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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Sep 29. 2021

아임 유어 맨, 알고리즘의 함정

《ICH BIN DEIN MENSCH (2021)》

근미래의 베를린, 인간 배우자를 대체할 휴머노이드 로봇이 상용화 단계를 앞두고 테스트에 들어간다. 싱글인 사회 각계의 엘리트를 섭외해 휴머노이드와 3주간 동거한 뒤 감정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페르가몬 박물관 소속의 고고학자 알마(마렌 에거트)는 연구비 마련을 위해 마지못해 실험에 참가한다.




1."난 당신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었어요."

로봇 톰(댄 스티븐스)은 사전 조사를 통해 알마의 이상형대로 커스텀 디자인된 상태지만,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완벽한 파트너에 가까워지는 성장형 휴머노이드 로봇 '톰'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떠올려본 로망을 담고 있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알마는 3주만 버티자며 로봇 톰을 무시한다. 그러나 톰은 “나는 당신의 행복을 위해 설계되었으므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라며 “하지만 제 알고리즘은 거듭된 커뮤니케이션 실패를 통해 점점 개선될 겁니다.”라며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득한다.


(알마의 바람과 반대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알마의 단점, 약점이 차곡차곡 톰에게 노출된다. 휴머노이드가 알마를 분석하는 '기계학습(머신러닝)'이 이뤄진다. 이 기술은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학습하면, 인간이 파악하지 못한 변수 간 연관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2.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알마는 점점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워지는 휴머노이드 ‘톰’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관객에게 로봇을 사랑하게 되는 인식적 경계와 그에 따른 윤리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인식적 경계란 불교적인 관점이나 '건축'을 예로 들면 이해하면 쉽다. 공간은 눈에 보이는 실존적인 부분으로 존재하지만, (시간, 공간, 사용자의 형태에 따라 결정된) 무형적인 상호연결성으로도 이어져있다. 어렵게 써놨지만, 풀이하자면, 우리는 물체와 공간 같은 물리적인 성질조차 이용자나 사용자가 인식하는 범위만큼 새로운 경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집은 우리가 느끼는 범위 이상이라는 뜻이다. 실체가 '있'는 로봇을 다뤘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인공지능을 다룬 <그녀(2013)>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그럼,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왜 중요한가? 인간은 가치 위계에 근거한 우열 판단을 따르므로 인식적인 경계설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호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가치관을 설정하며 목표를 향해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일을 가능케 한다.





3. 사랑과 알고리즘의 근본적 차이는?

영화는 드라메디적(코미디 드라마적) 화법을 구사하며 주인공 알마가 갖고 있는 고독, 상실, 허영, 불만, 아픔 등을 서서히 공개한다. 완벽에 가까워지는 로봇에 비해 점점 볼품없는 인간이 되어간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우리는 톰이 로봇인지 인간인지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즉, 인식에 경계를 설정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간다. 우리는 매번 매사마다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유보함으로써 안정과 만족을 유지해나간다. 그걸 ‘버릇’, ‘습관’이나 ‘성격’이라고 부른다.


이런 인간의 특성 때문에 관객들은 휴머노이드가 인간과 진정한 감정적 교류가 가능하다고 믿게 된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낭만적인 로맨스가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과 기계학습(머니 러닝)을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간다움(과 행복)에 관한 본질적 의문으로 이어진다.


마리아 슈라더 감독은 사랑과 알고리즘의 차이에 관해 "우리는 전통적인 관계에서도 반려자의 요구에 우리를 맞추지 않던가? 관계에서 '진짜'라는 건 무엇이며 학습과 프로그래밍은 얼마만큼을 차지하는가? '완벽한 반려자'가 생긴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욕구와 소망을 섬세하게 표현하기도 전에 정확하게 분석해 버리고 채워 주는 반려자? 그것을 채우는 행위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프로그래밍의 결과라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4. 알마의 직업은 왜 고고학자인가?

알마가 헬레니즘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로 설정된 이유는 뭘까? 헬레니즘은 서구 개인주의 문화의 뿌리이자 모태다. 영화는 헬레니즘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 인간중심주의 즉 인본주의를 상징한다. 로봇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과 헬레니즘으로 대표되는 인본주의의 대비로 이해하면 쉽다.


알마가 사랑에 회의적인 이유는 과거 경험상 지난 관계가 남긴 상처와 회의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망각’ 때문이다. 이것이 학습에 있어서 인간과 로봇의 차이이다. 우리 인간은 어떤 기억은 잘 묻어두고 또 어떤 기억은 발굴해 아름답게 복원할 수 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유물이다.



★★★ (3.3/5.0)


Good : 곧 실현될 윤리적 딜레마!

Caution : 점잖은 독일식 유머


■덴마크 그룹 Bremer/McCoy의 <Drommer>, <Aben bog> 등의 사운드트랙이 영화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마렌 에거트는 제7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최고 연기)상을 받았고, 휴머노이드 로봇 매니저를 연기한 산드라 휠러는 영화 <레퀴엠>으로 제56회 여자연기상을 수상하고,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마리아 슈라더 감독은 <에이미 야구와>를 통해 제49회 여자연기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이용자가 알고리즘이 필터링한 하나의 관점에 갇히는 ‘필터 버블’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유튜브는 족집게처럼 영상을 추천한다. 추천 영상을 보면 나보다 유튜브가 내 취향을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상을 추천할 때 개인별 시청기록을 기반으로, 이용자 가치관에 편향된 영상을 계속 추천한다. 음식도 편식하면 건강이 나빠지듯, 정보도 편식하면 건전한 가치관을 가질 수 없다.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정보만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하는 정보만 보고,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유튜버만을 구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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