내온 양조위는 <화양연화>와 <2046>에서 홍콩 지역 신문사 기자 주모운 역을 맡았다.
두 작품은 느슨한 연작으로 이어져있지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2046>은 신기할 만큼 <화양연화>를 닮지 않았다. <화양연화>가 은밀하고 함축적인 ‘시’였다면, <2046>은 과시적이고 비장한 ‘오페라’다. 전자가 도덕적 책임감과 감정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두 남녀의 아이러니를 느림과 절제된 미학으로 전달했다면, 후자는 과거의 여인과 그 시절을 다시 추억하면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자의 초상을 공들여 보여준다.
양조위가 해석한 배역도 차이를 보인다. <화양연화>에서 도덕주의자이자 순정파로 상대방을 배려하여 속으로 삭힌다. 그런데 <2046>에서는 보다 우디 앨런적인 캐릭터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주모진은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그 사랑이 실현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화양연화>에는 도덕성과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2046>에서는 그는 과거의 기억을 상징하는 2046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진정으로 그걸 원하는지,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왕가위가 자라온 홍콩에 보내는 러브레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자신을 향한 애원이자 탄식이다. 그의 불길한 예감대로 원래 홍콩이 중국에 복속되는 2046년보다 중국공산당은 훨씬 빨리 움직였다는 점이 안타깝다.
▼ 순위선정에....본인이 직접 대표작을 소개한 영상을 참고했다.
00:00 - Intro
00:21 - 'Chungking Express'(중경삼림)
01:45 - 'Happy Together'(해피 투게더)
03:15 - 'Hard Boiled'(첩혈속집)
05:10 - 'In the Mood for Love'(화양연화)
06:06 - '2046'(2046)
07:15 - 'Shang-Chi and the Legend of the Ten Rings'(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08:50 - 'Hero'(영웅)
09:23 - 'The Grandmaster'(일대종사)
11:33 - 'Lust, Caution'(색,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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