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기로 올해의 앨범 후보작들을 소개합니다.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당연하게도 너무 "좋은" 앨범이기 때문입니다. 꼭 한번 들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볼티모어 출신 하드코어 펑크 밴드인 턴스타일은 장르구분이 기본적으로 의미가 없는 2020년대에 딱 어울리는 그룹이다. 소울풀한 R&B발라드 <Alien Love Call>,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이 감미로운 그런지 <Mystery>, 찬송가 스타일의 펑크 캐롤 <WILD WRLD>만 들어봐도 어떤지 감이 팍 올 것이다.
그래서 <GLOW ON>은 듣는 내내 흥미를 유지하며 예측불허의 재미를 안겨주고, 시끌벅적한 놀이로 우리를 신나게 만든다.
수민의 행보는 독보적이다. <Your Home (2018)>, EP<OO DA DA (2019)>,<XX (2020)>를 통해 K-블랙뮤직에 있어서 그녀의 존재는 대체불가능하다. <쇼미더머니9>에 참여했던 프로듀서 슬롬(Slom)과 의기투합한다. 재기발랄한 어휘 선택, 캐치한 멜로디라인, 허를 찌르는 코러스의 등장으로 요약가능한 특유의 작법이 <신기루>, <곤란한 노래>, <여기저기>, <ㅜ>에서 빛을 발한다.
다소 아쉬운 후반부와 슬롬의 색깔이 흐릿하지만, 우리도 세계시장에 내놓을 얼터너티브 R&B 앨범을 갖게 되었다는 자긍심이 느끼게 해준다.
숱한 화제를 모았던 R&B 슈퍼 그룹 ‘실크 소닉’은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팍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임스 브라운(테너)'과 '바비 버드(바리톤)'처럼 역할을 나누고, 80년대에 태어난 두 사람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70년대 소울의 송가를 함께 썼다.
레트로가 대세인 음악시장에서 작년에 80년대 신스웨이브에 이은 70년대 필라델피아 소울과 휭크, 디스코에 대한 러브레터는 모타운 사운드를 21세기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은 황홀한 시간여행을 선사한다.
프랑스출신 밴드 ‘고지라’의 7집<Fortitude>는 그들이 헤비메탈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진보적인 창작자들 중 하나라는 증거다. 너바나에 의해 메탈이 살해당한지 30년 정도가 흘렀고, 이젠 록마저 시들한 암흑기에도 여전히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수록곡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과 데스 메탈의 4차 혁명을 꿈꾸고 있다. 데뷔이후 20년 넘게 자연보호를 노래하며 포경저지운동에 동참하는 행동력도 갖췄다. 현재는 브라질 밀림 파괴를 저지하는 일을 돕고 있다. 이렇듯 기계음에 숨겨든 친환경적인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조그만 바람이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나라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전 지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Heaux’는 잠자리를 자주 갖는 여성을 일컫는 속어다. 어떤 때는 화자를 비판하기도 하고, 다른 곡에서 그녀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문란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비판받기 쉬운 스토리텔링을 위해 화려한 기교나 묵직한 비트보다 최대한 경량화된 미니멀한 사운드로 가사에 집중하도록 연출되어 있다.
자스민 설리번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여성 스스로에게 입힌 코르셋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민감한 주제를 여성 스스로가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도리어 여성들에게 성적 자유를 선사하고 관계의 역학을 탐구하도록 이끈다.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아티스트다.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남성이 혼자 뚝딱 만들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레딧과 레이트유어뮤직을 거쳐 스테레오검과 피치포크에까지 이 음반이 알려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는 '청소년기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것들에 대한 레퍼런스'라며 겸손하게 소개하지만,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를 살아온 누군가에게 어필할 호소력을 갖추고 있다. 형식적으로 클리셰라고 비평할 수 있고, 퍼즈 이펙트를 극대화한 노이즈와 조악한 레코딩 환경이 감지되는 열화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그 정서는 아무나 만들어낼 수 없다.
할시 본인이 각본을 쓰고 IMAX로 촬영된 트레일러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래미와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가 프로듀서를 맡고 장 푸케의 'Madonna surrounded by Seraphim and Cherubim'에서 영감을 얻은 앨범 아트워크마저 도발적이다.
불협화음이 가득한 13트랙은 빌리 아일리쉬나 포스트 말론이 90년대 음악들(대표적으로 그런지)를 팝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던 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할시가 단순한 팝스타 이상을 꿈꾸고 있는 야심이 고스란히 반영된 놀라운 결과물이다.
'알로 파크스'로 알려진 '아나이스 올루와토인 에스텔 머리노'는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차드계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인 싱어송라이터다.
어릴 적 R&B와 아트록에 심취해있었던 그녀는 훌륭한 예술가가 그러하듯 오롯이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과 자아를 써내려간다. 일상에 숨겨진 평범한 장면을 스케치하면서도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차분하게 노래한다. 챕버 팝, 인디 포크, R&B, 재즈를 적절히 수용하며 청자에게 위안을 건네는 노련함이 빛난다.
1988년생인 아델은 올해 33세다. 하지만, 앨범 제목으로 삼을 만큼 30살을 짚고 넘어가는 이유를 팬들은 그 해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녀가 보그와 나눈 인터뷰에 따르면 9살 난 아들 안젤로가 (이혼당시) 6살 때 물어보는 삶과 이별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곡을 썼다고 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이혼의 고통과 아픔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음반은 인간적이다. 이혼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추악한 감정을 레코딩함으로서 한 인간으로 치유되고 해방된다. 앨범의 주제도 감정도, 악기도 실제 존재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상악기가 대세인 대중음악계에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컴퓨터를 배제한다. 60년대 소울로 시작해서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할리우드 황금기(40년대)로 우리를 안내한다.
아프리카는 대중음악의 발상지이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와서 힙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해줄 원천지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2020년대에 투아레그 출신 4인조 밴드가 위기에 처한 로큰롤에 전형적인 백 비트(심지어 4박자계열 리듬도 아니다)를 빼고서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한다.
특히 타이틀곡 Afrique Victime의 타마셰크어 가사에 아프리카인 스스로가 침묵을 지키지 말자고, 정치·사회적 양심을 촉구한다. 그 처절한 외침이 현재 가장 혁신적인 음악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로 트롯도 미시시피 강변 흑인 노예들에게서 리듬을 가져왔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고향일지도 모른다. 물론 5음계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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