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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U Oct 15. 2021

라스트 듀얼, 중세를 빌어 오늘을 얘기하다

《The Last Duel (2021)》

1. 여성주의 영화의 거장이 현재를 말하다.

83세의 리들리 스콧 경은 1979년에 할리우드 최초로 여전사를 내세운 <에일리언>와 1991년에 페미니즘 걸작 <델마와 루이스>를 통해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왔다. 이번 <라스트 듀얼>도 마찬가지다. 즉, 영화는 중세를 빌어 오늘날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일까? 




2. <라쇼몽>에 바치는 리들리 스콧의 헌사

영화는 에릭 제이거의 <마지막 결투: 중세 프랑스의 전투에 의한 재판의 진실을 이야기> 원작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역사상 최후로 공식 인정받았던 ‘결투 재판(Trial By Combat)’에 관한 실화를 다루고 있다. 


맷 데이먼과 벤 애플릭이 <굿 윌 헌팅> 이후 24년 만에 각본을 함께 썼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바라보는 인물들 각자의 시점으로 반복되는 구성이 특징이다. <라쇼몽>처럼 인물마다 동일 사건을 세 번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 맷과 벤은 원작과 실화에서 여주인공 마그리트 드 카루즈의 시선을 대변하기 위해 니콜 홀로프세너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다. 실제로 데이먼의 인터뷰에 따르면 대본 단계에서부터 데이먼과 애플렉은 남성의 시선을, 홀로프세너는 여성의 시선을 담당해서 썼다고 한다.

      

봉신서약

당시 시대 배경을 짧게 서술한다면, 봉건제도는 토지를 통해 주군과 봉신(封臣) 간에 관계가 형성되는 제도를 말한다. 영화는 백년전쟁으로 봉건제도가 흔들리던 난세를 그린다. 당시 프랑스 왕 ‘미치광이 왕’ 샤를 6세(알렉스 로우더)의 정신병을 틈타 왕의 숙부와 동생 간에 권력다툼으로 인해 1418년에 파리가 함락되었다.


영화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흑막인 '피에르 달랑송(벤 애플렉) 백작'은 국왕의 사촌이자 두 주인공이 모시는 주군이다. 봉건제도는 봉토를 매개로 한 '계약관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작이 새로 부임하여 장과 신종서약을 맺어 주군과 봉신 관계를 맺는다. 그러면서 은근히 장을 견제하기 위해 자크를 밀어준다.

 

1막의 주인공 ‘장 드 카루주(맷 데이먼)’은 성주 '카루주 자작'의 아들이지만, '스콰이어((Squire, 하급기사, 종자)' 신분으로 지내고 있다. 장은 ‘백작’을 모시며 아버지의 기사작위와 성을 물려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리고 페스트로 아내와 아들을 잃어 새로운 혼처를 물색하게 되며 지체 높은 귀족의 딸인 마르그리트를 낙점한다.


이 시기에 귀족 자제들은 의무가 막중한 기사 신분을 유지하기보다는 전공을 세우면 봉토를 유지할 수 있는 실리적인 스콰이어 신분을 선호하는 세태가 정착된다. 왜냐하면 신분상의 명예인 기사로 서임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14세기쯤 이르면 기사인 영주들이 전쟁에 참가하는 동안 장원을 관리하는 평민 출신 대관이 성주보다 큰 권한을 얻게 되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2막의 주인공 ‘자크 르 그리(애덤 드라이버)’ 역시 스콰이어 계급으로 장과는 소꿉친구이자 전우이자 피에르 백작을 모시는 동료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고, 미남으로 인기도 많아 피에르 백작의 총애를 독차지한다. 이 때문에 장과의 묘한 불편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친구의 부인인 마르그리트를 남몰래 흠모한다.


그는 로망스문학을 예찬하며 마르그리트에게 추파를 던진다. 로망스문학은 기본적으로 영웅 서사시이기도 하지만, 미혼인 기사와 기혼인 귀부인의 플라토닉한 이상적인 사랑을 예찬했기 때문이다. 



3막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조디 코머)'은 지체 높은 영주 '로베르 드 티부빌(너새니얼 파커)'의 외동딸이다. 장은 지체 높은 귀족인 그녀를 재혼 상대로 낙점된다. 영국편을 들었던 오명을 씻고자 전쟁영웅인 장을 사위로 두려는 아버지와 처가를 통해 재정난을 해결하려는 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결혼제도는 가문의 지위와 재산을 영속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래서 정략결혼을 통해 서구의 왕실과 귀족사회는 프랑스혁명이전까지 일정비율(2%)로 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결혼시장에서 초과공급되었기에 불리한 위치에 점하게 되었다. 왜 그렇냐면, 일단 남자귀족은 장남이 아니면 상속을 받기 힘들었기 때문에, 차남이하의 남자귀족들은 주로 성직자나 군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유럽의 남성 귀족은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전사계급이므로 전쟁과 치안, 결투로 사망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니 극악한 성비 불균형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남성이 결혼시장에서 여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법률적으로 여성은 남편의 재산 목록에 포함되며, 시집와서도 아들을 출산해야지만 가문의 일원으로 일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다.


덧붙여 백년전쟁도 따지고보면 정략결혼의 산물이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후계가 불분명한 프랑스 왕실에 자신이 필리프 4세의 외손자라는 명분으로 왕위계승을 주장해서 벌어진 전쟁이기 때문이다. 



3.오늘날 매너(에티켓)의 기원을 찾아서

긴 러닝타임을 두고 세 사람의 시선대로 제각기 따라가는 영화는 의외로 지루하지 않다. 풍부한 디테일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처럼 중세 유럽으로 안내했고, 충격적인 역사적 실화를 파헤치는 미스터리가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세 명의 입장차 혹은 인식의 차이가 '기사도'로 포장된 중세의 민낯을 까발린다.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중세의 야만적인 행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나 이 '기사도'가 근대의 '신사도'를 거쳐 오늘날의 '매너(에티켓)'으로 정착된다. 그래서 중세를 빌어 오늘날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피와 살점이 튀는 전투 장면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하다. CG가 일체 첨가되지 않은 결투의 현장감은 요즘 블록버스터에게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함으로 다가왔다. 현대인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왕권이 약하고 중앙집권이 이뤄지지 않아 재판의 구속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게다가 기독교에서 신이 죄가 없는 자의 손을 들어준다는 해석이 들어가면서 결투는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사회에 존속하게 된다. 이것은 서구가 왜 제국주의를 자행했는지에 관한 힌트를 제공한다.  


리들리 스콧 경은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후일담도 들려주지만, 모든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 문을 나서더라도 영화를 곱씹어보게 한다.



★★★☆ (3.5/5.0)      


Good : 볼거리와 스토리 양방향에서 느껴지는 스펙터클의 힘

Caution : 한 사건을 3번 보여줘서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다.

  

●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77년에 데뷔작 <결투자들>에서 이 작품과 똑같은 프랑스 배경으로 두 남성의 결투라는 비슷한 소재로 작품을 찍은 적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결투자들은 1800년대가 배경이며, 단순 대결을 그린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중세시대 배경으로,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결투 재판을 소재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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